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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사진기획전시>

03. 실행으로 포착한 새로운 미래

by BOOKCAST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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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저는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한 번쯤 미국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런 생각을 했던 당시만 해도 해외에 나가는 경우가 흔치 않았고, 간혹 나가는 경우에도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이었죠. 그래서인지 외국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우리 반에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를 따라 잠시 한국에서 지내면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었죠. 한국말이 조금 서툴렀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 아이와 저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는데, 제가 그 아이의 집에 종종 놀러 가곤 해서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집에 놀러 가면 미국 생활에 관하여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은 어린 저에게 한편의 동화 같았습니다. 마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았죠. 어린 시절 저는 그 아이를 통해 한국과는 다른 미지의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국제사진기획자로 세계를 누비는 지금의 삶으로 이끌어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막연한 꿈이었다 해도 어느 순간부터 간절히 바라며 키워나갔고 기회가 왔을 때 용기 있게 도전해서 거머쥐었으니, 지금의 삶이란 게 결코 우연히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거죠. 세계여행의 꿈을 키우던 어린아이가 30대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국제사진기획자가 되어 전 세계를 다니며 사진 심사를 하게 되었고 40대에 이르러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미국생활까지 하게 되었으니, 제가 품었던 꿈들이 결국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이죠. 하나하나의 점들이 수많은 점이 되고 선을 이루어 국제사진기획자의 삶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현재 제가 하는 일 또한 하나의 점이 되어 미래의 어느 한 점과 만나게 되겠죠.

제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권을 받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떻게 미국 취업을 할 수 있었나요?”
“미국 영주권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받을 수 있었나요?”

저 역시 처음에는 미국 생활이라는 새로운 경험이 두려웠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 영주권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죠. 영주권이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죠. 이 때문에 영주권을 받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아가며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위해 완벽한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부족한 게 보이더라도 잘 준비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자신감 있게 도전했죠. 하지만 영주권 수속을 진행하는 동안 온갖 생각이 교차하며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납니다.

‘괜히 영주권 신청을 한 게 아닐까?’
‘안전하게 비자 연장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당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저는 좀 더 안정된 신분을 원했습니다. 영주권을 받으면 더 이상 비자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일에만 매진할 수 있었죠.

많은 사람들은 미국 취업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주권을 받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죠. 물론 쉽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뭔가 더 특출나거나 남들보다 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들보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에는 완벽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기회가 왔을 때 도전했을 뿐이었으니까요. 완벽해지기를 기다리다가는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죠.


사진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지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제 대답은 언제나 같았죠. 일단 찍기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찍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진 책을 보는 등 사진과 관련된 행동을 하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이 있을 때 바로 시도해 보라고 조언했어요. 한 장의 사진을 찍든 한 장의 사진을 보든 그 순간 이미 사진을 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사진가 척 클로스는 “영감이 떠오를 때를 기다리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모두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찾아오기 때문이죠.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곤 하지만, 사실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인지도 몰라요.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 시작하지 못한다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영어 속담에 ‘1온스[0.0625파운드]의 실천이 1파운드의 관념적 생각보다 더 가치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실천과 행동은 중요하다는 뜻이죠.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져야 내 것이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큰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꿈도 기분 좋게 꿈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꿈을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결국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동안 해외를 누비며 쌓아온 제 경험들은 모두 제가 상상하고 꿈꿔 왔던 것들입니다. 꿈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죠. 이렇게 각자가 간절히 바라는 꿈은 생각과 실천이 하나가 될 때 기적처럼 찾아옵니다.

여기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사진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매력적인 사진은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요? 가끔 저는 오래전 촬영한 옛 사진들을 보며 사라져가는 기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사진 속 장소의 명칭은 가물가물하지만 촬영했던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해 냅니다.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마음이 설레기도 하죠.

당시 사진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수확이자 기쁨은 사진을 찍기 전에는 몰랐던 주변의 소소한 아름다움의 발견이었습니다. 카메라의 눈이 아닌 제 마음의 연장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죠. 그래서인지 찍었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제가 보고 느꼈던 그 순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진을 볼 때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사진기를 통해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 것을 다시 사진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언가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순간 사진기의 사각 프레임에 고정시켜 이미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을 끌어당기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선택해서 자신이 느끼는 대로 사각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죠.

머리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사진을 셔터로 찍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한 구도와 구성에 맞춰 누르기를 반복합니다. 어떠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기보다는 기술적 아름다움에 더 신경을 쓰죠. 그러나 그건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사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설령 멋진 구도와 색상, 구성이 나왔다고 해도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사진기나 사진 찍는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느낌, 생각을 담을 수 있도록 자기 앞의 대상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찍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게 사진을 찍는 것이죠.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앞에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느끼는 대로, 마음을 다하여 대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찍는 것입니다.

사진기는 단지 자기 느낌을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사진기의 사각 프레임을 통해 가장 흥미로워하고 관심이 가는 대상을 선택합니다. 그 선택은 자신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이 궁금해하고 관심이 있는 것과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이 전달되어 자기만의 무엇을 이미지로 얘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선택한 프레임 안의 이미지를 통해 “나는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이런 식으로 느껴졌어. 그리고 나는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기술적인 노력이나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보는 이들도 마음을 열고 마음으로 그 이미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가끔 우리는 어느 한 장소에 단체로 여행을 가거나 방문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때 대부분 한 장소에 머물러 사진을 찍게 되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거의 같은 장소나 자리에서 대상을 봤는데도 나중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고 누구는 ‘그런 게 거기 있었어?’라고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같은 장소나 대상을 보더라도 느낌이나 바라보는 시선이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다는 것은 무언가가 마음을 끌어당겨 자기만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때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자기만의 이미지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찍는 사진은 대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 대상과의 교감에서 완성됩니다. 꾸준히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찍을 때 그 사진은 예전과는 다른 사진이 되며 더욱 매력적인 사진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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