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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아부다비 외교 현장에서 일하고 배우다>

05. 중동에 살면 여행을 즐겨라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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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유럽이나 미국, 아프리카 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해외여행 다니기가 편한 곳은 아니다. 이에 비해 중동은 문자 그대로 중간지대에 있다 보니 어디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내가 가본 곳 중 ‘강추’하고 싶은 곳은 요르단, 이스라엘,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Cappadocia), 이란의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몰디브, 케이프타운과 빅토리아 폭포, 시칠리아와 몰타, 세이셸과 모리셔스다. 한국에서는 접근이 쉽지 않지만 중동에서는 휴가를 이용해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두바이가 허브 공항이어서 웬만하면 직항이 있다. 남다른 곳을 원한다면 이곳들은 신혼여행지로도 좋다. 기후가 열악한 중동에 산다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여행의 즐거움을 누려보라고 권한다.

중동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 중에서도 이스라엘, 튀르키예, 이란은 반드시 가봐야 한다. 세 나라는 아랍이 아니어서 아랍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장구한 중동 역사에서 아라비아까지 모두 네 나라가 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워왔다는 것은 우선 알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란(페르시아)이 강대국으로 군림하다가 AD 7세기에 선지자 무함마드가 출현하면서 아랍이 패권을 장악한다. 아랍을 무너뜨린 것은 북방 초원지대에서 내려와 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500년 이상 이 지역의 강대국으로 행세한 튀르키예였다. 현대에 와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를 세운 이스라엘이 강대국이 되었다.

중동의 4대 세력은 독특한 문화와 역사, 자연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성경의 중심 무대인 예루살렘은 현지에 가서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격을 불러온다. 또한 예수가 태어났던 베들레헴, 수면을 걸었다는 갈릴리 호수, 염분이 높아 몸이 가라앉지 않고 둥둥 뜨는 사해(死海)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튀르키예는 한국인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이미 이스탄불을 봤다면 남부의 카파도키아 지역을 권한다. 이곳 지형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나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서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다. 이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동굴 호텔에서 자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대형 열기구를 타고 신기한 지형 위를 날다 보면 디즈니랜드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근처에는 기독교 박해기에 땅속에 집을 짓고 숨어 살던 지하 주거지도 있다. 개미집처럼 만들어놓고 안에 우물도 파고 외양간도 짓고 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조금만 더 여행하면 11세기에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이란까지 150년간 지배한 옛 셀주크 튀르키예의 수도 콘야(Konya)도 있고, 유명한 온천 마을인 파묵칼레(Pamukkale)도 있으니 놓치지 않기 바란다.

그리고 이란을 가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수도 테헤란은 딱히 볼 만한 것이 많지는 않다. 겨울에는 매연이 심하고 치안도 엄격해 여행객을 긴장하게 한다. 시내 구경을 하고 시간이 난다면 테헤란의 뒷산인 토찰산(Tochal Mt.)에 가볼 만하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 테헤란 뒤에 버티고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30분쯤 올라가야 정상이 나온다. 5월에 가도 스키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생각지도 않게 중동에서 스키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테헤란에서 국내선을 타고 남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시라즈(Shiraz)라는 도시가 나온다. 문학과 교육의 도시이고, 포도주 품종의 발상지이며, 내부가 모두 거울로 장식된 모스크가 유명하다. 거기서 30분 정도 택시로 이동하면 옛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가 있고, 가는 길에 왕들의 암벽 무덤을 만날 수 있다. 칙령으로 유대인들을 70년 간의 바빌론 유수(幽囚)에서 풀어준 것으로 유명한 페르시아의 초대 왕인 키루스(Cyrus) 2세, 그리고 그리스와의 2차에 걸친 전쟁으로 유명해진 다리우스(Darius) 대왕과 크세르크세스(Xerxes)의 무덤이 있다.

페르세폴리스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해 폐허로 만든 잔재가 남아 있다. 후대 역사가들은 알렉산드로스의 최대 실수가 페르시아의 화려했던 수도를 잿더미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넓은 궁터, 타다 남은 돌 조각과 돌벽, 그 위에 새겨진 부조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어 옛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다소나마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먼 곳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남이탈리아의 섬 몰타를 추천한다. 워낙 경치가 좋고 이국적이라 유럽의 젊은이들이 허니문으로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몰타는 영국에서 독립한 작은 공화국인데, 시칠리아를 본 후에 비행기나 배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몰타에 간다면 시오노 나나미(Shiono Nanami)의 ‘전쟁 3부작’ 중 하나인 『로도스 섬 공방전』을 읽기를 권한다. 몰타에는 발레타(Valletta)라는 바둑판 같은 계획도시가 있는데, 발레타는 십자군전쟁에 참전했던 성 요한 기사단의 수장인 장 발레트(Jean Parisot de Valette)에서 온 이름이다. 기사단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불하받은 독도 같은 돌섬 위에 나라를 세우고, 몇십 년에 걸쳐 오스만투르크 해군의 공격에 대비해 성곽으로 요새화했다. 이들이 성곽을 만들 때는 화살의 시대는 가고 대포의 시대가 도래했다. 성곽은 높이보다 두께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걸 알아야 몰타의 성곽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꼭 봐야 할 유명한 성당이 있는데, 성 요한 대성당(St. John’s Co-Cathedral)이다. 세례 요한을 기념하는 성당으로, 성당 자체도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눈여겨봐야 할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인 카라바조(Caravaggio)의 성화(聖畫)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받는 살로메>로, 성경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그렸다. 헤로데 왕의 딸 살로메가 자신이 춤을 추는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달라고 요구하자 요한의 머리를 참수해 쟁반에 담아 전달한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계속 몰려든다.

하나 더 추천한다면 성 바울 성당(St. Paul’s Cathedral)이다. 이 성당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 이야기가 있다. 서기 60년경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길에 바다에서 표류했고, 간신히 어느 돌섬(몰타)에 상륙해 젖은 몸을 말리다 나뭇가지더미에 숨은 뱀에 손을 물렸다. 하지만 그가 죽지 않자 원주민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동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기 좋은 곳이 아프리카 남쪽의 빅토리아 폭포와 희망봉의 도시 케이프타운이다. 아프리카에 가려면 말라리아 약을 먹고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이 부담인데 빅토리아 폭포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런 불편이 없어서 좋다. 빅토리아 폭포는 나이아가라 폭포, 이과수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일컬어진다. 전체 넓이로는 이과수 폭포가 가장 크지만, 높이로는 빅토리아 폭포가 세계 최고다. 워낙 물의 양도 많고 높다 보니 물보라가 솟구쳐 올라가 비처럼 쏟아지는 장면이 장관이다. 특히 수량이 풍부한 10월부터 다음 해 3월 초까지 가야 장관을 즐길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에 가려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거쳐야 하는 데,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도시 케이프타운은 여행지로서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시내에 있는 유명한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 아름다운 와이너리, 역사적인 희망봉, 펭귄들이 집단 거주하는 해변, 물개들이 서식하는 바위섬, 골프장 등 하루하루가 지루할 틈이 없다. 중동에 살게 된다면 최대 이점인 여행을 즐기라고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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