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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

05. 우리는 언제 죽을까?

by BOOKCAST 2022.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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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죽을까? 심장이 멈출 때? 혹은 뇌사에 빠질 때? 아니면 사회에서 내 존재가 잊힐 때?
어떤 순간을 죽음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삶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나는 단순히 육체 기능의 멈춤을 죽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몸은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렇게 믿어야만 내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견딜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덧없지만 죽음 후는 다를 거라는 말에 기대어 본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는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죽은 자의 날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제사가 생각나지만, 경건한 우리나라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멕시코의 그것은 명절이자 축제다. 화려한 색으로 장식한 해골과 촛불로 무덤을 꾸미고 죽음의 꽃이라 불리는 금잔화를 뿌려 영혼이 집으로 찾아오는 길을 마련해 준다. 멕시코 원주민인 아스테카인들은 ‘삶은 짧은 순간이고 저승이야말로 영원한 세계’라고 생각했다.

 

영화 <코코> 포스터
 


애니메이션에서는 누군가 죽은 이후에, 산 사람이 그 사람을 생각해 줘야 축제에 갈 수 있는 티켓을 얻는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 입문했더라도 자신을 아름답게 떠올려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셈이다.

영화를 보며 나는 코가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영화가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먼저 떠난 반려견 코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가 코코를 생각하지 않아서 코코가 축제에 초대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아이 같은 상상이지만, 사랑하는 존재를 잃었던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 미신이나 이야기조차 큰 위로가 된다는 걸. 나는 코코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가 죽는 순간은 그 사람의 숨이 끊어질 때가 아니라, 아무도 그 사람을 기억하지 않을 때다.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큼 꾸준한 실천은 없다.

코코가 내 곁으로 온 건 행운이었다. 그때 나는 유기견 보호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타운 하우스의 이웃들이 차라리 코코를 구조해 오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했다. 코코는 아메리칸 아키타라는 혈통이 있는 품종견으로 농장에서 혈통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가 좋고 생긴 것이 예뻐 강아지 경연 대회에서 1등을 해 잡지에도 실렸다. 혈통 있는 품종견에, 강아지 대회 1등이라고 하면 잘 관리 받으면서 살 것 같지만 당시 코코는 학대받고 있었다. 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곧은 다리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 다리를 만들기 위해 농장에서는 코코를 누워서 잘 수 있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달리면 다리가 휘어져서 점수가 마이너스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 코코는 서서 자야만 했다. 대회에서는 걸을 때 얼마나 품위 있게 걷는지를 보기 때문에 코코는 산책도 자주 할 수 없었다. 코코를 데려왔을 때 코코가 걸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100m 정도였다. 뛰는 것이 본능인 강아지가 100m도 채 산책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사는 건 얼마나 끔찍했을까? 코코는 스트레스로 생리가 끊겼고, 농장에서는 약해진 코코를 돌보아 주지 않았다. 마침 코코의 딸과 손녀를 입양한 사람들이 나의 이웃이었다. 코코의 안쓰러운 사정을 아는 그들이 나에게 입양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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