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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아부다비 외교 현장에서 일하고 배우다>

04. 중동에 대한 공포와 실상

by BOOKCAST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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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가게 되면 누구나 설렘보다는 약간의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신문 지상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중동 뉴스는 전쟁과 갈등, 뜨거운 태양과 사막, 우리가 잘 모르는 이슬람교와 할랄 푸드에 관한 이야기 등이다. 그래서 중동으로 간다는 말을 듣는 가족이나 친구들도 잘되었다고 하기보다는 몸조심하라고 걱정 섞인 당부를 하게 된다.

중동에 관해 우리가 접해온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꽤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언론의 영향이 크다. 통상 중동이라고 하지만 중동이 얼마나 큰 지역인가. 인도 서쪽에서부터 아프리카 북서쪽 대서양에 맞닿은 모로코까지가 중동이다. 무려 30개 가까운 나라를 포괄하고 있다. 지리적 개념인 ‘중동’에 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 대충 싸잡아서 ‘중동’이라고 표현한다. 그중 일부 지역에서 발생하는 충격적인 뉴스로 중동 전체를 판단하는 게 얼마나 부적절한가. 동남아시아 뉴스로 아시아 국가인 한국을 판단하는 것과 거의 같은 맥락이다.

우리 외교부에서는 나라별로 여행 금지 지역과 자제 지역 등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에게 상시적으로 고시한다. 이걸 잘 따르면 안전에 큰 문제는 없다. 위험한 중동 국가 중에 대표적인 곳이 리비아, 시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이다. 한국인들이 자주 가고 싶어 하는 곳 중에는 이집트의 시나이(Sinai) 반도가 있다. 이 지역은 치안이 아주 안 좋아 자제하도록 계도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이런 지역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이란이나 이라크처럼 갈등이 계속되고 있거나 제재 중인 나라도 가급적 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는 조금 조심하면 괜찮은 편이다.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6개 GCC 국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모두 왕정국가이고, 산유국이면서, 걸프만을 끼고 있다. 종교적으로 이슬람이고, 다 같은 아랍족이라 아랍어를 공용으로 쓰면서 서로가 형제라고 여기고 있다.

모카커피의 원산지로 알려진 예멘이라는 나라가 이들 옆에 붙어 있다. 예멘은 걸프만을 끼고 있지 않고 산유국도 아니라 GCC 국가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멘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Houthis) 반군 세력과 정부군 간 내전 중에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과 전쟁 중이어서 방문을 자제해야 할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가 비즈니스를 하거나 교민이 많이 거주하는 곳은 GCC 산유국들이다. 지난 40~50년간 높은 유가를 배경으로 부를 축적해왔고, 정유공장이나 도로공사 등 많은 공사 발주로 미국, EU 등 선진국 기업들이 일찍부터 활발하게 진출한 지역이다. 우리나라도 건설업체들이 1970년대부터 진출해 우리 경제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지역이다. 이 국가들은 세계적으로 뉴스를 많이 제공하면서 중동 전체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나는 아랍에미리트에 살면서 중동이라고 다 같은 중동이 아님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물산이 풍성하고 없는 게 없다. 사막 지역으로 땅이 척박해 대부분의 식품을 수입해서 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의 모든 물건이 수입되고 있고, 그렇다 보니 품질도 자국 생산품만 사용하는 나라보다 더 좋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과일도 사과, 배 같은 사계절 지역 과일부터 열대과일까지 없는 게 없다. 외국인들이 많이 살다 보니 주거환경도 좋고, 세계 온갖 종류의 음식점이 다 들어와 있다. 맛도 흉내 내는 정도가 아니다. 고급 식당의 경우 외국인이 직접 진출해서 하는 음식점이 많아 이런 곳은 맛이 정통에 가깝다.

무엇보다 왕정국가여서 그런지 치안이 잘 되어 있다. 외국인들은 관광객이 아니면 취업 비자를 받고 용병처럼 들어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조금만 잘못하면 비자가 바로 취소되고 추방된다. 그래서 좀도둑이나 사회교란범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가끔 성추행을 시도하다가 체포되거나 아주 드물게 살인사건도 있지만 외국인이 걱정할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가끔 저녁에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사람 한 명 없는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을 가족과 함께 걸을 때에도 누가 갑자기 나타나 해코지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GCC 국가 간에도 삶의 여건이나 환경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나는 바레인을 제외한 5개 나라에 가보았다. 그중 가장 보수적인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이고 가장 개방적인 나라가 아랍에미리트다. 술이나 돼지고기 같은 음식, 종교, 복장 등에 대한 규제 정도가 조금씩 다르고, 경제 수준이나 인구 구성에 따라 삶의 여건에 차이가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한다는 격언처럼 그 나라의 상규에 맞춰 살아야 안전하고 편안하다.

한 나라 안에서도 안전한 지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지역이 있다. 예컨대 이라크는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가장 북쪽의 쿠르드(Kurdistan) 자치 지역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남쪽의 바스라(Basra) 지역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바그다드(Baghdad) 인근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접경인데다 시아파의 4대 성지 중 하나인 카르발라(Karbala)가 가까이 있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알제리도 수도 중심에서 너무 벗어나면 치안이 취약하다. 튀르키예는 중서부와 남부는 괜찮은데 쿠르드족이 많은 동쪽은 피해야 한다. 귀에 익숙한 곳이라고 안내 없이 혼자 관광이나 비즈니스 여행을 가는 것은 위험하다. 경험자의 정보와 현지 대사관이나 코트라(KOTRA)의 안내를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 좋다.

언론에 의해 잘못 형성된 선입관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사전에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확보해야 한다. 또 살아가면서 계속 좋은 정보를 축적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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