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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공학/<얼음에 남은 지문>

05. 다음 빙하기는 올 수 있을까?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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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전 궤도와 북반구의 여름

2세기 전만 해도 기후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보다 다음 빙하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1896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에 대한 기후 민감도를 처음 추정했던 아레니우스는 마지막 빙하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흥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빙퇴석이 거대한 빙상의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형성된 빙하 퇴적 지형임이 알려졌다. 당시에는 탄소 연대 측정이 가능하지 않아서 빙퇴석만으로 시기는 밝혀내지 못하고 단지 한랭기였다는 사실만 알아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온 따뜻한 시기, 즉 간빙기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 빙하 시대와는 달리 온난 기후의 지속성에 대한 정보를 지형에서는 찾을 수 없다.

1970년대에 들어서 해양 퇴적물에 포함된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 즉 산소-16에 대한 산소-18의 비율을 측정하여 시간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지구는 지난 100만 년의 대부분을 빙하 기후 상태로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의 간빙기 단계는 보통 1만 년 동안 지속되었으니, 빙하기 상태는 10배 더 오래 지속된 셈이다. 기후에 대한 궤도 이론에 따르면, 간빙기 간격은 지구의 세차운동이라 불리는 궤도 주기로 결정되며 궤도 주기의 절반은 대략 1만 년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현재 간빙기는 약 1만 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간빙기의 거의 막바지에 와 있는 것일까?

빙상의 얼음이 생성되는 과정은 빙기/간빙기 주기의 일부로서 과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와 같은 기후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간빙기 기후 상태의 습도나 구름의 양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요소를 알고 있다. 빙하 주기에서 직전의 기후 상태는 2만 년 전의 마지막 빙하 기후였으며 꽃가루, 산소 동위원소, 기타 대용 자료를 통해 복원될 수 있다.

12만 년 전 마지막 간빙기가 끝나고 빙하기가 다시 찾아오면서 빙상이 성장하기 시작할 때까지, 이산화탄소는 전형적인 간빙기 수준인 280ppm으로 높은 상태를 유지했다. 만약 빙상 형성의 원인이 이산화탄소 감소가 아니라면, 다른 용의자는 지구 궤도 변화일 수밖에 없다.

햇빛의 강도는 위도와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주기로 변하지만, 지구에서의 얼음의 양은 북반구, 곧 북위 65도 부근에서의 여름 햇빛 강도에 연관되는 듯하다. 그림 19에 따르면 지난 80만 년 동안 북반구 여름의 햇빛이 특정 트리거 값(일종의 임계값)보다 낮아질 때마다 예외 없이 지구에 얼음이 증가하고 해수면이 낮아졌다.

그림 19. 위: 지구 궤도 변화에 따른 북반구 여름철 햇빛의 강도. 아래: 빙상 부피의 변화. 수 직 띠는 여름의 햇빛 강도가 트리거 값 아래로 떨어지는 시기이며, 그때 빙하가 성장한다.
 


여름이 빙상 발달에 중대한 시기라는 것이 중요하다. 캐나다 북동부는 겨울이 항상 추워 눈이 쌓인다. 따라서 빙상의 운명은 여름이 눈을 녹일 정도로 따뜻한가에 달려 있다. 여름철 햇빛이 빙상 생성을 정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북반구의 여름은 전체 행성을 빙하기로 밀어 넣는 태양 강제력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 즉 유효타격점처럼 마치 불시에 명치로 날아드는 주먹과도 같다.

실제로 북위 65도에서 여름철 햇빛이 최근에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 현재는 트리거 값에 근접하고 있으며(그림 20), 약 3천 년 후에는 거의 닿을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트리거 모델에 따르면 이번에는 빙하기가 오지 않는 대신 5만 년 동안 간빙기가 계속된다. 하지만 현실은 트리거 모델보다 불분명하다. 현실에서는 서늘한 여름이 얼마나 지속되고 겨울에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리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그림 20. 위: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과거와 현재. 아래: 북반구 여름철 햇빛의 강도와 트리거 값. 트리거 값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에 따라 변한다.
 


