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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02. 일진이 점령한 청소년 세상

by BOOKCAST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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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정말 문제다. 우리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뉴스를 보던 아무개 씨가 내뱉은 말이다. 현실이든 픽션이든 비슷하다. 요즘 애들이 본다는 웹툰을 보면 죄다 일진에 비행청소년투성이다. 그게 다 현실의 반영 아니겠나. 그래서 청소년의 실상을 밀도 있게 묘사한 영화가 상도 받고 그런 거겠지.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던데.

 



선정성과 현실성 사이의 외줄 타기

재미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보니 뭐 하나 자극적인 소재가 나오면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질풍노도’의 10대들은 한참을 우려내도 계속 진국인 소재다. 미성숙한 존재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은 (어쨌든 겉보기엔) 무사히 성인으로 살아남은 이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다. 대중은 만화, 영화, 뉴스 보도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일탈을 소비한다.

중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인기 웹툰의 상당 부분은 일진 묘사에 치우쳐 있다. 박태준 작가의 <외모지상주의>(2014~)는 이른바 ‘찐따’였던 주인공이 갑자기 멋지고 늘씬한 몸을 얻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2014년 연재 초반에는 변화된 외모로 인해 주위의 인식과 평판이 바뀌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지만 2022년 현재는 고등학생들이 파벌을 만들어 싸움을 일삼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선욱 작가의 <프리드로우>(2013~)의 고등학생 주인공은 중학생 시절 일진이었던 자신의 과거와 멀어지려고 만화부 활동을 하며 새 친구를 사귀지만 일진 꼬리표를 완전히 뗄 수는 없다. 청소년의 꿈과 다양한 관계도 다루지만 기본적으로 갈등의 시작과 해결이 싸움에서 비롯한다는 설정은 변함이 없다. 박은혁 작가의 <랜덤채팅의 그녀!>(2017~)는 약하고 소심한 성격의 주인공이 친구들을 사귀며 성장해나가는 내용이다. 초반부에는 학원 로맨스물인 줄 알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의 원인이 동년배의 폭력 조직과 얽혀 있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 역시 폭력에 의존한다.

네이버 웹툰에서 ‘드라마’ 장르로 분류되는 위 작품들의 상황이 이러하니, ‘액션’ 장르는 말할 나위도 없다. 혜성, 이석재 작가의 <한림체육관>(2020~)은 일진이었던 주인공이 싸움을 통해 포인트를 얻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후 챔피언이 되기 위해 싸우는 내용을 담는다. 진정한 강함을 깨닫는다는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조직을 만들어 움직이는 청소년들이 등장해 사실상 조폭물과 다름없다. 채용택, 한가람 작가의 <참교육>(2020~)은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외양을 띄고 있지만 극 중 청소년들은 여전히 극단적인 가해자나 피해자로 묘사될 뿐이다. 박태준, 김정현 작가의 <싸움독학>(2019~)은 힘이 약한 주인공이 일진이나 악인을 이기기 위해 수련하는 여정을 그려간다. 잔인한 장면들이 제법 나오는데 등장인물을 굳이 성인이 아닌 청소년들로 묘사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원인을 찾기는 힘들다. 별다른 서사 없이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도구로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청소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8

누가 봐도 허구인 웹툰에 비해 영화라는 매체는 훨씬 교묘하게 사람을 홀린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도시를 배경으로 어디서나 봄 직한 얼굴들이 등장해 ‘현실고증’이라는 감투를 얻어 쓰기 때문이다. 대중은 현실을 반영했다는 둥 세태를 묘사했다는 둥 말하며 청소년에 대한 선정적인 묘사가 마치 이 사회의 진실한 단면인 듯 추켜세우곤 한다. 완전히 틀린 평가는 아니다. 실제로 폭력에 온전히 노출된 청소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출 청소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화제가 된 이환 감독의 <박화영>(2018)과 <어른들은 몰라요>(2021)를 살펴보자.

박화영(김가희)은 18살이다. 재혼한 엄마가 화영이 따로 나가 살도록 방을 얻어 주었다. 그 방은 곧 가출 청소년들의 집단거주지가 된다. 아이들은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언어 소통을 하고 폭력적인 문제 해결의 루틴을 영위한다. 문란한 성생활도 빠질 수 없다. 하도 담배를 피워대서 화면 밖의 나까지 목이 컬컬한 기분이다. 화영은 이른바 ‘엄마’로 불리며 아이들에게 착취당한다. 착취당하면서도 그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계속 남고 싶다. 그렇게라도 자신이 쓸모 있고 부끄럽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열한 아이들은 화영을 대놓고 멸시하며 이용한다. 급기야 화영은 스스로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쓴다.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화영은 친구라 생각했던 미정(강민아)을 재회하지만 미정은 겉으로는 과거를 싹 청산한 듯 보인다. 화영이 다시 ‘가출팸’을 구성한 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런데 화영이 데리고 있는 그 아이들 표정이 묘하다. 화영은 결코 착취 먹이사슬의 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박화영>의 스핀오프(spin-off)다. <박화영>에서 미정의 라이벌이던 세진(이유미)이 주인공이다. 세진은 학교 선생님과 애인처럼 지내다가 18살에 임신을 한다. 학교는 세진의 입을 막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학교를 떠난 세진은 동갑내기 가출 4년 차 주영(안희연)을 만난다. 여기에 남자 두 명까지 더해 가출팸이 완성되고 이들은 ‘낙태 대장정’을 떠난다. 바로 세진의 임신중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한 의기투합이다. 전자 제품 대리점에서 도둑질도 하고 유흥주점에서 일도 한다. 낙태 브로커를 찾았다가 성폭행당할 위험에 처한다. 병원 브로커에게 사기도 당한다. 의기투합했던 가출팸은 내부의 폭력으로 와해된다. 세진은 결국 인권 단체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인 부부의 집에 머물며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내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하혈과 함께 태아는 유산되고 만다.

