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단 얕은 물에서 장비를 사용하는 법과 착용하는 법 등을 배웠다. 산소통을 메는 방법과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팁도 알게 되었다. 산소통 중 하나가 망가지더라도 다른 사람의 산소통에 의지해서 나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소통에는 다른 사람이 호흡할 수 있도록 호스를 연결할 수 있는 호스 연결점이 하나 더 나 있다. 둘이 짝을 지어 내려가야만 위험을 줄일 수 있다니. 이건 꼭 삶에 대한 비유 같았다. 우리는 의지할 사람을 꼭 붙들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지 않나.
물속에 들어가서 종소리를 듣는 훈련도 받았다. 물속에서는 밖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므로 위험을 알리거나 급히 올라와야 할 일이 생길 때는 종을 울린다. 물속에서 방향을 알려 주는 것도 종소리기에, 종소리가 곧 생명 줄이 될 때도 많다. 나는 종소리를 듣고, 종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가끔 물고기를 보는 데 심취해서 종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건 큰 위험이었다. 그게 삶과 너무 비슷해서 나는 픽 웃었다. 삶에서도 위험한 순간에 울리는 종소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종소리는 울린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통해서도 울리지만, 보통은 내 안에서 스스로에게 경고를 보내는 소리다.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잊는다면, 우리는 쉽게 위험에 빠진다.
물 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니모로 나오는 아네모네 피쉬라는 물고기도 보고, 보홀섬의 3대 거북이를 모두 만나는 행운도 맞이했다. 부러진 한 손 대신 남은 한 손으로 수영을 하면서도 아름다움에 정신이 빠져 내가 아픈 줄도 몰랐다.
산소통의 4/5 정도를 쓰면 다시 물 위로 올라오기 시작해야 한다. 올라가는 데도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너무 올라가기 위한 산소를 남겨 두지 않는 다이버처럼 살지 않았나 생각했다. 돌아갈 힘을 남겨 두지 않고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았나. 그래서 너무 지쳐 버리지 않았나. 어쩌면 이렇게 다쳐 버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었다.
물 위로 올라오려면 각자 재킷에 달린 추를 잡아당겨 몸의 무게를 가볍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면서 서서히 물 위로 올라오기 수월해진다. 그렇지만 이때도 급하게 올라와서는 안 된다. 한밤중에 올라오다가 수면 위에 떠 있는 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머리를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보홀에서 우리는 10일 동안 머무르며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다. 자격증을 땄고, 이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다이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치르는 값이 만만치 않았다. 손이 성치 않은 채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것, 헐렁한 슈트를 바꿔 달라고 하지 않은 것 때문에 나는 혼쭐이 났다. 다음 수업부터 슈트를 교체했지만, 몇 시간 동안 큰 슈트와 몸 사이로 물이 다 들어와 차가운 물이 몸에 직접적으로 닿으면서 저체온증이 왔다. 지나친 추위로 어지러워서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게다가 채 다 아물지 않은 팔을 무리해서 쓴 탓에, 홍콩에 돌아왔을 때 손이 넝마가 되어 있었다.
홍콩으로 돌아온 후 어느 날 아침, 나는 세수를 하다가 팔이 완전히 돌아간 것을 발견했다. 평상시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는데 왼손은 손바닥이, 오른손은 손등이 내 얼굴을 닦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손등이 있어야 할 곳에 손바닥이 있었던 거다. 병원에 찾아가자 팔뼈가 다시 조각났다고 했다. 부상으로 어긋났던 뼈가 붙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운동을 하다 보니 다시 조각조각 해체가 된 것이다. 결국 큰 수술을 했다. 아름다운 세계를 경험한 대가는 생각보다 비쌌다.
어떤 세계를 접할 때 나는 발을 조금씩 담그며 물의 온도를 재는 대신, 일단 뛰어들고 보는 사람이다. 스쿠버 다이버처럼 말이다. 사전 정보 없이 무언가를 온전히 즐기는 데는 큰 즐거움이 따르지만, 역시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무언가 새로운 걸 할 때는 미리 정보를 검색하거나 물어보고 가는 편이다.
스쿠버 다이빙은 참 삶과 많이 닮았다. 내게 큰 교훈을 준 스포츠이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물에 들어가지 않지만 강사에게 배웠던 다이빙의 팁들을 곱씹는다. 삶의 교훈과 참 많이 닮았던 그 노하우들을. 그러면서 다짐한다. 삶과 다이빙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가자고. 돌아갈 산소를 생각하며 잠수하자고. 다시 물 위로 떠오르기 위해, 천천히 뛰어들고 천천히 떠오르자고.
'시·에세이 > <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을까? (마지막 회) (2) | 2022.09.08 |
---|---|
08. 인간은 기대를 먹고사는 존재다. (0) | 2022.09.06 |
07. 그런 게 바보라면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어. (2) | 2022.09.05 |
06. 우리가 널 기억하는 동안에는, 넌 살아 있는 거야 (0) | 2022.09.04 |
05. 우리는 언제 죽을까? (1) | 2022.09.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