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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사진기획전시>

01. 사진기획자로 산다는 것

by BOOKCAST 2022.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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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진기획자,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사진가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많이 듣곤 합니다.

사진가로서 성공하는 것은 달리기로 치면 마라톤과 같습니다. 한 번에 전력 질주해야 하는 단거리 경주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죠. 더 멀리 가기 위해 구간마다, 그리고 시간마다 전략을 세우고 어떤 부분에서 스피드를 내야 할지 미리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뚜렷한 목표 설정을 하고 스타트를 해야 하죠. 마라톤을 긴 호흡으로 준비하지 않고 100미터 경주처럼 전력 질주하다 보면 얼마 못 가서 지쳐버리겠죠. 이기는 싸움을 하려면 마라토너와 코치가 함께 연습하고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가와 사진기획자는 마라톤을 하듯 긴 호흡으로 함께 달리기를 하게 되죠. 여기서 사진기획자는 사진가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중계자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사진가는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관객들과 소통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사진작업을 하는 사진가의 경우라도 사진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혼자만의 외로운 파티가 되고 말겠죠. 이를 위해서는 전시와 기획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시 공간에 어떻게 작품을 구성하고 표현할 것인가를 담아낸 기획의도에 따라 그 전시와 작품이 빛을 발할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한 번의 전시를 위해 사진가와 기획자는 한배를 타게 됩니다. 이때 서로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물론 한 번의 전시와 한 번의 인연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대개 이 한 번이 계속적인 인연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사진가와 기획자가 함께 성공적인 전시를 이끌어내고 그런 성공을 이어가려면 매우 끈끈한 유대감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저는 사진가를 발굴하는 데 많은 공을 들입니다. 1년에 적어도 두세 번의 해외 포트폴리오 리뷰 행사에 리뷰어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사진가들의 작품을 보고 피드백을 해주죠. 이때 눈에 띄는 작가들을 발견하면 저는 그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기획전시에 참여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고, 작품을 잡지에 소개하거나 다른 기획자들에게 추천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해외 작가들에게는 한국의 잡지에 소개되거나 전시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주고, 반대로 한국 작가들에게는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동안 많은 포트폴리오 행사의 리뷰어로 참여하면서 일대일로 직접 만난 사진가들만 해도 이미 수천 명이 훨씬 넘습니다. 저는 이들에게서 다양한 영감을 받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사진들을 많이 보고 사진에 대한 안목과 다양한 관점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좀 더 정확하고 유익한 피드백과 조언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저는 다큐멘터리 사진, 순수 사진, 상업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사진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에 들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의 사진도 모두 분석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저만의 느낌을 꼼꼼히 기록합니다. 사진기획자는 사진가들의 작품과 예술세계, 그리고 관람객을 이어주는 매개자이기 때문에 작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면서 관람객들을 고려해서 소통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정보를 수집해야 하죠.


사진기획자의 길을 선택하기 전에 사진가로 잠시 활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기획을 하면서 사진가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사진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생각을 읽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시를 기획하는 것뿐만 아니라 컨설팅을 통해 사진가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합니다.

국제사진기획자. 저를 소개할 때 쓰는 명칭입니다. 사실 이 단어가 생소한 사람들이 많아요. 국제사진기획자는 말 그대로 국제적으로 사진을 기획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함께 일하는 작가와 기획자들이 대부분 외국인이고 주로 글로벌 프로젝트, 다시 말해 해외기획을 하죠. 해외에서 생활하고 세계 사진 현장을 다니며 활동한다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다른 문화의 낯설음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배움, 그리고 다양한 사진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요.

40대의 도전은 사진기획자이자 큐레이터로서 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 넓은 세상에서 일하기 위해 2014년 12월,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기획 일을 꾸준히 하며 해외일을 맡아 해외출장을 다니며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주어진 기회를 마다할 수는 없었어요. 미국의 갤러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 거절할 수 없었죠. 저에게는 한국을 떠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두려움을 감수하고 변화를 주며 모험을 하는 동안 더 많은 배움과 깨달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죠.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매우 다양합니다. 물론 자신이 태어난 곳,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편안함보다는 모험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모험에는 늘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곳을 향한 여정은 고난보다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사진기획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국제사진기획자로서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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