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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직장검법 50수>

06. 새로 들어온 회사, 뒷담화가 많은데 권고사직 전력 알려질까 무서워요.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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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회사에서 10년 정도 마케팅을 담당했었는데회사 경영 수지가 나빠진 데다지난해 업무 실수가 있어서 경위서를 쓴 뒤 결국 권고사직 당했습니다그 뒤 애를 써도 재취업이 안 되어서 한참 백수 생활하다가 경력자 모집에 응시해서 지금의 회사에 영업직으로 들어왔는데요가만히 보니 직원들 사이에 뒷담화가 많아서 시간이 지나면 권고사직 전력이 알려질까 봐 요즘 매사에 자신이 없습니다그만두기도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사실 이분은 질문과 답을 같이 보내온 거나 마찬가지다. 마지막 문장이 ‘그만두기도 어렵고 어떻게 할까요?’인데 그만두기 어려우면 당연히 그대로 다녀야 하는 거고, 기왕에 다닐 바에는 열심히 일하면서 즐겁게 다니면 되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다만 즐겁게 다니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건데 이분의 문제는 직장 생활에서의 문제라기보다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원인은 이분 성격이 발산적이 아니라 수렴적인 게 가장 크다고 보는데, 수렴적인 성격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원인과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찾는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건 좋은 자세지만 그게 지나쳐서 다른 곳에 문제가 있는 것도 다 내 탓이다, 이렇게만 보는 건 잘못이다. 우선 권고사직 문제를 생각해 보면, 회사 경영 수지가 악화하면서 아마 경비 절감 차원에서 구조 조정을 단행한 거 같은데 마침 작은 실수가 있었던 이분이 딱 거기에 걸린 것이다. 그 실수 때문에 이분은 내가 못나서 권고사직 당했다 이렇게 보는 것 같은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구조 조정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직접 직원을 정리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권고사직을 단행할 때 유능, 무능을 기준으로 한다는 게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즉 기본 원칙이 그렇다는 걸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반드시 무능한 사람 순으로 내보내는 게 아니라 사후 문제가 없는 사람 순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잘랐다고 난리를 치며 평지풍파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한 지독 맨은 앞세우기가 힘들다. 그런 고로 갑자기 내보내도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지 않을 사람을 먼저 내보낸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이분이 꼭 무능해서 잘렸다기보다는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원인과 책임을 밖으로 돌리기보다는 자신을 책망하는 쪽으로 돌리는 성향 때문에, 잘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분명한 건 남아 있는 사람보다 백 퍼센트 무능해서만 잘린 게 아니라 그런 요인도 있다는 것인데 이분은 그걸 백 퍼센트 자신을 책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이분 질문에 보면 제약 회사에서 10년 정도 마케팅을 담당했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직종을 막론하고 마케팅이라는 건 자사 제품에 대한 신규 고객을 만들어 내는 게 주요 사명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회사 충성도도 높고 경쟁사 및 시장에 대한 파악도 잘하는 사람, 그러면서 실력도 있고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사람을 앉히기 마련인데, 그런 자리에서 10년을 일했다면 이분의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이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답은 건시나가미나 검법을 쓰는 것이다. 건시나가미나? 일본말인가? 아니다. 순우리말인데 ‘건시(乾 柿)나 감이나’를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이다. 왜? 항상 이야기했듯이 검법 이름이므로! 어쨌든 ‘건시나 감이나’라는 말은 말린 감이나 생감이나 다 같은 감이라는 뜻으로 어떤 물건이 차이가 없이 비슷비슷하다는 말이다. 그처럼 사람에게는 누구나 핸디캡이 있는 법이므로 혼자만 특별한 핸디캡이 있는 것처럼 너무 위축되지 말라는 거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허허 웃으며 별 탈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으로 한 발만 더 들어가 보면 누구에게 나 대부분 힘든 고민이 있고 아픈 과거가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저마다 굳세게 살아가고 있다.

즉 인생을 살아가는 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기쁜 일이 있는가 하면 슬픈 일이 있고, 성취가 있는가 하면 실패도 있다. 간혹 왜 나에게만 이런 힘든 일이 생기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글쎄다, 인생을 오래 살아 본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거의 다 생긴다. 그리고 권고사직 당한 일이 정말로 나쁜 과거가 되느냐 오히려 하나의 전설이 되느냐 하는 건 전적으로 이분에게 달렸다. 그걸 알면 남들이 권고사직 전력 가지고 뒷담화할까 봐서 걱정할 시간에 역으로 그걸 전설로 만드는 데 힘쓰는 게 낫다.

달리 말하면 권고사직 전력은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이분만의 독특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처럼 이직해 들어간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쩔쩔매면서 걱정이나 하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그 권고사직은 정당화되어 버린다. 즉 ‘저러니까 그 회사에서 잘렸지.’ 사람들이 이렇게 본다는 거다. 그러나 당당하게 일어서서 실력을 보여주고 일을 잘해서 지금 회사에서 인정을 확실하게 받아버리면 ‘아니 저런 친구를 왜 권고사직시켰어. 그 회사 사장 눈이 삔 거 아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이미 벌어져 버린 권고사직 전력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좀 생뚱맞지만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태진아의 노래처럼 권고사 직은 아무나 하나라는 배짱을 가지는 게 좋다. 필자는 기업에 강의하러 가면 항상 직장인들한테 ‘당신의 전설을 만들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전설은 남하고 똑같이 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남하고 달라야 하고 굴곡도 적당히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단 이분한테는 자신의 전설을 만들 소재와 기회는 확실하게 주어졌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권고사직이 남다르기는 하나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당장 그 자체로서는 전설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부터 잘해서 나중에 권고사직시킨 회사 사람들이 ‘야, 저 친구 진짜 물건인데 우리가 잘못 내보냈다’ 이 소리가 나오면 그때 권고사직은 전설이 되는 거다. 고로 지금은 누가 권고사직 전력을 가지고 씹어대도 너나 나나 다 비슷한 인생이면서 뭘 그거 가지고 그러시나? 하는 건시나가미나 검법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라.

끝으로, 이 검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쓴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하겠다. “어리석음을 범하는 자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범한 후에 감추지 못하는 자가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의 명성은 행동보다는 비밀을 지키는 데에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에게조차 오점을 감추어야 한다.”

이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때로는 좀 뻔뻔해지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고의로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무조건 ‘나는 모른다’ 식으로 뻔뻔하게 처신하라는 게 아니라, 한때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작은 불명예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이 나에게 먼저 찾아온 것 등에 대해서는 너무 머리를 쥐어뜯지 말고 좀 대범하게 처신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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