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MF Care(Mom’s Future Care) 독서 모임을 시작하기로 결심 한 그날이 기억난다.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취침 전 ‘하루 중 가장 좋았던 일’과 ‘깨달은 것’에 대해 늘 대화한다. 가끔은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늦게 자는 부작용이 있지만 우리에겐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그날따라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그래서 나의 심정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한 지 벌써 20년이다. 그리고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모습에는 변화가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이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학교 공부에 이미 지친 아이들은 좀비처럼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 학원으로 온다. 학원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으니 아이의 마음도 즐겁지 않다. 머리로는 공부의 필요성을 이해한다 해도 마음에서는 공부를 밀어낸다. 그러니 집중력이 좋을 수 없고 학업 능률이 오를 수 없다. 꾸역꾸역 할 것을 마친 아이는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집으로 옮긴다. 하지만 집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숙제와 엄마의 잔소리다.
학교 공부란 것이 즐거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흥미와 재미에 빠진 몇몇 아이들이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공부의 끝에는 항상 시험이 기다리고 있기에 더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공부는 ‘노력과 인내’를 키우는 최고의 훈련이다. 내가 성인이 되어 선택한 일에 ‘열정, 끈기, 노력의 힘’을 발휘했던 것도 미련하리만큼 지독하게 공부했던 훈련 덕분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노력과 인내’의 훈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많다. 하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데 그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왜 그럴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을 모른 채 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부모가 모르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줄 수 없다. 그래서 부모가 겪은 어려움을 아이도 겪는다. 나는 이런 현실이 그저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돈과 사람을 공부하기 위한 MF Care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나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독서 모임을 여러 차례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 도움이 될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아이들과 학부모 대상의 간담회도 진행해 왔다. 이런 나의 경험과 요약정리 능력은 MF Care 독서 모임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엄마들의 미래를 구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내가 MF Care 독서 모임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돈, 사람, 생각, 관점’이다. 이 네 가지를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이걸 놓치고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를 모른 채 열심히만 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마찬가지다. 나 또한 이것을 모른 채 살았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도 삶에 큰 변화가 없어 보였고 뿌연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돈, 사람, 생각, 관점’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빠르게 변해 갔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돈’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아이를 교육하는 원장이 자꾸 ‘돈 얘기’를 하는 게 그들 눈에 이상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학부모들은 ‘돈’이란 주제에 불편해했다. 그들은 왜 ‘돈 얘기’가 불편한 걸까?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잘못된 생각들 때문이다.
우리의 부모는 돈 얘기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다. 아이와 ‘돈’이란 주제를 놓고 대화하는 일은 더욱이 없었다. 그래서 가정 경제의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조차 아이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이상기류를 감지한 아이가 부모에게 물어도 “너는 아무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돈 얘기’를 하는 것이 어렵다. 심지어 자신이 빌려준 돈을 돌려 달라고 말할 때조차 ‘돈 얘기’를 꺼내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우리는 ‘돈 얘기’를 애써 피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돈’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도 ‘돈 얘기’를 피하게 하는 데 한몫했다. 당신은 돈을 많이 가진 ‘부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당신의 머리에 ‘선하고 좋은 사람’이 떠오르는가 아니면 ‘욕심으로 가득 찬 이기적인 사람’이 떠오르는가? 우리가 어릴 적부터 접한 책과 영화에서 보여진 부자들은 주로 자기밖에 모르는 욕심쟁이다. 실제로 이기적인 욕심쟁이 부자들도 많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돕는 선한 부자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 머릿속에 남은 부자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돈 얘기’를 하는 나를 상대방이 ‘욕심쟁이’ 또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워한다. 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돈’으로부터 멀어졌다. 하지만 ‘돈’에 대한 이해 없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돈 얘기’를 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숨 쉬듯 편안해질 때까지 말이다.
EBS <자본주의> 제작팀. 정지은, 고희정의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에서 나는 이 내용을 보고 놀랐다. 다큐프라임 취재팀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부모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부모와 청소년의 ‘가정 경제’에 대한 인식 차이는 매우 컸다.
청소년들이 생각한 ‘가계 소득’은 실제 부모가 이야기한 소득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 말은 아이들이 가정 형편을 잘 모른다는 의미다. 현재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묻는 질문에도 아이들은 부모보다 자신의 위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가정의 ‘생활 수준’을 묻는 질문에도 아이들은 부모보다 훨씬 풍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왜 아이들은 모든 영역에서 부모보다 높게 평가한 것일까? 부모가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아이들과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들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부끄럽지 않도록 많은 지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우리 집이 꽤 사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오해는 ‘금전적 지원 상황’을 묻는 질문에도 동일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로부터 어느 정도 투자를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투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감은 아이의 자립심을 떨어뜨려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그야말로 평생 자녀 AS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나의 자녀가 평생 AS의 대상이 된다면 그 아이의 삶이 행복할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삶이다.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권리를 부여받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런데 잘못된 생각과 습관들에 의해 주인의식을 빼앗긴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돈’을 배워야 한다. 더 이상 ‘돈 얘기’하는 것을 꺼리면 안 된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돈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부터 돈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아이에게 그 인식과 태도를 물려주게 된다. 그러니 나부터 ‘자본주의 세상’에 맞설 무기와 방패를 장착하자. 그리고 내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치자.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멋지게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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