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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여행에서 만난 경영지혜>

03. 회계 부정과 바닥난 윤리 의식

by BOOKCAST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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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퇴직금은 퇴직 충당금으로 회사 내부에 유보하거나 일부는 은행의 확정 기여형 퇴직연금 제도를 활용하여 외부에 적립하고 있다. 수년간의 경영 부실과 이에 따른 적자 결산을 모면하고자 충당금 적립액을 법정 요구 수준보다 낮게 충당하여 당기 순이익을 흑자로 표기해 온 지 수년이 지났다.

하긴 대한민국 중소기업 대부분이 법정 요율에 충실한 퇴직충당금 적립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엄격히 보자면 분식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도 아니고, 회사의 규모도 작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경영을 맡은 이후 최대의 급선무는 회사를 정상화하는 것이었다.

제1 금융권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안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저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리하는 것이 조직의 생리다. 그러나 애써 새로 이룬 업적이 과거 정리에 보람 없이 매몰될 때면 아쉬움도 컸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소임 기간 중 반듯한 실적을 내서 시장에서의 자기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한편 전문 경영자는 시장 평가 못지않게 주주의 평가도 중요하다. 깊은 속사정을 알게 된 주주가 회사의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무한 신뢰를 주었기에 그나마 회사 살리기에 대한 열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라는 논어 구절을 되뇌며 우보천리의 심정으로 경영관리에 임했다. 당시에 담당직원과 임원을 불러서 왜 법정 충당금 미 적립과 분식을 자행했는지 물어봤다. 법정 한도로 충당할 경우 자본 잠식이 밝혀지면 추가자본 증자가 요구되고, 이 경우 50%의 지분을 가진 금융 회사들의 추가 증자 동의를 받아내기가 힘든 것이 주된 사유라고 했다. 경영자들의 부실 경영으로 회사의 성장이나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한 결과였다.

정확한 회계 관리로 주주에게 정확한 재무 보고를 해야 함에도 허위의 사실로 정상적인 회사로 둔갑하게 했으니 경영진의 대리인 비용이 매우 크게 발생한 경우다. 대주주는 이전 경영진의 경영 방식에 비교적 후한 평가를 했었다. 다만 K 은행의 카드 연체 관리 센터를 회사 창립 시부터 관리해왔는데 재입찰 과정에서 타사에 빼앗긴 건으로 전임 대표에게 아쉬움을 표했다고 한다. 경영진을 감시할 주주의 견제 기능이 충분하게 작동하지 못한 것이 궁극적으로 왜곡된 CEO 평가의 빌미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룹의 모기업 재무 담당 임원은 투자 계열사에 대한 경영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주주인 그룹 회장께 정확한 보고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룹 전체의 재무적 통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부임 시에는 초미니 본사 조직으로 임직원 모두가 내부 통제라는 용어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관리 팀장이 지출 결의된 직원들의 퇴직 연금을 일부 횡령하고 나머지 금액만 입금하는 등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대전 카드 단기 연체 관리 콜센터에 근무했던 모 퇴직 여직원의 퇴직금 산정 오류 신고로 밝혀진 금전 횡령 사건으로 검토 결과 그 직원의 주장이 옳았다.


나머지 퇴사자와 재직자를 대상으로 퇴직금 지급액이나 충당 내역을 전수 조사하자 같은 방법으로 퇴직금을 절취당한 사람이 상당수였다. 적립이 과소하게 된 직원들을 상대로 사실을 알리면서 양해를 구하고 정상 적립금과의 차액과 그동안의 운용 실적을 추가하여 일시에 추가 적립하는 형태로 사안을 마무리 지었다.

이뿐만 아니라 가공 명의의 사람을 급여 명세에 등록하고 매월 급여를 지급하는 형태로 공금을 빼돌렸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회사였다. 당시 회계 업무를 보조하던 팀원이나 직속 임원은 수억 원에 달하는 팀장의 회사 자금 횡령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팀원의 부족과 폐쇄적인 업무 관행으로 상호 업무 협의나 견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사 정리

직장 생활에서 ‘전임자가 저지른 일 뒤치다꺼리하다 날 샌다’는 말을 간혹 듣지만 나는 운 좋게도 그런 경험이 별로 없었다. 종종 전임 지점장이 일으킨 대출이 부실이 되어 공은 전임 점포장이, 과는 후임 점포장이 덮어쓰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분별 있는 금융인들은 양심에 반하는 일을 경계하기 마련이다.

