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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

03. 즐기는 사람은 더 오래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by BOOKCAST 202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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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는 해외 출장이 잦았다. 집을 비우는 게 미안하셨는지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를 위해 인형이나 장난감을 사 오곤 하셨다.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 인형, 톰과 제리가 그려진 필통, 뽀빠이 아저씨 가방, 걸을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나곤 했던 도날드 덕 신발 같은 것이 기억난다.

당시에는 해외 캐릭터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나는 각각의 캐릭터에 입혀진 내용을 알지 못했다. 대신 내 마음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만들고,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미키와 미니는 항상 다정하게 함께 있으니 좋은 친구 사이일 거야. 우리 엄마 아빠처럼 부부인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릴 때 내가 가지고 놀던 캐릭터들에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1918년에 탄생한 영리하고 호기심 많고 때로는 엉뚱하기도 한 미키 마우스는 친구들 중에 리더다. 미니 마우스는 미키 마우스의 여자 친구이며, 블랙 피트는 미키 마우스의 라이벌이다. 일본의 유명 캐릭터 헬로 키티에도 그만의 스토리가 있다. 키티는 런던에 살고 있는 씩씩하고 착한 소녀다. 쿠키 굽는 것과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며 언젠가 시인이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한다. 키티는 쌍둥이 동생 미미와 단짝이다. 1970년에 일본의 SF 애니 캐릭터로 탄생한 도라에몽에게도 재밌는 서사가 있다. 진구가 남긴 빚이 고손자 시대까지 남아서 곤란해진 미래의 진구 가족들을 위해, 22세기의 로봇 도라에몽이 과거로 돌아와 진구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도라에몽은 주머니에서 신비하고 재밌는 도구를 꺼내 진구를 도와주고 친구가 된다. 도라에몽 덕에 진구의 미래는 조금씩 밝아진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캐릭터 인형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즐거웠다. 작고 귀여운 외모는 그대로지만 그들도 나와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인형을 가지고 역할 놀이를 하지는 않지만, 어릴 적 나의 친구들이었던 캐릭터들과 나란히 나이를 먹으며 함께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한 회사에서 캐릭터 관련 무역, 디자인과 개발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설렐 수밖에 없었다. 소위 말하는 덕업일치를 이룰 기회, 성덕이 될 기회였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그 일이 싫어지지 않아?”
“취미는 취미로만 남겨 두라는 이야기가 있잖아.”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가끔 이런 조언이 따라온다. 물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게 되었을 때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계속 일을 생각해서 일과 개인의 삶이 뒤섞여 버리기도 하고, 남들보다 과도하게 열정을 태워 쉽게 피로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줄 수 있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게 좋았다. 직업이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인데, 그때 내가 애호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남들보다 잘할 수도 있게 된다. 즐기는 사람은 노력하는 일을 고되게 여기지 않기에, 더 오래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나는 캐릭터 디자인과 개발 업무를 진심으로 즐겼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그 시간을 거의 세 번 가까이 반복할 동안 나는 이 업계에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 일이 좋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한다는 건 삶의 평균 행복 값이 올라가는 일이다.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로 엄마 아빠 역할 놀이를 하던 소녀는, 자라서 캐릭터를 개발하고 제품을 디자인 및 제작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미키 마우스를 만든 월트 디즈니는 꿈을 이루고 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모든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일이 즐거울까? 당신은 꿈을 이룰 용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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