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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로드 투 카타르>

04. 대표팀이 소집됐을 때 선수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by BOOKCAST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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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이 소집됐을 때 선수들은 어떤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스케줄표를 보면 딱 두 단어만 보인다. 밥과 훈련. 생각보다 꽤 단조롭고 여유 있게 보이겠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스케줄은 빼곡하다. 밥과 밥 사이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도 선수들은 나름의 훈련과 공부로 시간을 채워나간다. 그들의 자기관리는 무서울 정도다.


선수들마다 생활습관, 훈련법 등은 차이가 있다. 회복 훈련 때 아이스 배스(Ice Bath), 얼음통에 들어가는 훈련을 하는 선수와 하지 않는 선수, 훈련 전에 테이핑(Taping)을 하는 선수와 하지 않는 선수, 훈련 전 간식을 먹는 선수와 먹지 않는 선수, 휴식시간에 낮잠을 자는 선수와 자지 않는 선수 등등 개인별로 자기만의 루틴이 명확하다. 그래서 훈련과 체력 단련에서 선수들의 재량에 맡기는 범위가 있고 팀 차원에서 컨트롤하는 범위가 있다.

이러한 구분은 감독의 소관이다. 감독은 생활습관 영역을 선수에게 맡기고 훈련 영역에 대해서는 코칭스태프와 상의해서 훈련법과 시간, 횟수, 팀 훈련의 시간과 횟수 등을 정한다. 훈련법과 관리 방식 역시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서 달라진다. 벤투 감독의 경우 코칭스태프가 선수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길 원한다. 벤치 프레스를 했다면 몇 킬로그램까지 들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거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훈련이 이뤄지는 걸 선호한다. 반면에 김학범 감독은 선수 및 코칭스태프의 자율과 재량에 맡기는 편이다. 감독의 역할을 상대팀에 대한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것으로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감독의 방침에 따라 스케줄의 행간을 채워주는 건 코칭스태프들의 몫이다. 수비 코치·피지컬(Physical) 코치·전술 코치·골키퍼 코치와 전력 분석관과 영상 분석관이 선수들의 훈련 및 연습게임 영상을 가지고 분석한다. 저녁 식사 후 시작된 회의가 자정까지 이어지는 게 다반사이다. A선수가 무릎 인대 부상에서 덜 회복된 것 같으니 피지컬 코치가 이러저러하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B선수는 다른 윙백들과 좀 더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등등 선수별로 상세한 보완점을 논의한다. 코치들 모두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창문을 열어두고 회의를 하므로 미팅 룸 근처만 가도 와글와글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회의 결과는 식사를 마친 선수들에게 전달된다. 아침식사 후 피지컬 코치가 A선수와 면담해서 재활훈련법을 알려주고, 전술 코치는 B선수와 함께 영상을 보며 경기 때 움직임을 설명하고 보완점을 알려준다. 경기를 앞두고 있다면 상대팀 선수의 특징, 주의할 점, 그를 상대하기 위해 우리 선수가 보완할 점, 훈련 포인트 등을 짚어준다. 면담은 개별 면담, 그룹 면담이 병행된다.

선수들은 연습 게임을 할 때 GPS를 장착한다. 게임이 끝나면 전력 분석관과 영상 분석관이 선수들의 움직임을 분석한다. 선수들이 얼마 만에 체력이 떨어지는지, 슛할 때 자세가 어떤지 등을 꼼꼼하게 살핀다.

선수들의 기량과 감독의 전술을 맞추는 것도 코칭스태프의 역할이다. C선수는 윙백인데 이번 전술이 4-4-2가 됐으니까 풀백으로 쓰자고 결정되었다면 그에 맞게 역할을 알려준다. 물론 선수들은 이미 포메이션별 역할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감독의 전술에 따라서 섬세한 코칭을 해주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선수들은 개인 훈련이나 트레이닝 등을 한다. 코치들이 제시한 일종의 과제를 수행하는 시간이다. 저녁 식사 후도 마찬가지다. 코치들이 최선을 다해 알려준 정보들을 어떻게 자신에게 맞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선수의 기량이 달라진다. 그래서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코치들의 의견을 훈련법, 체력단련, 경기 등에 반영한다. “축구는 몸이 아닌 머리로 하는 것”이라는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축구선수이자 명감독)의 말이 실감 난다.

