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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아부다비 외교 현장에서 일하고 배우다>

03. 산유국에 원전이 필요한 이유

by BOOKCAST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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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이나 기업인, 공무원한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에 왜 원전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원전 수주의 후속 조치를 위해 임명된 나도 처음에는 같은 의문을 가졌다. 그에 대한 답은 산유국들의 공통적인 고민과 관련이 있다. 언제까지 석유에만 의존해서 살 것인가다. 자원이 석유 하나뿐인 중동 산유국들은 유가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지도자들은 석유에만 의존하는 천수답(天水畓) 같은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고, 또 그렇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고심하고 있다.

무함마드 아부다비 대통령이 자국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우리에게 석유 자원은 50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대외적으로는 100년은 끄떡없는 것처럼 얘기해왔기 때문이다. 산유국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이를 타개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 지도자들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산업화와 인재 육성이다. 이것이 한국을 그들의 모델로 생각하는 이유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이 인재와 산업화 정책으로 선진국으로 부상한 것을 경이롭게 여기며, 특히 아랍에미리트는 한국에 원전 건설권을 주면서 한국의 산업화 경험을 전수해 주기를 기대한 것이다.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 성공에 기여한 요소로 보통 외국 차관의 도입, 고속도로 건설과 같은 물류망 구축, 포항제철 설립 등 기초자원의 자급,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체계적인 경제발전 전략 등이 꼽히고 있다. 그중의 하나로 값싼 전기 에너지의 공급이 있다.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전기가 필요하고, 전기를 얼마나 싼값에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느냐가 성공 요소다.

한국은 1970년대 후반부터 원전 건설에 착수해 가장 싼값에 전기를 생산했고, 산업용 용도에 대해서는 전기를 좀 더 저렴하게 공급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따라서 원전의 사고 위험성 때문에 최근 축소 논의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원전이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한 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수소 등 미래형 에너지원이 확실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는 원전을 기본 전원으로 유지하면서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변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아랍에미리트가 원전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석유 자원이 존재할 때 어떻게든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산업화를 이루어 대대손손 자급할 수 있는 탄탄한 경제를 이루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기가 반드시 필요한데, 석유나 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발전 단가가 너무 비싸 경제성이 없다. 따라서 석유는 수출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원전을 건설해 낮은 단가의 전기를 생산해 공장을 돌려야 한다는 계산인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제개발계획에 나와 있는 전기 수급에 관한 예측 그래프를 보면 전기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공급 계획이 턱없이 부족해 그 갭을 원전으로 메우는 것으로 나와 있다. 우리가 현재 건설하고 있는 아부다비의 원전 4기가 모두 완공되면 아랍에미리트 전체 전기 수요의 약 25퍼센트를 메우게 된다.

원전에 대한 국내의 찬반 논쟁이 뜨겁다. 원전은 항상 조심해서 운영해야 하는 위험한 자원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발생한 전 세계 원전 사고 3건 중 최악인 체르노빌 원전은 안전 설계 자체가 취약했던 1980년대 구 소련의 흑연 감속로였고, 우리의 주력 원전과 동일한 경수로인 미국 스리마일 원전은 원자로가 녹아내렸음에도 튼튼한 격납 건물 덕분에 외부 영향이 거의 없었다. 가장 최근 사고인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은 모델 자체가 초기 구형인데다, 원전 자체 사고가 아닌 지진으로 유발된 쓰나미에 의한 침수 사고였다.

하지만 우리가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한국형 원전은 제3세대 원전으로, 이들 1, 2세대 원전과는 안전성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최신 원전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에 이어 자체적으로 원전 설계와 건설이 가능한 여섯 번째 나라이고, 사실상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은 우리가 미국, 일본, 프랑스와 경쟁해 당당히 승리한 결과물이다.


우리 정부는 한때 근거 없는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세계적인 원전 기술을 썩히기로 결정했다. 원전을 아는 사람으로서 이 결정이 너무 아쉬웠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금액은 총 20조 원에 이른다. 우리가 국내 건설을 중단하면 부품과 장비를 생산해서 공급하는 협력사들은 사라지고 만다. 한마디로 원전 생태계가 붕괴된다. 그렇게 되면 원전 건설 비용이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고, 운영 단계에서도 후속 지원의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한국 원전을 수입할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 수위를 다투는 산업이 몇 개나 될까? 미국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제품을 수입해 수십 년에 걸쳐 어렵게 기술을 익히고, 스스로 모델을 개발해 수출하는 단계에 이른 우리 원전 산업을 사라지게 하는 일은 여러 측면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미래의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수소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도 원전은 필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수소를 생산하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은 물(H2O)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H)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기를 싼값에 생산하는 것이 선결 요건이다. 태양광 에너지가 풍부한 중동이나 호주가 수소 시대의 총아로 떠오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태양광이 극히 제한된 한국 같은 곳은 무엇으로 수소 시대에 대비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중동이나 호주에서 생산된 수소를 LNG처럼 액화시켜 수송해 쓸 수밖에 없는데 물류비가 너무 비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결국은 태양광보다 전력 생산 단가가 훨씬 저렴한 원전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래에도 원전이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기초 인프라라는 명백한 증거라 하겠다.

태양 에너지가 풍부한 아랍에미리트도 우리가 건설하는 4기의 원전에 더해 4기를 추가로 짓는다는 계획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무려 20기가 넘는 원전을 건설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석유와 가스 같은 값비싼 에너지는 해외에 수출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원전을 건설해 산업이나 생활에 필요한 전기를 상당 부분 충당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영속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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