<박화영>은 제14회 대한민국대학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제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신인음악감독상을, 제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받았다. 언론도 대체로 ‘어른들은 외면하고 싶은 10대들의 불편한 진실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다. 영화가 청소년들을 마냥 사회의 무력한 희생양으로만 묘사하지 않아 성인들의 불편한 감정을 소환해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잔인하고 선정적인 묘사가 많은 점을 곧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평가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진짜 리얼리즘이 되려면 잔혹한 사건 이후, 즉 거리를 떠나 보호받게 된 세진의 생활도 더 큰 비중으로 다뤄야 하는 것 아닐까. 어쨌든 삶은 계속되니 말이다.


언론의 청소년 묘사는 그야말로 침소봉대

언론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만들어 놓은 비행청소년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한다. 사실의 보도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보도 형태는 고정된 10대 이미지에 쐐기를 박는 격이다. 언론사 아주경제의 2021년 9월 19자 기사에는 “중학생 범죄가 수사기관을 비웃듯 뻔뻔해지고 있다”, “대낮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하의를 탈의하고 당당히 성행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는 의도가 뻔하게 드러나는 서술이 등장한다. 비웃듯 뻔뻔? 당당히 성행위? 인터뷰라도 한 것일까. 기사 어디를 찾아봐도 당당하다는 표현의 근거는 없다. 당당하다니! 그 아이들이 정말 당당하게 보란 듯이 성관계를 맺었을까?

말이 나왔으니 이 사건을 한 번 살펴보자. 2021년 9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고등학생 A군과 중학생 B양이 성관계를 갖다가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당시 경찰은 이들이 청소년들이라 입건을 할지 훈방 조치를 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형사미성년자(만 14세)가 아닌 이들의 행위는 형법 제245조의 공연음란죄에 해당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상습적이지 않은 공연음란이 실형에 처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비교적 가벼운 범죄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어땠을까. 포털에서 쉽게 검색되는 기사를 낸 언론사만 30개가 훌쩍 넘는다. 일부 언론사는 1차 기사 발행 이후 ‘pick’이라는 카테고리 아래 또 한 번 기사를 게재했다. 제목만 자극적이고 내용은 똑같은 뉴스들이 너무 많이 쏟아졌다. 다른 청소년 사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놀이터 성관계 사건은 청소년의 비행과 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언론의 이런 행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서울신문은 2020년 11월 ‘소년범 - 죄의 기록’이라는 여러 편의 기획기사를 통해 소년범죄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해법을 살폈다. 이 중 ‘언론도 SNS도 ‘요즘 애들’ 탓만… 통계 속 소년범은 늘지 않았다’(2020. 11. 1.), ‘소년범에게 씌운 ‘악마화 프레임’… 언론도 공범이다’(2020. 11. 10.) 등은 실제로 소년 사범은 매년 감소 추세이며 전체 범죄자 가운데 3.8% 정도에 불과하다는 통계 결과를 밝힌다. 나아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은주 교수 연구팀의 도움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소년범죄 기사의 영향을 받은 피실험자들은 보도된 사건이 경범죄이든 강력범죄든 상관없이 소년범죄 발생 건수를 실제보다 3배가량 과도하게 예측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런 경향을 언론학에서는 ‘배양이론 효과’라 한다. 기사는 이를 미디어를 통해 범죄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접할수록 실제 일상에서도 범죄가 만연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설명한다.

청소년 범죄가 실제보다 잔혹하고 자주 발생한다고 믿는 이들은 곧 ‘「소년법」9 폐지’, ‘형사미성년자연령 하향’에 열을 올리게 된다. 많은 이가 「소년법」을 온정주의적 시각에서 청소년 범죄를 약하게 처벌하는 법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이 부추기는 뜨거운 엄벌주의 청원과는 달리 전문가들의 의견은 냉정하다. 「소년법」이 없다면 10세 이상부터 14세 미만의 소년은 형법을 어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소년법」으로 인해 형사미성년자 중 10세 이상의 소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형사미성년자의 연령 기준을 낮추자는 의견에 대한 전문가의 반응도 비슷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12월 촉법소년의 수는 줄어들고 있고 14세 미만의 소년범죄가 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엄벌에 처하는 것이 소년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UN 아동권리위원회도 “국제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사책임 최저연령은 14세”임을 천명한 바 있다.10

대중문화 콘텐츠와 언론이 청소년의 비행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건 대한민국의 주류 집단인 성인들에 의한 전형적인 낙인찍기다. 선량한 비주류만 보호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불량한 비주류에게 씌워진 프레임은 이들이 선량한 쪽으로 회심할 기회를 원천 차단한다. 아무개 씨가 믿는 영화 속 ‘현실고증’이라는 것,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묘사 자체는 사실이라 해도 그게 내 머릿속에서 어떤 프레임을 만들지는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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