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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여행에서 만난 경영지혜>

05. 회상, 직장 생활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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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정치학은 조직 간이나 조직 내외의 다양한 갈등 현상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학문이다. 오늘날 기업 활동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갈등을 고려할 때 정치학도 기업 경영에 연관 있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졸업할 당시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문과 출신자에게는 경영, 경제, 법학, 행정학을 전공 시험과목으로 인정했다. 취업에 대비하여 경제학 과목을 선택하여 필기시험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채용의 전형적인 형태는 영어, 전공(택일), 상식의 필기시험이 1차 관문이었고, 2차 실무자 면접 및 3차 임원면접으로 이어졌다.

대한항공, 한진해운, MBC 기자직, 은행 등 여러 회사의 필기 시험에 붙었으나 최종 면접까지 통과한 곳은 J 은행과 지금은 없어진 한진해운이었다. 입사 한 뒤 1년이 지날 때까지도 기자직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나를 품어준 회사는 은행이었다.


그때부터 퇴직하는 날까지 한눈팔지 않고 회사 일에 몰두했고 회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노력한 대가 또한 늘 따랐으니 나와 합이 잘 맞았던 셈이다. K 사를 떠나기 전 모 언론사와 진행했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과 대답이 떠올랐다. 고객 지향 상품 출시 등으로 업계 수위로 안착한 실적의 저변에는 직원들과의 격의 없는 소통이 자리하고 있다는 기자의 덕담은 남은 바람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으로 이어졌다.

후배들에게 ‘최 선배, 참 괜찮은 CEO였다’는 평을 듣고 싶다고 했었다. 이젠 잊혀가는 선배로 기억하겠지만 그동안 따뜻한 후배들의 인사와 성원들이 늘 내 인생의 에너지로 돌아왔고 큰 위안이 되었다.

은행원으로 살면서 서울 본사로 전입 시에는 나름의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4급 승격 동기 중에서 3급 과장을 제일 먼저 달았기에 영업 여건이 좋은 창원 지점을 마다하고 사고 점포였던 김해 지점 전입을 희망했다.

관할 지역 내의 이동은 지역 본부장 소관이었고 지역 본부 근무자는 가고 싶은 점포를 골라갈 수 있던 시절이었다. 김해공단 지역에 섭외 중에 본사 인사부에서 서울 본사 근무 의향을 묻는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교편을 잡고 있던 때라 의논이 필요했지만 아내를 설득하기로 하고 서울 근무가 가능하다고 회신했다.

종합기획부 자회사관리 담당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종합기획부는 경영 개선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당시 3급 과장지금의 팀장 한 사람이 경영 개선실 업무 개선 담당으로 동시에 발령이났다.

종합기획부에서는 3급 승격이 나보다 더 빨랐던 사람이 있었는데 정식과장 보임을 못 받고 있었다. 과장 보임을 받아 가니까 종합기획부 3급이 김해 지점 3급보다 홀대를 받았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약 3일 동안 업무 인수를 받지 못한 채 대기했고 종합 기획부장이 이런 저간의 정서를 반영하여 경영 개선실 보임 예정 전입자와 보직을 바꿔도 되겠냐고 했다.

큰집과 작은집의 자존심 문제 말고는 경영 개선실 근무가 나쁠 것도 없다. 또 본사에 근무하던 입행동기 중 3급에 같이 승격한 몇몇 동기 모두가 대리 직무를 수행 중이었는데 나 혼자 먼저 본부 과장직을 수행하면서 보직까지 따질 처지는 아니었다.

흔쾌하게 수용하니 오히려 부장이 고맙게 생각했다. 자회사 경영관리과장은 직함의 화려함 뒤에 은행 임원 출신 사장님들의 요구조건들이 많을뿐더러 자칫 서운한 감정을 갖게 하는 자리다.

경영 개선실은 전국 부점장 업적 평가와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처리하는 두 개의 팀이 있었다. 이곳에도 3급 승격은 동시에 되었지만 본부 과장(팀장)의 보직을 맡지 못한 동기가 있었고 종합기획부의 배타적 정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실 단위 조직에서는 부 단위 조직과 달리 팀제가 도입되었지만 사무실 책상 배열 등 실제 운용은 부단위 계선형태 조직으로 움직였다.

업무 인수를 받고난 며칠 뒤 실장이 찾았다. 팀제의 도입 배경과 운용 실태를 얘기하더니 기존의 계선형 책상 배열을 팀제에 부합하게 팀원 책상과 붙여 배치하고 실질적인 팀제로 운영해 보라고 했다.

순간 이곳에도 빠른 승격으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누르는 모습에 반 정서가 강하게 작용함을 느꼈다. 일단 실장의 요구에 알겠다는 의중만 비치고 방을 나왔다.