2017년 9월에 신용정보회사를 맡아서 기존의 임원들과 함께한 2018년의 경영 실적은 온전히 그 공과에 대한 책임이 CEO인 나에게 있다. 솔직히 모르는 업무를 탐색하고 초면의 임직원과 소통하면서 회사를 잘 가꾸고 좋은 회사로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는 뚜렷했었다. 회사의 매출은 전년도 대비 35%가 성장했고, 수익은 전년도 대비 150%가 늘어났으니 업계 내에서 괄목할 성적이었다. 그런데 횡령과 적자 가중으로 비워둔 퇴직충당금을 추가 적립하다 보니 당기의 영업 이익은 전년 대비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었다. 참으로 황망한 일이다. 당기 수익 중 대부분을 과거에 빚어진 부정적인 문제해결에 전용했기에 당기에 쌓은 공든 탑의 모양새가 흐트러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주사는 수익이 났다면서 왜 주주 배당부터 하지 않느냐며 불만을 표했다. 과거에는 충당금 적립을 미루어 두고 주주사의 배당부터 해 왔던 모양이다. 물론 정도 경영에 반하는 일이다. 금융 회사들은 여신의 부실 정도를 얼마만큼 엄격히 분류하느냐에 따라 대손충당금의 적립 규모가 달라지고, 당기의 손익 규모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직원들의 퇴직충당금은 대손 충당금과 달리 분류의 융통성이 전혀 없고 쌓느냐 안(못) 쌓느냐의 문제만 남게 된다.

이러다간 내가 맡은 2~3년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비단옷 입고 밤길 거니는 꼴’ 이 되고 말 운명이었다. 병든 환자를 누군가가 열심히 치료하고 돌봐서 기초 체력을 보강하면 다음에 누군가가 살도 찌우고 인물도 더 나게 다듬어 갈 수 있겠지?

세상에는 일을 만드는 자도 있고 또 이를 추스르는 자도 있다. 나로서는 미래의 성장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과거를 메우는 데 번 돈을 쏟아 넣어야 하니까 유쾌할 리 없었다. 초기 사세 확장을 위해 일부 저마진 채널 확보가 필요하다고 해도 과다하게 높은 현장 인건비와 원가 개념 없이 관리된 영업 채널 등 재무관리 문제 역시 심각했다. 관리 부재로 수익성에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는 조직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금융회사 단기 연체 채권 회수 업무에서 발생하는 매출액인 도급비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현장 인건 비율을 잘 통제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 중장기 부실 금융 채권의 수탁 시 추심 직원에 대한 성과 연동 수수료의 효율적 통제가 중요하다. 그리고 채권별 속성 파악을 통해 채권 보유사와의 회수 위·수탁 계약 체결 시 적정 수수료율 확보도 중요하다.

업계를 선도하는 회사들은 이와 같은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단위 사업별 수익성 분석 및 예측 능력이 앞선다. 물론 전산화 등의 시스템 개선으로 더 정밀한 자료 백업이 이루어진다면 더 좋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허물고 새로 짓기

임직원들의 자리 변동이 있고 난 뒤에 수년간 실적이 부진한 3개 지점도 폐쇄 절차를 밟았다. 매달 조금이라도 영업 이익 기여가 있는데 굳이 문을 닫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실무자의 주장도 있었다. 관리·회계적 관점에서 보면 적자 점포들이다. 또 이들 점포는 별도의 대부 회사를 두고 추심 조직을 겸영하는 등 영업 질서를 어지럽히고 성장에 한계가 있어 과감하게 정리했다.

수익이 낮은 추심 영업 채널은 구조 조정하고 새로운 추심 물량을 확보해서 직영 센터 중심으로 영업 이익률을 높여 나가는 전략은 주효했다. 수수료 체계도 매출 규모별로 재조정했다. 매출 규모가 커질수록 구간별로 수수료율을 낮춰 적용하는 슬라이딩 수수료 체계를 도입해서 지점장들의 성취동기를 강화했다.

조정 전 우리 회사의 영업점 매출 이익률은 우량 회사 대비 마이너스 3~4%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니 본사의 수익 구조가 좋아지기 어려웠다. 일부이긴 하지만 영업점장의 성과급 포함 연봉이 본사 임원의 2~3배 정도라서 본 · 지점 수익 배분 구조에서 위화감의 여지도 있었다.

한편 또 하나의 영업 채널인 금융 회사 단기 연체 채권 회수센터의 수익 구조도 회수 위탁 금융 회사로부터 받는 도급비 대부분이 추심 직원들에게 돌아가 본사의 매출 이익률이 6~7% 수준에 머물렀다. 영업 이익률이 2~3%에 머물고 있으니 늘 수익성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 수령하는 도급비에서 합리적으로 산정한 본사의 판매 관리비를 공제한 뒤에 나머지를 직원들의 몫으로 배분하고 회수 위탁 금융사들과의 협의로 도급비 현실화 노력을 병행했다.

다행스럽게 최근 메리츠그룹, 롯데그룹, KB금융계열사와 K Car 캐피 등 새로운 회사들의 추심 채권들이 하나씩 수임되고 있다. 이들 채권의 회수 경험이 회사의 업력으로 축적되면 향후 회사 영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법적으로 채권의 추심 기한이 만료되는 시효완성 채권의 반환 등 민원성 채권에 대한 처리 방침을 명확하게 하고 독립 채산제 지점들의 업무 관행이 올바르게 정착되도록 사규를 정립했다. 본사에서 새로운 추심 물량 확보 시에는 가급적 본사 직영 센터에서 회수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신규 추심 물량 확보 단계에서 수익 배분 구조를 깊이 들여다보고 본 · 지점이 윈윈하는 수수료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수익성 관리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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