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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같은 파도는 다시 오지 않아>

10.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을까?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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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학교 가는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 엄마랑 언제 한국에 돌아가야 할지 모르니까.”

예전에는 홍콩에서 국제 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당시 국제 학교를 보내는 비용은 그렇게 저렴하지 않았다. 사업이 잘 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업이 잘 안 되면 내가 책임지고 있는 직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해맑게 묻곤 했다.
“한국에 가서 엄마는 뭘 할 건데요?”
“글쎄. 아들들 좋아하는 치킨 장사를 할까?”
치킨을 팔겠다는 건 작은 사업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어 주고 싶다는 농담에 가까웠다. 그러면 아들은 이렇게 받아치곤 했다.
“샌드위치 장사가 더 좋아요!”
치킨보다 샌드위치가 더 맛있다는 아들 덕분에 나는 진지한 고민에서 벗어나 잠시 웃을 수 있었다.

언제나 내게 반짝거리는 행복을 주는 아들 둘 덕에 기운을 내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사업을 할 때는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내가 여자라는 점도, 언제나 힘을 풀지 않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했다.

나의 성별 정체성이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나는 사업에서 자주 불리한 위치에 처했다. 지금은 양성평등 이슈가 어느 정도 가시화된 사회지만, 내가 사업을 시작한 이십 년 전만 해도 성별에 따른 직업의 차이가 큰 사회였다. 결혼하면 여자는 집에서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고, 여자와 그릇은 밖으로 돌면 깨진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왕왕 있었다. 실제로 여자로서 사업을 하는 게 힘들 때가 있었다. 접대를 해야 할 때가 특히 그랬다.

경쟁사는 바이어를 붙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중 가장 흔한 방식이 술 접대다. 바이어가 우리 회사가 있는 곳으로 출장을 오면, 경쟁사는 그를 홍콩의 화려함이 가득 담긴 술집으로 데려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친해질 만한 기회를 엿봤다.

그렇다고 내가 술집에서 접대를 도와주는 여성을 불러 앉히거나, 바이어와 함께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우애를 다질 수는 없었다. 나의 신념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고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내게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내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 중이거나, 그도 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속임수를 쓰지 않는 인간이어야 했다. 계속 그렇게 사업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거라면 그런 성공은 갖고 싶지 않았다.

접대를 하는 대신 나는 이미 맺어진 관계에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않고, 멀어지지도 않은 채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신중한 약속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내가 남성 연대 사회에서 취한 전략이었다.

비즈니스는 친한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원칙 덕분에 많은 거래처들이 내게 다시 돌아왔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효리가 엄정화에게 고민 상담을 하면서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왔다.
“이런 (고민 상담할 수 있는) 언니 있으니까 너무 좋다.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
엄정화는 울어서 눈이 빨개진 얼굴로 이렇게 답한다.
“몰라, 술 마셨어.”

그 장면을 보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의지할 언니가 없었던 엄정화의 마음에 깊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걸 보며 나도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의지가 되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언니 없이 사업을 했다고 해서, 남들에게 언니가 되어 주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그녀들이 어깨가 필요할 때 내가 든든하게 어깨를 내어 주고 싶다.

“자, 언니에게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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