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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03. 지겹고도 지겨운 꽃뱀 서사

by BOOKCAST 202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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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씨의 지인이 고민 상담을 요청해 왔다. 갑자기 친해진 직원이 한 명 있는데 그쪽도 호감을 보이는 것 같아 회식 자리에서 은밀히 스킨십을 시도했다가 거절당한 일이었다. 정신적 손해배상과 함께 공개적인 사과를 하지 않으면 고소를 하겠다고 한다. “꽃뱀 아냐?” 이야기를 듣고 입을 연 아무개 씨의 첫 마디다.


웹툰 <성경의 역사> 속 꽃뱀 서사

앉은 자리에서 전부 유료 결제를 할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웹툰을 보았다. 최경민, 영모 작가의 웹툰 <성경의 역사>(2020~2021)다. 계기는 언론사 칼럼을 통해 이 만화의 스토리 작가가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여성 혐오를 아무런 미화 없이 노출했다는 취지의 호평을 접해서였다. 칼럼니스트 위근우는 “<성경의 역사>는 작품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 무엇보다 남성 창작자가 자신이 속한 남성 사회를 재현·고발하는 데 있어 가장 가감 없고 가차 없는 작품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고 평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연재 기간 중 인터넷 특정 남초 사이트에서 ‘좌표가 찍혀’ 악플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작품은 무고한 여성이 어떻게 순식간에 꽃뱀이 될 수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만화과 진학을 위한 입시 미술학원의 강사인 주상대는 재수생인 성경을 좋아한다. 다른 지역에서 온 성경이 주위에 적응하는 그 짧은 사이에 접근해 친밀감을 쌓아 올린다. 주상대는 스승에 대한 성경의 호감과 존경을 제멋대로 ‘그린라이트’로 해석해 입맞춤을 시도한다. 이 사건으로 학원에서 쫓겨난 주상대는 성경이 말로만 듣던 꽃뱀이고 자신은 꽃뱀으로 인한 피해자이며 그동안 꽃뱀 피해를 입은 억울한 남자들과 연대하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한다. 반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경은 감히 ‘남자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은 죄’로 이후 에피소드 내내 그의 폭력적 행동과 이에 따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성경의 죄는 무엇인가. “저도 쌤이랑 얘기하면 좋아요”라고 말하며 해맑은 미소를 보인 것이다.

예쁜 외모와 차분하고 소심한 성격의 성경은 ‘만만한 애’로 대학 내에서 원치 않는 인기를 누린다. 남자들은 “성경이는 내 꺼”라고 선언하고, 여자 동기는 “성경 언니 같은 타입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거지. 나 고딩 때도 같은 반에 그런 애 하나있었거든. 전형적인 ㅆㄴ 스타일”이라고 험담한다. ‘전형적인 ㅆㄴ 스타일’이라는 말은 작품 내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특별한 잘못이 없어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런 꽃뱀 프레임은 만화과 조교 송다희의 “아… 너가 그럼 걔야? 도화살 꼈다는 신입생이”에서와 같이 도화살이라는 단어로 변주되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가장 소외되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인 성경이다. 이 만화는 성경의 속마음을 거의 노출하지 않는다. 성경의 주변 인물들이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성경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캠퍼스 내의 사망 사건을 성경이 연루된 치정 살인극으로 가공해 공유하기도 한다. 작품의 빌런 중 하나인 주하나는 성경에 대한 루머를 시나리오로 짜 강단에 서 발표를 하며 “저는 그 ‘가만히’ 있는 주인공의 행동 역시 미필적 고의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누가 봐도 주인공에게 욕망을 가지고 접근을 하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쳐내지 않고 다 받아 준다면? 그로 인해 상대방이 착각을 하고, 착각에 대한 역풍을 맞는다면? 과연주인공은 정말 가만히 있었던 걸까?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한 번 봐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다행히도 작품은 성경이 답답하게 당하기만 하는 채로 끝나지는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오해를 풀고 과거의 자신을 반성한다. 꽃뱀 서사의 재현은 적나라했지만 결말은 모범답안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남자의 관심을 이용해 결국엔 그를 파멸로 이끄는 여자’ 프레임이 현실에서는 결코 모범답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실의 답답한 결말을 숱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가 필요하다. 모범답안 역할을 하는 실제 사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꽃뱀 서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꽃뱀 서사는 역사가 매우 깊다. 아담을 꼬드겨 선악과를 따 먹게 했던 팜므파탈의 원형인 이브까지 올라가면 인류의 전역사와 함께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역사가 깊다면 이젠 진부해서 더는 우려먹지 않을 법도 한데 실상은 21세기인 지금도 한창 잘나가고 있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고 겪는 현실 속 꽃뱀 서사는 어떠했을까.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9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꽃뱀 프레임을 크게 3기의 역사로 분류할 수 있었다.

