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지도/<세계를 읽다 태국>

02. 태국이라는 나라

by BOOKCAST 2022. 7. 18.
반응형

 


 



지리

태국의 면적은 51만 7000제곱킬로미터로 프랑스 정도 크기다. 오래전 아유타야와 시암으로 나뉘었던 시절에 태국은 지금보다 훨씬 작다가 나중에는 훨씬 더 컸다. 그리고 시암이던 어느 시점에 태국은 버마, 라오스, 북쪽의 란나 왕국(현 치앙마이)에 거의 삼켜졌고, 또 다른 때는 라오스의 세 왕국을 속국으로 거느리며 캄보디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다. 아래의 지도는 지난 1세기 반에 걸친 ‘상실’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있었던 일시적인 확장까지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태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 서양 열강의 식민지가 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세월이 흐르면서 스스로 변화해온 독립체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867~1909 기간 동안 시암의 영토 상실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 한때 라오스와 캄보디아, 구 버마 지역을 두루 포함했다.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보면, 오늘날 태국의 지도는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 방콕은 언제나 굶주린 입이며, 미얀마의 호리호리한 다리와 태국만 사이로 코끼리의 코가 말레이시아와의 국경까지 뻗어 내려간다. 북에서 남까지 거리는 1860킬로미터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서쪽으로는 미얀마, 남쪽으로는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면하고 있다. 주요 강들은 북부 산악지대에서 ‘태국 중부’에 해당하는 방콕 주변의 비옥한 평야지대로 흐른다.

쌀을 생산하는 중부 평야지대를 제외하면 태국은 지리적으로 크게 세 개의 문화권으로 나뉜다. 라오 말을 쓰는 북동부는 주로 강수에 의존해 벼농사를 짓고 주기적으로 홍수와 가뭄에 시달린다. 아마도 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일 것이다. 역사적 중심지이자 태국 제2의 도시로 여겨지는 치앙마이가 있는 북부는 주로 산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우림지대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남부는 무척 긴 해안선을 따라 관광업과 어업이 발달했다. 남부 국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말레이 말을 사용하며 이슬람 종교 의식을 행한다.
 

역사

고고학자들은 태국 북동부를 세계 최초로 도자기를 생산하고, 쌀을 경작하고, 청동기 문명이 번성한 지역 중 하나로 분명하게 지목하고 있다. 최근 발견에 근거한 학술적 의견은 동아시아 최초의 영구적 정착지가 메콩 강 양안, 지금의 라오스와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2100년부터 이런 정착지들에서 북으로는 중국, 남으로는 자바와 발리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청동기를 포함한 물품 교역이 이루어졌다. 태국 내에서 그 활동의 중심지는 현재 반쁘라삿과 반치앙이라 불리는 곳으로, 모두 현대식 관광버스로 쉽게 방문할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진짜’ 반치앙 가공품을 사라는 제안을 많이 받게 될 텐데, 어차피 모두 가짜일 테니 진품이라며 500달러를 요구하거든 50바트를 주겠다고 해보라. 아마 수락할 것이다.

나콘랏차시마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벽화.
 
반치앙 도기를 빚는 모습.
 


메소포타미아와 중국보다 수백 년 앞선 기원전 3000년대 태국에 청동기시대 전기가 도래했다. 태국의 초기 정착민들이 쌀을 즐기고 있을 때 중국인들은 기장을 먹고 살았다. 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서양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는 것에 긍지를 느끼지만 특정 시기에 이웃국가의 지배를 받기는 했다(또한 특정 시기에는 이웃국가들을 지배했다). 8세기에서 13세기까지 태국 남부의 상당 부분은 말레이-인도네시아의 스리위자야 제국에 속했다. 7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는 북부 변방과 남부를 제외한 태국의 상당 부분을 크메르 왕국과 문화가 지배했으며, 전성기에 버마와 라오스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던 북부 변방 지역의 란나 왕국은 1558년 버마인들에게 무너졌다.

진정한 최초의 태국 왕국은 1238년 크메르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수코타이였다. 수코타이는 현재의 태국, 라오스, 말레이시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다. 많은 태국인이 수코타이 시대를 역사적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린 황금기로 생각한다. 초기 형태의 태국 문자가 제한적으로나마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는데, 당시 비문에 사용된 문자와 언어는 오늘날 표준어인 중부 태국어보다는 라오 문자에 가깝다. 이는 현대 태국어가 라오어에서 발전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라오스와 베트남 북부에 거주하는 라오족은 오늘날의 태국인과 민족 기원 신화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공통적 기원 지점은 북부 베트남이다.

그러나 버마인, 캄보디아인들과의 충돌이 2세기에 걸쳐 계속되는 동안 태국은 캄보디아의 불교와 왕실 의식을 받아들였다. 이 시기 태국의 수도였던 아유타야는 두 번이나 완전히 파괴되었다. ‘아유타야 시대’라고 불린 400년 동안 34명의 왕이 나라를 통치했으며, 이때 태국의 중요한 특성인 군주제를 확립시켰다. 또한 태국 사회 시스템의 필수적 부분인 ‘싹디나 신분제’가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