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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도/<세계를 읽다 태국>

04. 태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관과 전통

by BOOKCAST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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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곳에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국인들도 변화하고 있다. 물론 전통은 항상 존재해온 그대로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전통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치관은 더 이상 전통과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고, 행동도 항상 가치관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태국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후진국에서 중상위소득 국가로의 이행이 이루어진 나라이며, 그 결과 태국 문화가 대가를 치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농촌 마을에서 도심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전통적인 통제와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와 교육과 일자리를 접했다. 특히나 젊은이들에겐 가슴 벅찬 새 지평이 열려 농촌에 남은 사람들(주로 부모와 조부모들)과는 전혀 다른 목적, 다른 우선순위,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교육과 좋은 도로, 도시로 여행하기 위한 교통 시스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거의 모든 집에 TV가 있어 매일 밤 오지 마을에 있는 농가에서 도시에 사는 친척들이 보는 것과 똑같은 드라마를 본다. TV에 나오는 사람 대부분은 잘 교육받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큰 집에 살며, 값비싼 차를 몰고, 교과서에 나오는 중부 태국어와 영어에서 온 외래어를 섞어 쓴다. 간단히 말하면, 대부분의 태국인은 이제 더 이상 대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논과 소와 큰 집을 갖는 것에서 인생의 성공을 찾지 않는다.

평균적인 태국인은 여전히 음식과 돈으로 불교를 후원하며, 많은 젊은이는 결혼하기 전에 한동안 승려가 된다. 예전보다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적어지고 기간도 짧아졌지만 평균적으로 태국 남성들은 약 9일간 출가해 승려로 생활한다.
 

육신과 영혼

태국 불교신자와 애니미즘 신봉자들은 엄밀히 말해 유신론자가 아니다. 그들은 또 다른 형태의 삶으로의 이행, 즉 환생을 믿는다. 태국 종교의 중심 개념은 이것이다. 모든 영혼은 영원한 평화를 찾을 때까지, 즉 열반에 이를 때까지 다시 태어난다.

태국 종교에 관한 문헌에 등장하는 ‘콴(khwan)’이라는 말은 종종 영혼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태국적이라기보다 서양적인 표현이며, 어쩌면 기독교적 사고방식에 의한 오역이다. 태국어로 콴은 죽으면서 옮겨가는(천국으로건, 환생을 통한 새로운 육신으로건) 영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콴에 대한 더 나은 번역은 육신에 생기를 불어넣는 ‘생명력’일 것이다. 사람이 죽어 육신이 움직임을 멈출 때 콴도 함께 존재를 멈춘다. 콴은 어디로도 가지 않으며, 육신이 불태워질 때 함께 영원히 죽는다. 콴에 대한 적절한 은유는 ‘배터리 충전’이다. 배터리를 여러 번 재충전하고 나면 새 배터리가 필요해지는 것과 같다.

콴은 다시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이때 육신을 떠나는 것(영혼)은 ‘빈얀(vin-yarn)’이다. 빈얀은 콴과 공존하지만 구분되는 개념이다. 사람이 더 나은 내세를 위해 공덕을 쌓으려고 하는 모든 행동은 빈얀과 관계가 있다. 반면에 콴은 불교가 아닌 태국적인 정신과 관계가 있다.
 

가족

태국인들에게 가족은 첫 번째 세계다. 안전한 세계이며, 적어도 처음 몇 년 동안은 온화하고 따뜻하고 좋은 세계다. 또한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사람을 존경하고 복종하도록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태국에서는 가족이 사람을 만든다. 태국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가족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정신적, 도덕적으로는 평생, 그리고 죽어서도 가족 속에 남는다. 어머니와 딸 사이의 유대는 특히 강하다(인류학자들은 태국 사회에서 상당한 모계적 요소가 있다는 데 주목한다). 딸들은 모든 면에서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며, 태국인들 사이에는 어머니가 나쁘면 딸도 나쁘다는 일반적 믿음이 있다.

 
연공서열

연공서열은 태국인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심지어 지위나 명망 같은 세속적 고려사항을 초월한 승려들도 일렬로 늘어서서 아침 탁발 순례를 할 때 항상 선배 승려가 앞에 서고 후배 승려가 뒤에 선다. 결혼식과 은퇴식, 장례식 등의 예식에 참석한 손님들은 유쾌하고 정중하게 서로를 향해 거의 동시에 거의 같은 높이로 와이를 하는 것 같지만 그 전에 이미 지위 순으로 줄을 서서 주인공을 축복하거나 위로했다.

이런 일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에겐 어떤 계급 표시도, 은밀한 신호도 없고 복장도 얼추 비슷하다. 그런데 어떻게 서열을 아는 것일까? 그래서 어떻게,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시원하게 말해줄 수 있는 태국인은 많지 않은데, 아마 역사가라면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태국에서는 대규모 도박업과 점술업이 성행하고 있다. 현세와 전생에서의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이 개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업보의 철학, 그리고 장기적인 투자보다 현재를 즐기는 태국인의 성향이 그런 산업을 이끌어온 추동력이다.


태국에서는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어디를 가나 복권을 팔고, 버스표에도 복권 숫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심지어 병역 의무도 제비뽑기로 결정한다(검은 글씨 표를 뽑으면 입대를 면하고 빨간 글씨를 뽑으면 입대해야 한다).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도 주기적으로 모여(주로 월급날 이후) 몇 바트씩 판돈을 걸고 순전히 운에 의존하는 게임을 하며, 그중에 이긴 한두 명이 일시적으로 흥청망청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이런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성이 없다고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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