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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폐의 세계사>

03. 초원 제국의 눈부신 상상력

by BOOKCAST 2020.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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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몽골 중북부에 위치한 에르데네산트(Erdenesant)에서 서쪽을 향해 가는 길. 며칠이 지나도 모래만 펼쳐졌다. 바람이 불어와 풀을 어루만지고 소와 양이 노니는 초원의 정취가 마음에 가득한데, 눈앞에 보이는 건 인적 없는 황야뿐이었다.
 
털모자를 쓴 택시 기사가 나에게 말했다. “요 몇 년간 풀이 잘 자라지 않아요. 노인들은 여전히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살기를 고집하고,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일찍이 대도시로 나가 생계를 꾸리고 있지요.”

나는 차창 밖에 펼쳐진 지평선의 끝자락과 흰 눈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 말을 잃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시에는 향락이 있고, 번화하고 방탕한 생활을 누리며 호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초원은 그들에게 즐거움과 자극을 주지 못했다. 끝없이 펼쳐진 황야는 신세대에게 낙후되고 무료한 곳일 뿐이었다. 반면 그들의 바로 윗세대는 도시로 이주해 아파트에 단체로 살고 있으면서도 폭신한 침대에서 잠들지 못하고 갑갑한 환경을 참지 못해 결국 마당이나 공터에 가죽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멀리서 산발적으로 반짝이는 파오, 그리고 위구르어와 키릴 문자가 뒤섞인 도로 표지가 다시금 나를 일깨워주었다. “여기는 내몽골이 아닌 진짜 몽골이다.”
 
한참을 달리니 모래 황야의 끄트머리에 갑자기 푸른 들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거리 여행의 피곤함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초원의 정중앙에는 에르덴 조 사원(Erdene Zuu Monastery)의 갈색 벽과 흰 탑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눈앞의 이 초라한 유적은 700여 년 전 로마 교황청의 특사와 페르시아의 거상들, 남송(南宋)의 수도 임안(臨安)의 외교사절, 델리 술탄 왕조의 조공 대표가 모여들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초승달이 걸린 이슬람 사원, 성화가 불타는 조로아스터교 사당, 금빛과 푸른색의 불교 사원, 반짝이는 동방정교 교회 그리고 오늘날 종적을 감춘 이교도의 전당 등이 조화롭게 자리했었고, 각기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귀속감을 찾을 수 있었다.
 
몽골제국 시대의 통치 영역은 오늘날 그 어떤 나라보다도 넓다. 동쪽으로는 임진강변의 고려 개경에서부터 서쪽으로는 드네프르(Dnieper)강가의 키예프 대공국까지, 남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바그다드에서부터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벌판에 이르는 영역이었다. 문치무공(文治武功) 왕성했던 13세기에는 세계 대륙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호령했다. 이 시기에 카라코룸(Karakorum)은 몽골제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수도였다. 우선 13세기로 돌아가 보자. 칭기즈 칸은 서하(西夏)를 정벌하는 도중 육반산(六盤山)8에서 병사했다. 임종 전 그는 셋째 아들 오고타이에게 칸 지위를 물려주었다. 대몽골제국을 이어받은 오고타이는 변경의 병력을 강화하고 최단기간에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제국을 건립했다. 그리고 아바르가(Avarga)에서 카라코룸으로 천도했다. 최초로 몽골 궁정을 방문한 유럽 사절단의 플라노 카르피니(Giovanni de Piano Carpini)는 카라코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라코룸은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다. 의문의 여지없이 세계 최대의 도시다.”

카라코룸의 웅장함은 오늘날 무너진 담만 남아 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몽고비사, 원사(元史), 신원사(新元史)에 기록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풍부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서양에서 카라코룸을 방문했던 사절단과 전도사들이 그들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자로 거대한 사막에 위치한 고도의 화려한 모습을 묘사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뤼브뤼키의 동유기에 가장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후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제국의 수도는 사방이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의 돌출된 부분에는 채색한 그림과 비단이 장식되어 있으며, 칸 궁전의 황금 기와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비범한 광채를 내뿜는다.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심지어 서로 적대하는 종교도 이곳에서는 모두 조화롭게 지낸다.
뤼브뤼키의 글을 통해 우리는 카라코룸이 오늘날의 뉴욕 혹은 도쿄와 비견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1993년 몽골이 발행한 50투그릭 지폐. 뒷면은 항애산 기슭의 고요한 초원 풍경이다.

 

 

1,000투그릭 지폐. 뒷면에는 오고타이의 이동 궁전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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