옆 팀의 팀장은 물론 나보다 선임이었고 파악해보니 그 팀은 지금까지 운용해 온 계선형태를 유지한다고 했다. 잘못 처신하면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조직 적응과 팀장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로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다음날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실장과 면담을 이어갔다. 팀제의 장점을 살리고자 계선형 책상 배열을 없애고 팀원들과 라운드형 책상 배열로 바꾸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하고 따르겠다. 그러나 팀장이 두 명밖에 없는 작은 조직에서 한 팀은 계속 계선형 배열을 고수한다면 사람에 따른 책상 재배열일 뿐이다. 따라서 옆 팀도 팀제에 부합하는 라운드형 책상 배열로 바꿀 것을 요구했고 아니면 나도 계선형 책상 배열을 바꿀 이유가 없음을 주장했다.

당혹해하는 실장의 눈빛을 뒤로하고 방을 나왔다. 그날 오후에 실장은 책상 재배치 건은 결국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시골 은행원의 서울 본사 입성에 호락하지 않은 통과 의례가 있었던 것이고, 유연하고 정연한 대응으로 팀장의 리더십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은 뒤부터 사무실의 부하나 동료 심지어 상사들까지도 서로 존중하는 소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이었던 K 사를 떠난 직후 약 2년 동안 오지와 선진국을 번갈아 가면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여행자로 살았다. 노는데 이골이 날 무렵 언론사를 경영하는 선배의 권유로 약 2년 가까이 언론사 경영 경험을 했다. 연이어 금융사들의 연체채권을 관리하는 신용정보사 대표를 맡은 지도 벌써 만 4년이 흘렀다.

작년 이맘때쯤 친한 친구 셋과 나의 정년이 끝나는 2021년 9월 말경 미 대륙 횡단 여행을 나서기로 약속했었다. 그냥 취중에 한 부질없는 약속은 아니었다. 여행사 도움 없이 자유여행을 다닐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 나이가 쉽게 공감을 이루었다.

미국에 이민 간 친구는 벌써 오래전에 하던 일을 직원들에게 넘기고 세계 각국을 여행 중이다. 힘든 결단을 내렸기에 후반부 인생은 좋아하는 취미를 벗 삼아 산다.

또 다른 친구는 IT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창업해서 운영하는 소유 경영자이면서 교육 사업에도 헌신 중이다. 내가 직장은퇴 이후에 가벼운 일과 여행을 병행하면서 블로그나 밴드 등으로 취미 활동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또 한 명의 친구는 공직에서 벗어나 대기업 계열사 CEO를 역임하고 지금도 정부 기관에 근무 중이다. 모두 내가 운영 중인 여행 동호회 ‘지구별 여행 조합’에 가입하여 활동에 적극적이다. 인생의 남은 시간을 ‘Work and Life balance’에 착안하여 살자고 도원결의가 아닌 주점 결의를 했던 사이다.

우리 회사는 대표이사 임기는 2년이다. 1회 재임되어 4년 임기를 3개월 앞둔 2021년 6월 중순에 대주주와 만나 퇴임의 뜻을 밝혔다. 만 4년의 경영에서 회사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고 매출 규모나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제 영속 기업으로서의 체질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는 믿음이 생겼다.

지금 단계에서 회사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필요한 경영자의 자질이 무엇일까? 그리고 계획을 열정적으로 추진할 만큼 내 안의 에너지가 또한 충만한가? 자문해 보았다. 역량도 열정도 아직은 이 회사를 더 키울 수 있다. 이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기업 경영자로서의 삶보다 더 소중한 가치, 즉 나와 내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코로나 시즌에 여행도 불가한데 내가 퇴임의 뜻을 굳이 밝힌 또 하나의 이유는 아내의 간곡한 권유도 작용했다. 아내는 오랜 꿈인 전원생활도 해 보고, 또 함께 여행도 다니면서 일에서 해방된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리를 지키려고 금융계 후배들에게 부담되는 부탁은 이젠 그만둘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의 속성을 아내는 늘 부담스러워했다.

아내의 현명한 생각에 나도 수긍했다. 그래서 작년부터 연임의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사양하겠다고 아내와 약속했고 자녀들에게도 공표한 바 있다. 더구나 친구 셋과 약 한 달 일정으로 미국 횡단 여행 계획까지 잡았으니 후임자 물색을 대주주에게 건의했다.

그동안 대주주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 덕분에 회사가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생각하지 못한 나의 제안에 어디 다른 직장으로 갈 계획이냐? 고 되물었다. 내 나이와 앞으로의 삶의 방향 그리고 아내의 생각 등이 겹쳐서 얻은 결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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