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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맛있는 맥주 인문학>

09. 맥주병 하나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by BOOKCAST 2020.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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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마시려면 무조건 접하게 되는 게 있다. 바로 맥주를 담는 용기다. 맥주를 담는 용기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유리병, 특히 갈색 유리병이다. 오랜 시간 맥주는 커다란 오크 통이나 케그에 담아 펍으로 옮긴 뒤 뚜껑을 열어 마셨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유리를 활용한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1873년 미국 앤호이저 부시(Anheuser-Busch)에서 처음으로 병맥주를 유통하면서 펍이 아니라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후 맥주 회사마다 다양한 맥주병을 선보였다.

한동안 맥주는 짧고 뭉툭한 스터비(Stubby) 병에 담겨서 운송되었다. 스터비는 쉽게 운반하기 위해 고안된 디자인으로, 일반 병보다 목이 짧고 몸체가 크다. 무게중심이 낮아서 쉽게 넘어지지 않아 잘 깨지지 않았다. 용량은 330밀리리터로 적은 편이다. 주로 유럽에서 쓰였고 캐나다에서는 1962년부터 1986년까지 자원을 절약하자는 취지로 사용되었다.

 

 

짧고 통통한 스터비(왼쪽)와 목이 긴 현재의 일반적인 맥주 병(오른쪽). 과거에는 무게중심이 낮아 쉽게 넘어지지 않는 스터비 병이 주로 사용되었다.

 

 

하프 갤런(1,890밀리리터)의 대용량 맥주병도 있다. 그라울러(Growler)라는 이름의 이 맥주병은 북미에서 생맥주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가끔 가족 모임 등을 위해 선술집에서 판매했다. 워낙 크다 보니 가족이 한 잔씩 마시고도 남을 정도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맥주병 형태는 긴 목(Long Neck) 혹은 ISB(Industry Standard Bottle)라 불리는 병으로 용량과 높이, 무게가 통일되어 있으며 평균 16번 재사용할 수 있다.

 

 

그라울러는 하프 갤런의 대용량 맥주병으로, 북미에서 생맥주를 운반하는 데 사용했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지만 맥주병은 대부분 갈색이다. 맥주병은 왜 갈색일까? 맥주는 보리와 홉으로 만드는데 전부 천연원료다 보니 햇빛에 취약하다. 오랜 시간 햇빛을 받으면 자외선에 일부 성분이 응고되거나 산화되어 화학적 변형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변형되면 역한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를 일광취日光臭나 스컹키 플레이버(Skunky Flavor)라고 한다. 이런 맥주는 인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상품으로서 가치는 떨어진다. 홉이 빛을 받으면 변형을 일으키는 이유는 홉이 가진 감광성(感光性) 때문이다. 자외선을 차단해서 이러한 변형을 막으려고 빛 차단성이 높은 갈색 병에 맥주를 담아서 유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마케팅 전략상 브랜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갈색이 아닌 병을 사용하기도 한다. 초록색이나 파란색, 혹은 투명한 병을 사용하는 회사도 있다. 이럴 때는 자외선의 투과율을 낮추기 위해 병에 화학 처리를 하거나 햇빛에 강한 효모를 사용해 맥주를 만든다. 투명한 병을 사용할 때는 맥주가 햇빛을 받아도 안전하도록 특수하게 가공된 고가의 홉을 사용한다.

 

 

하이네켄은 녹색 병, 코로나는 투명한 병을 사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부각한다. 이러한 병을 사용할 때는 병에 화학 처리를 하거나 햇빛에 강한 효모를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빨강 ≻ 주황 ≻ 노랑 ≻ 초록 ≻ 파랑 순서로 빛을 차단한다. 맥주의 변형을 방지하는 데 가장 적합한 색은 검정이다.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검은색보다 갈색 병을 사용하는 이유는 맥아의 색이 갈색이고, 맥주 중에도 갈색이 많으니 시각적인 효과를 감안한 것이다.

같은 맥주도 담는 용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공장에서는 생맥주용, 병맥주용, 페트병 맥주용, 캔 맥주용으로 맥주를 구분해서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약간씩 가격 차이가 있다. 제일 저렴한 것은 병맥주다. 병은 한 번 생산하면 깨지지 않는 한 평균 16번까지 재사용이 가능하다. 세척을 거쳐 재사용하게 되고, 제작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병맥주의 가격이 다른 맥주보다 저렴하다.

그다음은 페트병 맥주다. 페트병은 재사용이 되지 않아 항상 재생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캔 맥주다. 맥주 캔은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고 재활용률도 낮아서 제작 비용이 높다. 용기 안의 맥주 원료와 맛은 같지만 용기별 가격은 유리병 ≺ 페트병 ≺ 캔의 순서로 차이가 난다. 당연히 맥주의 소비자 가격도 병맥주 ≺ 페트병 맥주 ≺캔맥주 순서다.

칼스버그에서는 최근 목재에서 뽑아낸 섬유로 맥주병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병은 흙이나 물속에 사는 미생물에 의해서 분해된다. 이름은 ‘친환경 섬유 병(Green Fiber Bottle)’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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