빙하기는 주로 여름철 햇빛 강도가 낮을 때, 즉 트리거 값보다 낮을 때 시작된다. 하지만 그 경계부에서는 2차 원인도 중요할 수 있다. 또한 트리거 값을 기준으로 하는 메커니즘이 아주 강력하더라도 실제 트리거 값은 빙하 부피에 대한 기록으로 분석되고 불확실성도 작지 않다. 모델에서 트리거 값을 약간 더 높게 설정한다면 경계부의 상태는 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던 것이 명중되듯이 간빙기 상태가 바로 빙하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는 현재 수준에서 신뢰할 만한 예측이 어려운 경우다. 즉 판단하기 쉽지 않다. 어떤 궤도 변동도 다음 주에 빙하기가 시작되리라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다. 새로운 빙상이 자연적으로 1천 년 또는 2천년 후에 형성되기 시작할 수도 있고, 지구 온난화에도 불구하고 수만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트리거 모델에 따르면 기후 시스템이 이번에 빙하기로 전환되지 않을 시에 다음 기회는 앞으로 5만 년 뒤다.

앞으로 10만 년은 태양 강제력의 변동성이 평상시보다 적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 궤도가 거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기후를 조절하는 햇빛 강도의 변화는 대체로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와 타원 궤도 사이의 상호 작용에서 비롯된다. 북반구의 여름은 북극이 태양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다. 타원 궤도에서 북반구의 여름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가깝든 멀든 상관없다. 만약 지구가 멀리 떨어져있다면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다.

지구의 공전 궤도가 거의 원형인 요즘 같은 시기에는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거의 같아서 태양의 변동성이 줄어든다. 지구가 이런 궤도 상태로 있었던 마지막 시기는 약 40만 년 전이다. 그 당시 간빙기의 기간은 약 5만 년으로, 트리거 모델이 현재 간빙기에 대해 예측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버지니아대학교의 고기후학자인 윌리엄 러더먼(William F. Ruddiman)은 《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Plows, Plagues, and Petroleum)》라는 흥미로운 책에서 수천 년 전부터 농지 개간이라는 인간의 활동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메테인 농도를 바꾸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이산화탄소 농도가 인간 활동의 영향 없이 자연적으로만 변화했다면 다음 빙하기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라고말한다.

러더먼의 결론은 12만 년 전 마지막 간빙기 동안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간빙기 초기에 가장 높았고, 간빙기를 거쳐 빙하기가 다시 시작될 때까지 줄어들었다. 지금의 간빙기에 이산화탄소는 높은 농도로 시작하여 점차 감소했고, 약 8천 년 전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러더먼은 마지막 상승에 대해 초기 인류의 농업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러더먼의 책이 출판된 이후, 기후에 대한 빙하 코어의 기록은 약 40만 전의 과거까지 더 연장되었다. 40만 년 전에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오늘날처럼 거의 원형이었다. 그 당시 간빙기는 5만 년 동안 이어졌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내내 높게 유지되었다. 이 사실은 간빙기 기간이 반드시 1만 년일 필요가 없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지금의 간빙기가 러더먼이 상상한 것만큼 반드시 불운하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최근 수천 년 동안 증가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탄소-12에 대한 탄소-13의 비율은 이산화탄소가 벌목이 아닌 해양에서 유래했음을 가리키는 듯하다. 어쨌든 인류에게는 미래의 빙하기를 통제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모든 빙하기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전형적인 간빙기 농도인 260~280ppm일 때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산화탄소는 380ppm까지 증가했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빙하기의 시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와 공동 연구자인 안드레이 가노폴스키(Andrey Ganopolski)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CLIMBER라고 불리는 기후 모델을 사용했다. 모델에는 대기, 해양, 그리고 빙상의 형성과 유동 및 융해가 포함된다.

