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으로부터의 실제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마저 무척 가까운 도시. 원래 남한의 영토에 속했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 영토가 되었다. 고려의 수도였고, 그때부터 조선시대 내내 외국과의 교역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당연히 상업이 발달했고, 우리나라 유명 경제인 중에서도 개성 출신이 많다. 현재 개성에는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조성된 개성공단은 남쪽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을 투자하여 남북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자는 의미로 마련된 사업이다.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이 실제로 운행된다면 아마도 개성이 북한 땅의 첫 번째 경유지가 될 것이다.
서방에도 유명했던 국제적 상업도시
삼한시대에 개성은 대방에 속했고, 고구려가 관할하던 시절의 명칭은 부소갑이었다. 통일신라 진흥왕 이후로는 송악이라고 불렸다. 이후에 명칭이 바뀐 뒤에도 ‘송도(松都)’라는 별칭으로 많이 불렸는데, 예전에 이곳에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개성시 산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소나무 숲이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919년에 개성을 수도로 삼았다. 이후 개성은 개경 또는 황제의 도읍이라는 의미로 황도, 황성 등으로 불렸다. 1392년 조선 건국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1393년에 도읍은 한양으로 이전됐고, 이후 개성은 송도, 송경, 중경 등으로 불렸다.
이 시기 개성은 고려의 수도일 뿐 아니라 외국과 교역이 활발한 국제도시이기도 했다. 특히 유명했던 것은 인삼으로, 중국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고려인삼의 품질을 인정할 정도였다. 나라가 바뀌면서 개성에 있던 양반들은 과거시험을 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상인이 되었는데 원래 머리가 좋았던 이들이라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금방 적응했던 모양이다. 조선의 특산품을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팔고, 반대로 외국의 진귀한 물건들을 사들이면서 이득을 얻은 개성상인들은 나중에는 양반들도 무시 못 할 세력이 되었다. 개성상인들은 상단을 조직하여 ‘송상’이라 불렸고, 전국에 ‘송방’이라는 지점을 만들어 활동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상업이 발달하고 화폐가 활발히 유통되면서 이들은 큰돈을 벌었다. 개성상단을 통해 이 지역 상인들에게 전해 내려온 상인정신은 개성 출신 경제인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이들이 성공하는 바탕이 되었다. 실제로 오뚜기·녹십자·한일시멘트·신도리코·유니드·한국제지· 삼정펄프·아모레퍼시픽·에이스침대·한일시멘트·개성상회 등 여러 유명한 기업의 창업가들이 모두 개성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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