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가격이 5년 만에 2배로 뛰었다. 2017년 3억 원대였던 가격이 2022년 6억 원대를 기록했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가 1억 원씩 뛴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는 ‘영끌 매수’, 자산 가격의 폭등으로 하루아침에 거지가 됐다는 뜻의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다. 집을 살 만한 목돈이 없는 젊은 세대들은 코인 투자에 뛰어들었고, 주식 계좌 숫자가 인구 숫자보다 많은 6000만 좌를 기록했다.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40대 주부 신지선 씨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는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가격이 널뛰면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걸로는 안 되는 세상이 되었구나. ‘목적 없는 열심히’로는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아빠 세대는 부지런한 개미처럼 살면 행복할 수 있었지만 우리 세대는 그럴 수 없구나 생각했죠. 이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돈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기로 했다. 우선 ‘나는 누구보다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고 모으는 방식을 다시 설정해야 했다. 소박하게 알뜰하게 저축해서 내 집을 마련해 보겠다는 계획을 접었다. 대신 다양한 재테크를 통해 자산을 불려 나가기로 했다. 무주택자로 전세를 사는 것이 아닌 투자를 위해 전세를 살기로 했다. 돈이 흘러넘치도록 부자는 아니어도 아이가 좋아하는 비싼 샤인머스캣을 언제든 사주고 싶었다. 그렇게 부의 기준과 목표를 재설정했다.
1시간만 일찍 일어나자
2021년 10월부터 뒤늦게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 모임에 들어가다 보니 책을 읽고 분석하려면 새벽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절박했고 절실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새벽 기상은 어렵지 않았다. 알람을 2분 간격으로 예닐곱 개를 맞춰 새벽 기상이 몸에 배도록 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잠들었던 그가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엄마는 박사가 되려고 하느냐?”고 물을 정도로 일어나면 독서에 몰입했다. 책을 읽는 게 당장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무엇이 돈이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책밖에 없었다.
그는 육아, 브랜딩, 재테크, 부동산 등 독서의 범위를 네 가지로 나눠 매일 서너 권의 책을 10장씩 읽어갔다. 한 권을 쭉 읽는 것보다 집중이 더 잘 되었다. 그러다 좋은 글을 필사하고 그 필사한 것 가운데 꼭 기억할 만한 문구들을 다시 필사했다.
“필사는 마음을 다 잡는 효과가 있어요. 불안할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나도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글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잔뜩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답답함이 사라지죠.”
새벽 기상은 아이와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재우고 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이에게 빨리 자라고 재촉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아이와 함께 푹 자고 새벽에 나를 채우니 더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아이를 깨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이 달라지니 생활이 변했다. 오랫동안 괴롭혔던 불면증이 사라지고 밤에는 곯아떨어져 푹 잘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하루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작하는 기분이 좋아요. 평소보다 하루 1시간만 일찍 일어나 하고 싶은 것을 해도 하루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육아 전자책에서 일상툰까지
독서를 통해 ‘인풋’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뭔가를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매일 새벽 글쓰기였다. 2020년 말부터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써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눈 감고 딱 500개만 매일 써보자고 생각했다. 책 리뷰나 강의 후기를 비롯해, 아이를 키우며 소소한 에피소드나 육아 팁 등 뭐든지 써 내려갔다. 그렇게 올린 글이 500개 정도 되자 엄마의 브랜딩과 자기계발이라는 콘텐츠의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졌다.
2021년 출간된 전자책 『말로 때리는 부모, 말로 멍드는 아이』는 매일 글쓰기의 결과물이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그 중심에 육아가 있었다. 미숙아로 태어나 예민한 기질의 딸과 씨름하며 좌충우돌하고 깨달은 것만큼 값진 콘텐츠는 없었다.
“딸의 사회성 부족으로 2년 넘게 상담 치료도 받아보고, 답답한 마음에 보육교사 자격증까지 땄어요. 그러다 아이가 아닌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아이와 나누는 대화를 기록해 봤더니 대화가 아닌 지시어로 채워져 있더라고요. 예민한 애랑 싸우고 말로 때렸던 일들을 자책하다 보니 부모의 말 습관을 고쳐주는 글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는 전자책을 쓰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재능을 되살렸다. 전자책에 담았던 육아 에피소드를 일러스트로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줄곧 마케팅과 기획 업무를 해온 탓에 그림에서 손을 놓은 지 20년이 넘었다. 쌀알 모양의 귀여운 모녀가 주인공인 일러스트는 모녀가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잔잔하게 그리는 ‘일상툰’으로 발전했다. 내친김에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이모티콘으로 만드는 것을 준비 중이다.
출퇴근이 필요 없는 ‘창직’의 시대
때마침 ‘1인 지식 창업’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창직(創職)’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출퇴근할 직장이라는 공간이 없어도 내가 가진 경험이나 지식을 밑천 삼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었다.
심지어 실패의 경험이나 콤플렉스도 얼마든지 사업의 밑천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써서 책을 내고, 강연과 유튜브 출연 등으로 수익을 거두는 1인 기업가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해 아이를 키우는 엄마만큼 1인 지식 창업에 유리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랑해 모임을 운영하다 보니 자신의 경험과 강점을 살려 이를 수익화 하고 싶은 경력단절 엄마들이 많이 보였어요. 지금은 누구의 엄마로 육아에 전념하고 있지만, 다들 한때는 각자의 분야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잖아요. 저도 그랬듯이, 이들도 처음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 하더라고요. 그분들을 도와주며 저도 함께 성장하고 싶었어요.”
N잡러로 얻은 값진 수익
‘생생 브랜딩 모임’은 사전 컨설팅을 통해 나만의 주제를 찾고, 글쓰기를 하며 자신만의 콘텐츠와 브랜딩을 만들어가는 모임이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보석’을 찾아 주는 게 목적이었다. 회원들을 위해 새벽 5시부터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인 줌(Zoom)에서 ‘새벽 독서실’을 열기도 했다.
주로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끊긴 엄마들이 모임을 찾아왔다. 다시 일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방법을 몰랐다.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 지혜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데 이 구슬들을 어떻게 하나로 꿰어야 할지 막막했다.
“자녀에게는 ‘꿈이 뭐야? 무엇을 좋아해?’라고 끊임없이 물으면서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살 건인지 물어보면 막막해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전자책 판매를 시작으로, 온라인 모임, 블로그로 광고 수익을 내는 애드포스트, 온라인 위탁 판매 등 그는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새벽에 일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 내기에 도전했다. 자신의 집 거실 한 편에서 오직 끈기와 경험을 밑천 삼아 이뤄낸 일이었다. 전자책은 목표로 했던 50권을 훌쩍 넘어 판매됐고, 온라인 모임에도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했다.
다만 애드포스트나 온라인 위탁 판매에서는 큰 수익을 내진 못했다. 수익 자체도 소소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을 돕고 돈까지 버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난 후 그가 꾸준히 하는 또 다른 루틴은 소원 쓰기다. 매년 자신이 하고 싶은 소원들을 정해 매일 손으로 적고 있다. 다양한 파이프라인(수익 창출)을 시도해 보자는 지난해 소원은 썼던 대로 이루어졌고 올해 이모티콘에 도전해 보자는 소원은 현재 도전 중이다. 5년 후 소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N잡러의 수익으로 외벌이 남편 퇴사시키기.”
그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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