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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도/<세계를 읽다 태국>

01. 영국인인 내가 이 책을 쓴 이유?

by BOOKCAST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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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옛날이라니?

내가 학생으로 처음 태국에 온 것은 1973년이었다. 아주 특별한 해였다. 나는 어서 거리로 뛰쳐나가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민주기념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나갔을 때, 나는 군사정권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군대는 시위대를 막지 않았고 시위하는 청년들이 국왕의 사진과 국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결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광장에 이동식 화장실까지 설치되었다.

머리 위에서 군대 헬리콥터가 맴돌고 있을 때, 나는 그저 그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거나 TV 뉴스에 내보낼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조종사에게 손까지 흔들었다. 그러나 헬리콥터의 기관총에서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총알이 난사되기 시작했을 때, 생각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위대와 함께 정신없이 달리다가 경찰서 맞은편 거리에 이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경찰서 앞에 쌓아둔 모래주머니와 그 뒤에 서 있는 무장 경찰 또는 군인들(당시 나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이 방콕에 있는 영국인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 발포하자 나는 다시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 포석 위를 달렸다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방금 전에 영국에 계신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며 태국이 얼마나 평화롭고 즐거운지 나라인지를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그때 시위대 중일부가 주차된 자동차 뒤에서 총을 쏘며 반격했다폭발음과도 같은 거대한 총성과 함께 두 전투 진영을 가르고 있는 넓은 도로에 연기와 가스가 자욱해졌다영원히 총격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리고 갑자기 총성이 멎었다나는 고개를 들었다픽업트럭 한 대가 두 진영 사이에 있는 텅 빈 거리를 따라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트럭 뒤쪽에는 짙은 황색 법의를 입은 한 무리의 승려들이 서 있었다그냥 거기 서 있었다맙소사진정한 문화충격이었다!

문화충격의 측면에서 그것은 내게 첫 경험이었다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태국 말도 할 줄 몰랐고 시간을 내서 그 문제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음날 영자신문 <방콕 포스트>를 읽어보니 국왕이 자문단의 의견을 받아 군사정권을 설득해서 미국으로 도피시켰다고 했다평화가 돌아왔다. 3주 동안 방콕 거리에는 경찰이 없었다보이스카우트가 교통정리를 하고 승려들이 불타버린 차들 사이에서 탁발을 계속했다민주주의가 돌아왔고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그리고는 군부가 다시 집권해 우리와 함께 탐마삿대학교 교문을 탈출한 학생들을 교수형에 처했다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그때 나는 이 책의 초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태국은 최근까지도 군부 쿠테타로 정권이 교체되기를 반복해왔다.
 

 

인간 이식

현대세계의 역설 중 하나는 우리가 고향을 떠나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서 다른 시간, 다른 기후, 다른 문화 속에서 평소처럼 기능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육묘장 모판의 보호된 환경을 떠나 넓고 낯선 논에 이식된 볏모처럼, 우리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번성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시들어 소멸한다. 이런 입장에 처한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인류의 가치를 증명한다. 실제로 그중 상당수는 새로운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문화충격이라는 방향 감각의 상실을 겪는다. 갑자기 그동안 배워왔던 모든 것이 가치 없게 느껴진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의미하거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는 구불구불한 글씨에 포위된 문맹자가 된다. 전화를 걸고 버스를 타고 편지를 붙이고 장을 보는 일상의 일들이 모두 탐험이 된다. 언제 악수를 해야 하는지, 언제 어떻게 태국식 합장인사 ‘와이’를 하고, 팁을 주고, 낯선 이에게 말을 걸고 초대하고 초대를 거절해야 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그들이 설령 당신 나라의 말을 이해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태국인들이 농담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당신의 눈을 보며 미소 짓는 사람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껴서 그러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당신은 다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 테지만 주변엔 돌봐줄 엄마가 없다.

자신이 온전히 기능하며 안정감을 느끼던 세계를 떠나 다른 문화로 떨어진 인간은 몇 가지 이상한 첫인상을 갖게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울상을 지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멍한 얼굴로 싱글거리며 돌아다닐 것이다. 어떤 이들은 태국을 좋아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싫어할 것이며, 많은 사람이 애증을 느낄 것이다. 무심함을 유지하는 소수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반된 느낌들이 모두 문화충격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첫인상일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 두 번째, 세 번째 인상과 함께 모든 것을 잘 이해하게 된다.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내가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한 가지는, 태국은 결코 지루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 덤비지 마라. 처음에는 느긋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라. 당신의 첫인상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말되, 가능하면 첫인상을 있는 그대로 즐겨라. 첫인상은 본질적으로 즉흥적이고 상당 부분 피상적이다. 첫인상은 온전히 당신만의 것이고 다시는 갖지 못할 그 시절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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