본문 바로가기
시·에세이/<그녀를 그리다>

01. 흔적

by BOOKCAST 2022. 6. 13.
반응형

 


 


아침이면 블라인드를 열며
창밖 대추나무에 와서 시끄럽게 구는 새들을
선한 눈으로 바라보는 당신이 거기 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기 좋아하던 당신,
당신은 아직 그렇게 창가에 서서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접힌 책갈피로 혹은 낯익은 글씨로,
밤늦게 집에 들어오다 보면
 
술 취해 돌아오는 남편을 바라보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일요일 저녁 밥상에 앉아
함께 술잔을 나누다 보면
조금 말이 많아진 붉어진 얼굴로,
 
화초 위에 맺힌 물방울로,
성모자상 앞에 놓인 묵주로,
잘 닦인 싱크대의 반짝임으로,
아침이면 커피 내리는 소리나 그 향기로
신문 위에 놓인 붉은 테의 돋보기로,
때론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로,
가을만 되면 이미 소파에 놓여있던 담요로,
 
당신은 늘 거기에 그렇게 있습니다.

반응형

'시·에세이 > <그녀를 그리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 연골  (1) 2022.06.17
04. 가을이 되었네요  (1) 2022.06.16
03. 쑥갓  (2) 2022.06.15
02. 꾸역꾸역  (2) 2022.06.14
00. <그녀를 그리다> 연재 예고  (1) 2022.06.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