이처럼 훈련기간 때 선수들은 꽤 바쁘다. 신체 훈련을 생활화하여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자유시간이라도 빈둥거리지 않고 축구와 관련된 독서를 하거나 유튜브에서 훈련법, 부상회복, 취약점 극복법 등을 찾아본다. 피지컬 코치로부터 배운 홈트를 하거나, 짐(Gym)에서 체력을 단련하는 선수들도 있다. 휴대폰 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떠는 건 잠깐이다.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기에 아쉬운 점은 딱 하나뿐이다. 언제쯤 대표팀 선수들과 위닝일레븐을 해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는 것. 불현듯 닥쳐올 그때를 위해 열심히 연습할 테다.


카더라 통신 Out

지잉~ 카톡이 울린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C선수가 보낸 약품 사진이 떠 있다.

“박사님, 이거 먹어도 돼요?”
“성분을 확인하고 알려줄게요.”

상품 박스에 있는 ‘원재료 및 함량’을 살펴보니 문제 될 만한 성분이 없었다. “먹어도 되겠다.”는 회신을 보내주었다.

선수들은 몸이 재산이다. 그래서 살뜰히 건강을 챙긴다.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입수해서 활용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건강보조식품이나 약품을 꽤 많이 받는다. 몸에 좋다며 가족이 챙겨주는 것에 팬들이 보내주는 것까지 다양한데, 선수 본인이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라며 보내오는 것들도 있다. 선의인 척 상품을 보낸 다음 “이 제품은 국가대표 선수들도 먹는다.”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듯하다.

선수들 앞으로 집결되는 건강보조식품의 종류를 보면 조선팔도를 넘어 글로벌한 수준이다. 그러나 몸에 좋다고, 선진국 제품이라고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이런 식품제재에 대해서는 ‘편식’이 필요하다. 혹여라도 금지 약물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에게 건강보조식품이나 (병원 처방이 아닌) 약품, 치료제 등을 사용할 때 꼭 나한테 물어보라고 당부한다. 모두 내가 FIFA와 AFC 도핑 컨트롤 오피서인 줄 알고 있으므로 궁금한 사항이 있을 때 수시로 연락해 온다.

선수들은 참 순수하다. 가족이나 지인이 “이게 좋대.”라고 말하면 쉽게 믿는다. 그래서 선수들의 신뢰를 받은 사람들은 그러한 마음을 지켜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나에게 좋은 약이 선수에게는 독이 될 수 있는 만큼 뭔가를 권하는 건 신중을 기해야 한다.

축구를 좋아하고 선수들이 경기를 잘하기를 바라는 팬으로서 선수들의 어떤 이야기든 다 들어주려고 한다. 선수들은 처음엔 선뜻 다가오지 못하다가 신뢰가 쌓이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본인과 가족의 건강 이슈는 말할 것도 없고 사생활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선수들은 대외적으로 노출된 위치에 있는 만큼 자기 속내를 섣불리 말하지 않으려 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어도 겉으로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선수들은 어떨 때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자신 때문에 가족이 비난의 대상이 될 때이다.

경기 때 뛰는 게 왜 모양이냐, 실력이 형편없다, 등등의 비난에는 단련돼 있다. 워낙 많아서 덤덤하다. 그런데 가족이 공격 대상이 될 때는 멘탈이 무너져 내린다. 일부 팬들이 선수들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이 등을 상대로 도를 넘은 인신공격을 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스포츠 기사에 대한 댓글 쓰기가 사라지자 선수들의 SNS로 찾아와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을 보내는 것이다. DM(Direct Message)으로 보내기 때문에 피하기도 어렵다. 선수들은 대중과 소통하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마케팅 툴로서 SNS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욕을 차단할 수 없다는 문제를 겪는 것이다.

