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극 빙상은 세계 유일의 해양 빙상이며, 어디에서도 해수면 위의 땅에 닿지 않는다.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할 것이다. 얼음은 바다 밑바닥에서 형성되었을까, 아니면 바다 표면에서 자라나 결국 해저까지 도달했을까?
답은 빙상이 처음 형성되기 시작할 때, 암석들이 해수면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계속 두꺼워진 빙상의 무게로 인해 지표면이 지각 평형(지각이 밀도가 큰 하부층, 즉 맨틀에 떠 있으면서 평형을 유지한다는 가설)이라고 불리는 과정으로 가라앉았다. 바다 위 얼음이나 물속 보트처럼, 지구의 지각은 그 아래 놓인 맨틀 암석의 매우 두꺼운 흐름을 타고 떠다닌다. 지각에 무게가 더해지면, 물에 떠 있는 보트 선착장을 밟았을 때처럼 약간 가라앉는다. 암석들이 천천히 흐르기 때문에 지각 평형에 의한 고도 변화에는 수만 년이 걸린다.
물에 떠 있는 보트 선착장이 다소 유연하다고 가정하면, 선착장에서 사람이 밟은 곳 아래가 가장 깊게 가라앉는다. 마찬가지로 지각 또한 빙상 중앙부에서 가장 깊게 가라앉았다. 결과적으로 빙상은 중앙으로 갈수록 점점 깊은 물속에 잠기게 된다. 즉 빙상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움푹 팬 곳을 메우고 있다(그림 18).
이런 형태의 빙상은 바다 쪽으로 급격하게 붕괴하기 쉽다. 오늘날 얼음의 흐름은 로스 빙붕 자체와 로스 빙붕 위로 솟아오른 기반암 몇 군데의 방해를 받는다. 만약 로스 빙붕이 붕괴되면 바다로 얼음이 가파르게 흘러 들어가고 결과적으로 빙상이 얇아질 수 있다. 사람이 발을 떼면 보트 선착장이 다시 떠오르듯이 빙상도 얇아질수록 더 높이 떠오르려 할 것이다. 즉 빙상의 바닥이 기반암에서 떨어지게 되면서 얼음이 훨씬 더 빨리 흐를 수 있다. 지표면 역시 얇은 빙상과 같은 이유로 상승하지만, 암석이 물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이므로 이 과정은 얼음 반동보다 훨씬 느린 수천 년이 걸린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린란드와 마찬가지로 서남극 빙상이 더 빨리 융해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사전에 예측하기는 어려우며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지구의 빙상이 얼마나 빨리 녹을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만약 과거처럼(하인리히 사건이나 해빙수 펄스1A 때처럼) 빙상이 한 세기 만에 붕괴된다면, 이번 세기에 다시 붕괴되어 우리와 후손은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실제로 체감할 수도 있다. 과거의 기후 변화 중 일부는 매우 빠르게 일어났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처럼 빨리 상승한 적은 없었다. 다음 세기의 전망은 기후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모델에서의 변화가 너무 느리면 예측확률 또한 낮아진다.
빙상이 녹는 속도에 관심을 두는 또 다른 이유는 빙상이 1만 년이 아닌 1천 년 안에 붕괴된다면, 지구 온난화의 첫 번째 천 년이 훨씬 더워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천 년이 가장 뜨거운 이유는 풍화 작용에 의한 이산화탄소 소모가 천천히 일어나서다. 만약 빙상이 녹고 붕괴되는 데 수천 년이 걸린다면 첫 번째 천 년의 온난화에도 빙상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림 17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이 3℃ 달라져도 해수면에 대한 영향은 50m 정도 상승한다. 만약 빙상이 천 년 안에 녹는다면, 화석 연료에서 나온 2천 기가톤의 탄소가 오랫동안 3℃ 이상 온도를 높일 것이다. 반면 빙상이 녹는 데 만 년이 걸린다면, 궁극적으로 그만큼의 얼음을 녹이는 데는 5천 기가톤의 탄소가 필요할 것이다.