제1기는 이른바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효시다.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에 없던 시절이다. 1993년 서울대학교 조교인 우 모 씨는 신 교수의 성희롱 사실과 임용 탈락의 부당함을 대자보를 통해 고발한다. 이에 신 교수가 우 조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우 조교가 성희롱을 문제 삼아 민사소송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3,000만 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냈다. 신 교수는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을 뒤집어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판단을 파기환송 해 결과적으로 우 조교는 5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일부 승소 판결을 얻는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장장 6년에 걸친 사건이었다. 이 시간 동안 우 조교는 능력 있는 남자 앞길을 망치려는 꽃뱀으로 변해 있었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신세 망치는 꽃뱀 서사가 성희롱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만나는 순간이다. 용기 있는 고발 덕에 직장 내 성희롱은 범죄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오랜 기간 취업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제2기는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제도가 전면 폐지되는 2013년 6월 19일부터다. 남성 연예인들의 성범죄가 화제이던 때였다. 이 시기 언론은 제목에서 꽃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친고죄가 폐지되어 성범죄의 처벌 여부가 고소와 무관해진다면, 꽃뱀들이 더는 고소와 고소 취하를 빌미로 연예인들을 협박하지 못하리라는 논리였다. 데일리안은 기사 제목을 ‘연예계 성범죄 ‘꽃뱀은 사라지겠지만…’’(2013. 6. 20.)으로, 세계일보는 ‘성폭력 고소율↓… ‘꽃뱀’ 사라졌나?’(2014. 3. 25.)를 통해 성범죄 피해자를 무고죄 피의자와 동일시할 수 있는 잘못된 통념을 조장했다.

제3기는 2018년 이후의 이른바 ‘미투’ 시즌이다. 연이어 터지는 유명인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백래시는 다름 아닌 지겹고도 지겨운 꽃뱀 서사였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영화감독 김기덕, 배우 조민기, 강지환 등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들은 예외 없이 꽃뱀이라는 2차 가해에 시달렸다. 미투 운동 중 현재까지도이어지는 가장 심한 2차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범죄 피해자인 김지은 씨다.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이 한창 진행되던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인물에 감정 이입했다. 피해자 김지은이 아니라 안희정의 아내에 감정 이입해 분노한 이들이 꽤 많았다. 김씨를 꽃뱀 프레임에 가둔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김 씨를 ‘이상한 여자’라고 말하고 안 전 지사와 김 씨가 ‘연애’한 것이라고 말한다. 항소심과 대법원이 명백하게 김 씨의 성폭력 피해를 인정했음에도 여전히 김 씨를 꽃뱀으로 여기는 인터넷 여론이 상당하다. 가장 큰 원인은 당시 일부 언론과 인터넷 카페가 양산한 루머 때문이다. ‘안희정과 그 아내가 잠든 침실에 김 씨가 들어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봤다’는 것인데, 이는 재판 과정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미 자극적으로 퍼져버린 헛소문은 되돌리기 어렵다.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의해 확정된 사실관계가 있음에도 “나는 아직도 그들이 불륜이라고 믿는다”는 댓글이 2022년 대선 정국에 등장하는 걸 보면 루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아무리 사법 불신이 심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확고한 신념은 유서 깊은 꽃뱀 서사의 도움이 없이는 유지되기 힘들 것 같다.

미투 이후, 그리고 웹툰 <성경의 역사> 이후 여성에 대한 꽃뱀 프레임은 조금이라도 변화를 겪고 있을까? 꽃뱀 서사를 제3기까지 거쳐 얻은 결실이 있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꽃뱀은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정국에서도 등장했다. 대선 후보도 아닌, 후보자의 배우자에 대한 의혹이었다. 벽화로 조롱당한 여성은 유흥업소 접대부를 거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과 교제하며 목표를 이루겠다는 서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진영을 초월해 과연 이런 여성혐오적 공세가 정치적인 공격으로서 온당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벽화의 내용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더 크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은 작은 비판의 목소리. 작으니까 앞으로는 커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낙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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