안드레이는 오늘날과 매우 유사한 초기 기후, 즉 지구가 태양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북반구의 여름이 찾아오는 상태로 모델을 설정했다. 그다음 궤도의 이심률을 천천히 높이면서 햇빛 강도를 서서히 줄였다. 모델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280ppm일 때, 여름 일사량이 455W/m2 이하로 떨어지면 캐나다 빙상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는 고기후 기록에서 도출된 트리거 값과 매우 가깝다. 안드레이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560ppm(자연 상태의 2배)으로 늘려 다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지구는 여름 일사량이 407W/m2로 떨어질 때 까지는 빙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그림 21).

그림 21.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함수로 나타난 북반구 햇빛 강도의 트리거 값. (Archer and Ganopolski, 2005, Geochem., Geophys., Geosys. 6(5): doi 10.1029/2004GC000891)
 


개별 기후 강제력은 표면적당 에너지 강도(W/m2)로 비교할 수 있다(2장 참조). 기후·빙상 모델은 빙상이 형성되는 동안 북반구 여름철의 햇빛 강도가 약 4W/m2만큼 줄어들면 이산화탄소에 의한 1W/m2의 온난화로 보상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산화탄소 강제력에 비해 공전 궤도에 따른 태양 강제력은 빙하기가 시작될 때 더 약해진다. 연평균으로 보면 궤도 변화로부터 지구가 받는 전체 일사량이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궤도 변화는 대부분 서로 다른 위도와 계절 사이에서 햇빛의 강도를 바꾼다. 예를 들어 북반구 여름이 남반구 여름에 비해 햇빛이 약하다는 것은 북반구 겨울이 남반구 겨울에 비해 햇빛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양은 이러한 극단을 어느 정도 평균화할 수 있을 만큼 열을 충분히 저장한다. 반면 이산화탄소 강제력은 거의 모든 곳에서 1년 내내 동일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1W/m2의 이산화탄소 강제력은 궤도에 따른 태양 강제력 1W/m2보다 빙상 생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대기 중 화석 연료 이산화탄소의 수명이 길다는 것은 인간의 활동이 앞으로 오랜 시간 햇빛 강도의 트리거 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20에는 미래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예측값과 빙상 형성의 트리거 값에 영향을 주는 더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을수록 트리거가 크게 이동한다. 자연적인 간빙기 이산화탄소 농도에 의한 자연적인 기후의 진화는 거의 빗나갔고, 빙상 형성이 시작될지도 불확실해졌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트리거는 점점 더 멀리 이동한다. 위기일발의 상황은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빙하 주기에 끼친 영향은 비교적 적어 보인다. 북반구의 여름철 햇빛 강도는 자연적인 이산화탄소 수준의 트리거 값보다 약 2W/m2 더 밝았다. 인류는 1750년 이후 약 300기가톤의 탄소를 방출했는데, 이는 3천 년 후의 트리거 값을 약 2.5W/m2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위기일발의 상황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만약 인류가 궁극적으로 2천 기가톤의 탄소를 태운다면(다음 세기에 대한 통상적인 전망), 5만 년 안에는 빙하기가 오지 않을 것이고 13만 년 후의 서늘한 여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만약 전체 석탄 매장량(즉 5천 기가톤의 탄소)을 사용한다면, 빙하기는 50만 년 정도 지연될 수 있다. 지구는 현재 원형 궤도의 기간이 아니라 다음 원형 궤도가 나타나는 40만 년 후까지 간빙기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겉으로는 좋은 일인 듯싶다. 나는 지난 빙하기에 약 1.6km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 있었던 시카고에 살고 있다. 빙하기의 복귀는 부동산 가치에는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예측을 이산화탄소 배출에 찬성하는 주장으로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온난화의 잠재적 위험은 즉각적이지만, 자연계에서 다음 빙하기는 수천 년 동안 발생하지 않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이미 에너지 인프라의 일부가 아니라면, 아무도 다음 빙하기의 위험을 모면하고자 이산화탄소를 일부러 배출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트리거 모델의 실질적 의미는 궤도 변화로 초래되는 자연적 냉각이 지구 온난화에서 우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델의 또 다른 의미는 당장의 실현 가능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해 인류는 지구궤도에 의한 기후 영향을 능가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고, 수백만 년 동안 지구에서 작동되어 온 기후 시스템을 통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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