이용 가능한 화석 연료 탄소의 양, 대기 중에 방출된 이산화탄소의 긴 수명, 장기간에 걸친 지구 기후에 대한 빙상의 민감도를 모두 합치면, 인간의 활동으로 해수면이 수십 미터 높아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소한의 영향만 고려하더라도 적어도 10m의 해수면 상승은 피하기는 어렵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지구 평균 기온의 2℃ 상승은 종종 위험 한계 기준점으로 간주된다. 2℃는 수백만 년 동안의 지구보다 더 따뜻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값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긴 수명을 고려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최댓값에서 2℃ 온난화가 예측되지만 수천 년 동안은 1℃ 이하로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는 1950년의 자연적 기후의 추정 온도보다 약 1℃ 따뜻했고, 당시 해수면은 현재보다 4~5m 정도 높았다. 빙하기 때의 낮은 해수면으로부터 에오세의 높은 해수면에 이르기까지 해수면의 변화량은 1℃ 상승에 대해 10~20m 정도다. 만약 지구 온난화가 그런 추세로 이어진다면, 최대 지구 온난화가 단 2℃로 제한된다고 해도 해수면은 10m 이상 상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에 비용이 얼마나 들까? 결국 토지의 문제다. 토지 같은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는 밀도나 온도와 같은 사물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사람 간의 거래로 결정된다.
토지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려면, 다년간의 경제적 생산량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보통 사람이 대출금을 갚는 데는 몇십 년이 걸린다. 부동산의 가치는 사람의 수명이 아니라 그보다 짧은 시간에 거주할 장소에 대해 지불하는 대가다. 집을 사는 데 천 년이 걸린다면 그리 오래 사는 사람이 없으므로 누구도 그 집을 살 수 없다. 지구에서 육지의 경제적 가치가 10년간의 경제적 생산량과 같다고 가정해 보자.
해수면이 10m 상승할 때 침수되는 2.2%의 지표면에는 현재 세계 인구의 약 10%가 살고 있다. 도시들은 육지의 가장 낮은 부분에 편중되어 있으며, 저지대의 삼각주는 비옥해서 농사를 짓기에 알맞다. 이러한 자산이 인류에게 평균 이상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인구에 따라 토지 가격을 조정하고 세계 인구의 10%가 살고 있는 2.2%의 지표면이 부동산 자산의 10%에 해당한다고 가정해 보자.
지표면의 경제적 손실은 약 1년간의 경제적 생산량과 맞먹는다(전체 표면=10년간의 생산량×침수 면적의 10%). 만약 해수면 상승이 100년에 걸쳐 일어난다면, 경제적 타격은 매년 전 세계 GDP의 1%에 불과하여 그리 비싼 비용은 아니다.
이 추론의 결함은 우리가 경제적 거래를 위해 실제로 지표면을 사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처럼 일부 육지가 해수면보다 낮아도 잘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해수면에 대비하는 비용은 거래 비용과 같지 않다. 바닷물이 지하수로 스며드는 산호섬은 어떤 비용을 치른다 한들 해수면 상승의 피해를 피할 수 없다.
간단히 계산해 보면, 5천 기가톤의 탄소로부터 50m의 해수면 상승이 일어나므로 1kg의 탄소로 10cm2의 면적이 소실되는 셈이다. 즉 휘발유 1갤런(약 3.8리터)을 태우면 약 50cm2의 면적이 사라진다. 미국인의 연간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0m2, 즉 파리의 고급 아파트 크기에 해당되는 면적을 물에 잠기게 한다.
궁극적으로 여기서 협상 중인 품목은 지구의 장기적인 환경 수용력이다. 판매 가격은 단기적으로 편리한 에너지다. 화석 연료 이산화탄소 방출의 가장 뚜렷한 장기적 영향은 거대한 빙상의 융해에 수반되는 해수면 상승일 것이다. 우리는 결국 발밑의 땅을 희생시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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