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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생활·요리/<내 아이만큼은 나와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01.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by BOOKCAST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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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군지 묻는다면 부모 대다수는 자신의 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갖고 부모가 되는 사람은 없지만, 일단 부모가 되면 모두 이런 마음을 갖는다. 소중한 존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자신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부모는 자신보다 아이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우리는 정말 내 삶의 중심에 아이를 두고 살아가는 걸까? 혹시 아이 삶의 중심에 나를 두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오로지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모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부모가 되는 순간 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반드시 물려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정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을 놓치고 있는 부모들은 아이가 어떻게 살기를 바랄 뿐 자신이 아이에게 어떤 삶을 물려줄지 생각하지 못한다. 왜 우리는 이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고 있는 걸까?

나는 20년째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영어 학원장이다. 현장에서 수천 명의 학부모와 아이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을 관찰했다. 강사 시절엔 영어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학원을 운명하면서 자연스레 학부모, 학생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 속에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과연 우리는 이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을까? 나의 학원에 신입생이 오면 상담 전에 내가 반드시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에 대한 사전 설문 조사다. 아이의 학습 이력을 알면 지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의 목적은 따로 있다. 아이와 학부모의 성향을 알기 위해서다. 내가 빼놓지 않고 묻는 것 중 하나는 아이의 장단점과 특이점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와 사례도 꼭 물어본다.

겉보기에 이 질문은 모두 아이에 대한 것이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나는 학부모의 성향도 함께 파악한다. 그리고 학부모의 성향을 알게 되면 역으로 아이의 성향도 보인다. 상담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부모가 제공한 정보들을 참고만 할 뿐 바로 믿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부모들은 대부분 자신의 아이를 너무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가 기준 또한 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친구가 있다. 태권도를 아주 좋아하는 상남자 스타일의 5학년 남자아이였다. 언뜻 보기엔 공부에 취미가 없는 친구로 보였다. 어머니도 그냥 평범한 아이라며 아이의 학습 성과에 큰 기대를 보이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주신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를 관찰했고, 역시나 그 정보는 아이를 과소평가한 정보였다. 아이는 언어 감각, 집중력 등 많은 장점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와 소통할 때 그 부분에 대해 자주 말씀드렸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내가 아이를 너무 좋게 봐준다고 겸손하게 대답하셨다.

하지만 이 아이는 분명 잠재력이 있는 아이로 보였다. 그래서 외고를 준비해 보자고 말씀드리니 본인은 잘 모르겠으니 그냥 아이에게 맡기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나는 외고를 목표로 그날부터 학습량을 늘렸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결과 그 친구는 외고에 합격했고, 외교관이라는 꿈에 맞춰 전공을 정했다. 그러곤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이 아이가 단지 운이 좋아서 원하는 대로 풀린 걸까? 아니다! 이 아이의 성공에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기질과 습관의 뒷받침이 있었다. 어머니는 부동산 중개사 시험 준비를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셨고, 그 습관을 아이에게 물려주셨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온 식구가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도록 습관을 들여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아이를 믿어주셨다.

그 아이가 지닌 집중력, 인내하는 힘,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는 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물려준 자산이다. 어머니 자신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렇듯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부모에게서 물려받는다. 역으로 생각하면 부모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아이들에게 많은 것들을 물려준다. 그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라는 것을.

누군가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처음엔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다. 생각해 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물려줄 것이 딱히 없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나는 아이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제발 그 생각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400만 년에 걸쳐 진화한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멋진 존재다. 그리고 3억분의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런 기적 같은 존재인 우리가 물려줄 것이 없다는 것은 인류에 대한 모욕이다. 나보다 아이큐가 100배 좋은 사람도 없고, 나보다 100배 예쁜 사람도 없다. 그러니 그런 비관적인 생각은 당장 멈추길 바란다.

한 친구가 내게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 장점이 뭐야?’, ‘나는 어떤 사람이야?’ 이들 질문에 대해 우리는 분명 성심성의껏 대답해 줄 것이다. ‘너는 경청을 잘해.’, ‘너는 배려심이 있어.’, ‘너는 추진력이 좋아.’, ‘너는 노력형이야.’, ‘너는 말을 잘해.’, ‘너는 손재주가 좋아.’, ‘너는 마음이 따뜻해….’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의 말을 늘어놓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자신에게 해줘야 할 말들이다. 나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 모두 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장점의 기질이 단점의 기질과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추진력이 좋아서 성격이 급하고, 꼼꼼한 성격이어서 가끔 큰 그림을 놓친다. 하지만 성격이 급한 것이 싫어서 일을 늦추면 기회를 놓치게 되고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이 싫어서 디테일을 포기하면,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된다. 이렇듯 나에게는 집중해야 할 강점과 감수해야 할 약점이 늘 공존한다. 그러니 약점을 들춰 겁먹기보다 내가 가진 강점들에 집중하고 가꾸고 다듬자. 그 과정에서 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산들이 쌓이게 된다. 나에게는 2명의 조카가 있다. 작은언니와 형부의 작품들이다. 한 배 속에서 태어났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외모도 성격도 다른 아이들이지만, 언니와 형부를 보면 그 아이들이 왜 그런 외모와 성격을 가졌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큰아이에게서는 언니의 외모와 성격, 작은아이에게서는 형부의 외모와 성격이 좀 더 많이 보인다. 이런 게 바로 유전자의 힘이 아닐까 싶다.

두 아이에게는 각자의 강점과 약점도 있는데, 작은언니는 자신의 약점이 아이들에게서 보일 때 좀 더 감정적으로 된다고 말한다. 즉,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숨기고 싶은 면이 아이에게서 보일 때 좀 더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자신이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지도 인지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시간 속에서 알게 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는 결국 자신이 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지 깨달을 수 있지만, 당하는 아이는 그 이유를 모른다. 그 때문에 아이는 더 움츠러들고 긴장하게 된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더 적게 시도하게 된다. 아이의 성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성향은 성격과는 달리 바뀌기가 어렵다. 물론 피나는 노력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은 반드시 있다.

그런데 그런 부작용을 감당하면서까지 바꿀 만큼 나쁜 성향이라는 게 있을까? 그 성향을 원해서 물려받은 것도 아닌데, 그 성향 때문에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질책을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반드시 고쳐줘야겠다면 말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거기에 쏟을 에너지를 아이의 강점을 키우는 데 쏟는다면 더 멋진 결과가 있지 않을까?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도 생각해야 하지만 의도치 않게 물려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물려받고 싶은 것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듯 우리의 아이들 또한 그렇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이것을 인지하지 못해 많은 갈등을 겪는다.

나는 20년간 학부모들과 소통하면서 저마다의 고민을 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20년 전의 학부모들이 했던 고민과 20년 후의 학부모들이 하는 고민이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중심에는 아이들의 성향이 있다. 바뀌지 않는 성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모에게는 매일이 전쟁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그 전쟁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승자도 없는 그 전쟁을 치르느라 관계는 점점 더 망가진다.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남는 건 상처뿐이다. 그러니 이젠 그 전쟁을 멈추고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지 고민해 보자.

부모들과 아이들의 전쟁이 종결되길 희망하며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문>을 공유하고 싶다.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부디 지혜의 눈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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