한 선수의 경우 이런 일이 반복되자 SNS에 글을 올렸다. 일부 팬들이 가족의 SNS를 알아내서 DM을 보냈는데 인신공격하는 내용들이었다. 선수는 나에 대한 비난은 참을 수 있지만 가족에 대한 욕을 하지 말아 달라는 글을 올렸다. 다른 선수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들은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개인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전자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스포츠 선진국들의 경우 선수들의 마음을 케어해주는 전문 상담사가 있다. 우리나라는 팀닥터들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잠을 못자는 경우가 있다. 잠을 못자면 컨디션이 저하되고 경기력에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당연히 좋지 않다. 마음의 병은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혼자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나한테든, 친구든, 상담사든 다 좋으니 믿을 만한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마음의 위로를 받으라고 권유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네가 모르는 누군가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끙끙 앓기보다 털어놓으라고 한다.

말을 하는 순간 풀리는 게 있다. 환기(Ventilation)라고 하는데 꽉 막혀 응어리진 감정이 스르르 풀리면서 정상적인 흐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사람은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누군가와 수다로서 나누는 게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다소 편해진다.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고 지인에게 말해도 된다. 선수들은 노출된 신분이라 아무에게나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걸 꺼린다. 혹시라도 소문이 날까 걱정스러워서다. 그래서 친한 선수들끼리 대화를 많이 나눈다. 선수들 사이에 서로 친한 그룹, 깐부라고 할 수 있는 그룹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의 단짝 친구가 되어 위로가 되어준다.

사생활을 제외하고 가장 주요한 대화 이슈는 건강이다. 나는 이전부터 이청용 선수(울산현대)와 대화를 많이 나눴다. 이청용 선수는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무릎 부상으로 고생해 왔는데, 굉장히 관리를 잘해나가고 있다. 그는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저런 질문을 자주 한다. 그 덕분에 선수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무엇을 고민하고, 부상을 당한 심정이 어떤지, 선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선수들이 치료를 받는 병원이 있다 하더라도 부연 설명을 더 해준다. 병원으로부터 외과수술을 권유받았다면 선수가 수술부터 재활까지 모든 절차를 잘 따를 수 있도록 관련 정보와 의미를 알려주는 거다. 사실 의료인과 비의료인 간의 정보 격차는 상당히 크다. 그래서 의사가 뭔가를 권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면서 그냥 따른다. 물론 의사의 치료방침을 잘 따라야 하지만, 건강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추고 자기 몸 상태를 알면 보다 능동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마냥 끌려가기보다 좀 더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거다.

알레르기가 심한 선수가 있었다.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경기력에 영향을 받는 상태였는데, 선수 본인은 자신이 왜 호흡에 어려움을 겪는지 이유를 몰랐다. 알레르기 비염이 장기화되면 염증 때문에 콧구멍의 살이 두꺼워지고, 콧구멍의 크기가 줄어들어 숨쉬기가 불편해진다. 그와 만난 자리에서 비염 문제를 알아챘기에 설명해 주었고, 되도록 빨리 치료받을 것을 권했다.

선수들은 몸이 재산이지만 노출된 신분 탓에 ‘아무 병원’이나 가지 못한다. 일반인들은 병원을 가기 위해 인터넷 검색이나 TV 프로그램을 참고하지만, 선수들은 안 그렇다. 자신의 병에 대해 바깥에 ‘광고’하지 않는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느라 선수들 간에 알음알음으로 병원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보면 엉뚱한 일이 생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무릎을 다친 선수가 발목 부상을 치료했던 동료 선수에게 물어봐서 그 의사를 찾아간다. “믿을 만하다”고 담보해 주면 다른 선수들도 뒤이어 그를 찾는다. 발목 부상 치료에 뛰어난 의사인데 무릎, 허리, 척추까지 다 치료받는 것이다. 해당 분야에 특화된 다른 의사를 소개해 줘도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대외적으로 노출된 신분이라 개인정보에 대한 신뢰 문제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선수들에게 설명해 준다. 동료 선수가 괜찮았더라도 나는 다를 수 있고, 동료가 재활시기가 빨랐다고 나도 그럴 거라는 생각 역시 안 된다고. 똑같은 무릎수술이라도 관절 어느 부위인지, 연골 파열 정도가 어떤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복합적인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선수들은 의료진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도 하고, 반대로 외면하기도 한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 여기서도 중용(中庸)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중간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 말이다. 선수들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주관을 갖고 의료진과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이럴 때 건강 관리의 중용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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