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강아지 입양 절차가 까다롭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절차 없이 유기견을 데려올 수도 있지만, 홍콩에서는 유기견 입양을 위해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절차도 복잡하다. 서류는 물론 인터뷰도 까다로워서 입양 희망자들의 인내심을 여러 번 테스트한다. 서류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테스트한다.
“큰 개는 얼마나 키워 봤습니까?”
“이 강아지가 살 집은 몇 평입니까?”
“당신이 일을 하는데 강아지 산책은 누가 시킬 것인가요?”
“하루 몇 번이나 산책을 시킬 수 있나요?”
“당신의 가족 모두 강아지 입양에 찬성합니까?”
까다롭다 싶었지만 요는 ‘당신이 얼마나 이 강아지를 간절하게 원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홍콩은 강아지 봉사와 입양에 있어 꽤 엄격한 편이다.
다행히 코코는 큰 어려움 없이 우리 가족의 품으로 왔다. 첫날, 산책을 했는데 코코는 100m만 걸어도 다리를 휘청거리며 힘들어했다. 나는 사료를 내가 먹는 쌀보다 비싼 브랜드로 준비해 주었고, 연골에 좋은 영양제를 구입하고, 아침저녁으로 코코와 조금씩 산책을 하려 노력했다. 처음엔 1km만 걸어도 휘청거리던 코코가 나중에는 우리 집 주변의 산책로 3.6km를 거뜬히 걷게 되었다. 그 기특하고 예뻤던 순간이 아직 가슴에 남아 있다. 코코의 첫 생일에는 5단으로 닭 가슴살 간식을 만들어 주었다. 코코의 생일 간식을 만들어 강아지가 있는 이웃집에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코코는 점점 산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에게 애착도 보였다. 아메리칸 아키타는 충성심과 주인 보호 본능이 강하다. 내가 차를 몰고 집에 오면, 차고에 차가 들어오는 소리만 듣고도 코코는 미리 일어나 현관까지 내려와 나를 맞이했다. 내게 슬리퍼를 가져다주겠다며 미리 슬리퍼를 물고 기다리다가, 막상 내가 슬리퍼를 신으려고 하면 주지 않고 물고 다니며 장난을 치던 코코를 잊을 수 없다.
견종에 따라 다르지만 큰 견종의 경우에는 13년에서 15년, 작은 견종은 15년에서 17년까지 산다고 한다. 물론 20년을 살다 가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강아지의 1년은 사람의 6~7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 줄 알았지만 코코의 시간은 우리보다 빨리 갔다. 코코가 14살이 되었을 즈음, 코코에게 암이 발견되었다. 꾸준히 정기 검진을 했는데도 미리 발견하지 못한 건 암이 급성에다 전이가 빨랐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 지금 수술을 한다고 해도 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늦게까지 병원에서 초조하게 코코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다 저녁 10시, 코코가 우리 곁을 떠났다.
가족들이 그렇게 크게, 오랫동안 울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병원 영업시간은 오후 9시까지였는데, 우리가 11시가 되도록 우느라 병원을 떠나지 못하자 우리에게 입양을 권했던 홍콩인 친구가 우리 가족을 데리러 왔다. 우리는 코코를 차가운 영안실 안에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홍콩에서는 행여 있을지 모르는 2차 감염을 위해 강아지가 죽고 난 후에 강아지를 집에 데려올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코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코코가 없는 집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 같았다. 며칠 후에 우리는 코코의 장례를 치렀다. 5월 18일. 볕 좋은 봄이었다. 사람들은 코코가 그래도 장수하고 간 편이라고, 학대받다가 사랑을 잔뜩 받고 갔으니 호상이라고 말했지만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 본 사람은 알 거다.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에 호상 같은 건 없다는 걸. 아직도 나는 코코에게 더 해 주지 못했던 것들만 마음에 남아 있다.
이별의 아픔은 세월이 흐른다고 옅어지지 않고, 추억은 그때그때 애절하게 다가온다. 지금도 코코를 생각하고 싶을 때면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를 본다. 코코가 우리를 찾아올 수 있도록 코코를 기억하고 싶다. 코코를 기억하는 동안에는 코코는 죽은 게 아니니까. 우리가 널 기억하는 동안에는, 넌 살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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