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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갓생사는 엄마들>

02. 사 남매와 함께 뛰면서 쓰레기 줍는 엄마 - ‘플로깅’ 전도사 이자경 씨 -

by BOOKCAST 202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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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쓰레기봉투를 손에 쥐고 조깅하는 영상은 몇 년 전까지 해외 토픽 감이었다.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인 플로깅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줍다(plocka upp)’와 ‘조깅하다(jogga)’를 합친 말이다. 나와 지구의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기 때문에 플로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라고도 불린다.

플로깅은 몇 년 새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큰 몫을 했다. 해안가, 강변, 산을 비롯해 골목길, 공원, 학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하는 영상들이 전 세계에 퍼지고 공유됐다. 플로깅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조깅하면서 쓰레기 줍는 데 최적화된 가방, 봉투 등 전용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플로깅은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운동 자체의 효과도 커서, 한 번 상체를 숙여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스쿼트를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자경 씨는 ‘플로깅’을 생활 속에서 직접 실천하는 사 남매의 엄마다. 매일 새벽 6시쯤 일어나 11살, 9살, 7살, 4살짜리 사 남매와 부부가 플로깅을 하고 있다. 2021년 출간된 책 『나는 아름다워질 때까지 걷기로 했다』에는 여섯 가족이 플로깅을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른 새벽, 플로깅에 눈을 뜨다

몇 년 전 첫째와 놀이터에서 했던 쓰레기 던지기 놀이가 시작이었다. 아이와 함께 길가에 버려진 과자 봉지를 던져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쓰레기 던지기 게임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때부터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던져 쓰레기통에 ‘골인’시키는 게 하나의 놀이가 됐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시작된 놀이는 재활용 분리수거장으로, 단지 전체로 점점 범위를 넓혀갔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내려간 제주도에서 가족들은 ‘비치코밍’에 눈을 떴다. 비치코밍이란 해변을 빗질하듯이 쓰레기를 줍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더니 갈매기가 밧줄을 먹고 있었다. 또 다른 날에는 파도에 휩쓸려 온 신발 한 짝을 아이들이 모래사장에서 발견했다.

그때부터 사 남매는 바다가 몰고 온 각종 부유물로 가득한 해변에서 쓰레기를 주웠다. 쓰레기 줍기 놀이가 바닷가로 이어졌듯이, 2년 동안의 제주살이 정리 후 정착한 경북 영천에서는 새로운 놀이가 시작됐다. 넷째를 낳고 30kg 넘게 불어난 몸무게를 빼기 위해서 그는 운동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왕 뛰는 거 동네 한 바퀴 뛰면서 쓰레기를 주워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플로깅은 그렇게 시작됐다.

매일 1시간씩 여섯 가족이 함께 나가서 플로깅을 하니 어느새 예전의 몸무게로 돌아왔다. 동네에서 출발해 강 한 바퀴를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몸은 자연스럽게 건강해졌다.

맨손과 비닐봉지 하나로 시작했던 플로깅도 제법 규모를 갖춰 나갔다. 요즘 사 남매와 부부는 전용 집게와 에코백을 들고 집을 나선다.

 


코로나19 이후부터 거리에는 버려진 쓰레기들이 많아지며 사 남매도 분주해졌다. 어떨 때는 뛰는 것보다 줍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전엔 담배꽁초나 커피 캔, 휴지를 주로 주웠다면 코로나 이후 줍는 쓰레기의 종류가 많아지고 양도 늘었다. 가장 달라진 건 마스크와 종이컵 등 일회용품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아이들이 계속 이야기해요. 이 사람은 오늘 김밥을 먹었구나, 커피를 마셨구나. 마치 범인이라도 찾듯이 쓰레기가 남긴 흔적을 읽고 있더라고요. 누군가 내가 버린 쓰레기를 볼 때도 그러지 않을까. 버릴 때도 흔적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제주에서의 2년은 꿈같았다. 매일 바다와 함께하며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서점을 열었다. 친환경 관련 책과 제로 웨이스트 상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했다.

바닷가 쓰레기를 줍는 것도 자연스럽게 간소한 삶으로 이어졌다. 물건을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물건을 사는 것 자체에 신중해졌다.

시골로 내려오기 전만 해도 퇴근길에 내일 입을 옷을 쇼핑하고 올 만큼 소비를 좋아했던 그였다. 한 달간 같은 옷을 입은 적이 없을 만큼 옷이 많았다.

주위 사람들이 다 들고 있는 ‘신상 백’을 나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퇴사 후 시골로 내려온 후부터는 가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쓰레기를 줍다 보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간단하더라고요. 사지 않는 것이었어요.”

간소한 삶의 노력은 진화를 거듭했다. 처음엔 내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을 사고 있는지 깨달았고 가계부를 쓰면서 지출액을 줄여 나갔다. 꾸준히 수입과 지출을 적으면서 어떤 것에 돈을 쓰고 있는지 소비 패턴을 찾아갔다.

그 다음에는 안 쓰는 책과 옷을 하나씩 이웃들과 나누며 비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주에서 영천으로 내려갔을 때 남은 짐은 이삿짐 박스 네 개가 전부였다.


새벽을 깨우는 『도덕경』 필사

여섯 가족은 팔공산 자락이 펼쳐지는 경북 영천에서 자그마한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시골 정착기와 플로깅을 주제로 그는 밤부터 새벽까지 글을 썼다. 사 남매와 함께 보낸 하루가 끝나면 밤 시간은 온전히 그녀만의 시간이었다. 어떤 날은 동이 틀 때까지 글을 쓰다 잠들었다.

하루 종일 육아와 살림을 한 탓인지 밤이 되면 늘 몽롱하고 피곤했다. 그렇다고 일찍 잠들자니 뭔가 억울했다. 딱히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 없이 ‘이 시간만큼은 포기 못하겠다’는 아까운 마음이 더 컸다.

새벽 기상을 먼저 시작했던 남편이 새벽에 일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을 때도 그는 화부터 냈다. 나만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계속된 설득 끝에 그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새벽 기상을 해보기로 했다. 첫날에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새벽 3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생전 처음 새벽에 일어나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하루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결혼 후 아이 넷을 낳고 기르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기분이었다. 며칠 동안 새벽에 일어난 후 그는 남편에게 또 한 번 화를 냈다고 한다. 왜 더 일찍 새벽 기상을 권하지 않았냐고 말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다 보니 두통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어요. 몸이 항상 개운하지 못했고 머리는 멍했죠.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니 활력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새벽에 나를 위해 에너지를 충분히 쓰고 나니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감정으로 대할 수 있었죠.”

매일 새벽 4시 일어난 후 100일 정도 지나니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평소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던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보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온라인 필사 모임을 신청하고 매일 새벽 30분씩 『도덕경』 구절을 적어 내려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구절 한 구절 뜻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하지만 직접 손으로 써보니 글을 곱씹으며 생각할 수 있는 힘이 길러졌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라고요. 매번 아이들을 위해 하루를 쓸 줄 알았지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건 생각도 못 했어요. 그 시간이 나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알게 된 거죠.”

무엇보다 새벽 기상의 큰 변화는 아이들에게 찾아왔다. 부모가 새벽에 책을 읽으니 아이들도 어느새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렸다. 평소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다. 그의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끝까지 해내는 엄마, 아침을 힘차게 여는 엄마, 건강한 엄마, 환경을 생각하는 엄마, 그런 엄마로 기억되길 바라는 나의 플로깅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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