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기계발/<라이커빌리티>

03. 질투가 없는 라이커빌리티

by BOOKCAST 2022. 7. 22.
반응형

 


 

마이클 잭슨은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나?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모르고, 그를 괴롭힌 아동성애자 꼬리표는 사기임이 만천하에 밝혀졌지만 우리는 그를 잃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스타들은 왜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나? 왜 열혈 팬은 안티 팬이 되나? 왜 이회창 씨나 안철수 씨 같은 엘리트들이 대통령이 되지 못했나?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된 명문가, 하버드 출신에 미녀 부인을 둔 케네디 대통령은 왜 암살을 당했나? 평화를 노래하던 존 레논은 왜 팬에게 총살을 당했나? 스탠퍼드대학교 출산 래퍼인 타블로는 왜 진실을 요구받으며 분노의 대상이 되었는가?
 
대중이 사랑했던 그들은 왜 결국 대중에 의해 비극적 결론을 맞게 되었는가? 그들은 사람들의 강렬한 사랑을 끌어내는 러버빌리티(loveability)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라이커빌리티는 갖지 못했다.
 


사랑은 질투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랑은 동일시다. 내가 사랑함으로 인해 그 대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정신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사랑하면서 알게 된 그의 면면이 이제 모두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가 가진 재능, 그가 누리는 명성과 돈, 그리고 그가 누리는 사랑과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나는 갖지 못한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가 가진 것에 이제 질투를 느끼게 되고, 그것이 커지면 분노가 된다. 원래 분노는 질투를 내포한다.
 
심지어는 내가 그에게 줬던 사랑도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를 질투하는 살리에르 같은 존재가 은근히 옆에서 기다리다가 이 질투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나를 강하게 흔들며 그를 증오해야 할 이유를 대준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질투를 활활 불태우게 할 뿐이다. 내가 사랑하면서 그에게 질투가 난다. 상응하는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지 못하면 그 끝은 결국 파국이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부모-자식과 같은 특수한 사이를 제외하고는 그 생명이 길지 않다. 심지어는 짧은 부모자식 간의 사랑도 있다. 우리는 사랑받는 사람들이 부럽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부럽고, 그런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업가가 부럽다. 그런데 이 부러움은 어느 순간 질투가 된다. 질투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사랑을 파괴해버리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사랑받는 사람들을 계속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박탈감이 질투와 화학작용을 할 때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미움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미움도 애정이 있어야 생긴다. 질투가 가장 큰 미움일 때가 많다. 그저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되면 된다.
 
사랑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만함을 의미하는 러버빌리티는 타고난다. 아름다운 외모나 카리스마 같은 것이다. 카리스마 역시 ‘신이 주신 은총’이라는 뜻의 희랍어다. 하지만 라이커빌리티는 내가 만들어간다. 타고나는 것을 잘 다듬어서 라이커빌리티를 만들 수 있으며 이것은 노력의 산물이다.
 
사랑은 감정이고 결혼 생활은 일(노동)이다. 러버빌리티는 타고나는 것이고, 라이커빌리티는 노력의 산물이다. 러버빌리티를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이 라이커빌리티로 바꾸지 않으면 위험하다. 타고난 러버빌리티가 없어도 라이커빌리티는 만들 수 있다. 축구스타인 박지성 선수는 잘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 성취로 그는 웬만한 미남보다 괜찮아 보이는 훈남형이 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