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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사양>

00. <사양> 연재 예고

by BOOKCAST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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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을 함께 담아낸
아름다운 빛, 『사양』

 

역자 후기

강릉의 해가 저물어갑니다. 분홍빛, 초록빛, 물빛, 주홍빛……. 우주의 아름다운 빛이란 빛들이 모두 모여 하늘을 곱게 물들여 갑니다.
저는 지금 강릉에 있습니다.

작년, 강릉에서 1년살이를 하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 책을 옮기면서 강릉의 해 지는 풍경이 자꾸만 떠올라 번역의 막바지 작업 중, 기차에 올랐습니다. 아마 의아하실 겁니다. 강릉, 하면 일출이 가장 먼저 떠오를 테니까요. 하지만 그곳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곳 서쪽 어느 한 호수의 해 질 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녁 무렵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 석양. 새로운 것에 밀려 점점 쇠락해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 이 작품의 제목인 ‘사양(斜陽)’의 뜻입니다. 일본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몰락해가는 한 귀족 가문의 이야기라는 소설 속 내용이 여실히 담긴 제목이지요. 『사양』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을 만큼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중에는 네 사람의 주요 인물이 등장합니다.
장녀 가즈코, 남동생 나오지, 쇠약해진 어머니, 그리고 가즈코가 사랑했던 소설가 우에하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가즈코지만, 다자이 오사무라는 저자 자신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인물은 나오지입니다. 그래서 나오지를 보면 자신의 생을 부끄럽게 여기며, 술과 마약에 빠져 지내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가 떠올라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나오지는 자신을 이 세상과 이어주는 마지막 끈과 같은 존재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결국 자신도 죽는 길을 택하지만, 가즈코는 나오지와 어머니, 우에하라, 모두가 비록 자신을 떠났어도 살아남는 쪽을 택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즈코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심 씩씩하게 인생을 살아내고팠던, 다자이 오사무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에하라에게 보내는 편지를 끝으로 소설이 막을 내리는 까닭에, 훗날 가즈코의 인생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만, 저는 이 책의 역자이자 한 사람의 독자로서, ‘분명 누나는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라는 나오지의 유서처럼, 그리고 자신은 아이와 함께 2회전, 3회전을 치를 작정이라는 가즈코의 각오처럼, 끝까지 씩씩하게 살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도 붉은빛에서 보랏빛으로, 보랏빛에서 까만빛으로 지는 강릉의 해 질 녘 하늘을 바라보고 왔습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느끼며 지난 과거들을 되뇌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즐거웠던 일들도 떠오르지만, 한편으론 슬픈 일들도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갑니다. 가즈코도 어느 날은 문득, 사랑했던 어머니와 나오지, 우에하라 생각에 가슴 사무치는 날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게 바로 인생 아닐까요. 마냥 즐거움과 행복만 있는 삶이 아니라, 고통도 슬픔도 있는, 그런 시간이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우리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우리는 분명 더 단단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해 질 녘 풍경처럼 그 존재만으로 아름답습니다. 사실 거창하게 무언가가 되어야 할 필요도, 늘 잡히지 않는 미지의 것들을 위해 너무 애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신을 내버리지 말고, 나를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면 그뿐일 것입니다.

 


 

저자 l 다자이 오사무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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