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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서재에서 탄생한 위대한 CEO들>

04. 유니콘 헌터, 손정의(소프트뱅크 CEO)는 어떤 책을 읽을까?

by BOOKCAST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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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빚더미에 앉은
제왕이다.
_손정의

 


1957년 8월 11일, 일본 사가현(佐賀県) 도스시(鳥栖市) 고켄도로(五軒道路) 무번지(無蕃地)에서 미래에 세계의 투자 지형을 바꾸어 놓을 걸출한 인물이 탄생한다. 장차 김민석의 쿠팡과 마윈의 알리바바를 오늘날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으로 탄생시킬 운명의 투자자였다. 그의 이름은 마사요시 손. 우리에게 손정의(孫正義)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번지도 없는 허름한 일본식 가옥에서 파칭코 사업의 거물이었던 자이니치 2세 손삼헌(孫三憲) 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손종경(孫鍾慶)은 광산 노동자로 어렵게 삶을 이어갔다. 그의 할머니는 동네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리어카에 담아 가축 사료로 파는 허드렛일을 하며 근근이 살았다. 당시 전후 일본에서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중에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하면서 어린 손정의는 일찌감치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손정의는 16세가 되었을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소재한 살레몬테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전문대학을 거쳐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다. 그는 19세에 장차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20대에는 사업에 출사표를 던지고, 30대에 사업 자금을 모아, 40대에 사업에 큰 승부를 건다. 그리고 50대에 사업을 완성시키고, 60대에 접어들면 사업을 후계자에게 물려준다는 계획이다. 64세가 된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은퇴까지 6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그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 징검다리를 놓듯 한 가지씩 착실하게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졸업 후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1981년 소프트뱅크를 설립한다. 그의 앞에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업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치명적인 만성간염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넘긴다. 누구나 죽음은 자신의 인생 계획에 들어 있지 않다. 손정의는 25세의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고 병실에 누워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인생과 사업, 꿈과 비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친구처럼 가까이 두세요. 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겁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리운다.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불청객, 간염의 방문을 받고 와병 중이던 손정의는 마냥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병실에 누워 동서고금의 내로라하는 양서 3천 권을 읽으며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인간 심리와 인류 역사의 흐름을 통달한다. 책에 길이 있고 문장에 해답이 있었다. 열정 하나로 비즈니스에 뛰어든 피 끓는 청년 사업가에게 책은 인생의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만약 그가 이처럼 뜻하지 않은 병마와 처절한 사투를 벌인 일생일대의 경험을 생략한 채 오로지 초고속 질주만을 거듭했다면 오늘날 소프트뱅크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지금의 손정의도 지금의 소프트뱅크도 없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틈만 나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경영 원칙은 대부분 병실에서 완성되었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와신상담 재기를 노리던 손정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OS를 일본에 독점으로 공급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는 이 한 번의 결정으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듯 벌게 된다. 노벨의 일본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1994년 일본 증시에 상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벌어들인 자금을 바탕으로 그는 기업사냥꾼으로 변모한다. 그는 창업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야후의 가능성을 보고 미국으로 날아가 제리 양에게 야후 지분의 34퍼센트를 사들인다. 동시에 일본에서 야후재팬을 세우고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는 권리도 얻게 된다. 야후 인수는 질주하던 손정의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물론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미국의 야후 본사는 후발주자인 구글에 밀려 혁신에 실패하고 중요한 기회들을 놓치며 몰락했지만, 일본의 야후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덕분에 현재 야후재팬은 일본 내에서 최고의 점유율과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대표적인 포털사이트로 건재하다. 2018년 매출이 9,547억 엔(약 10조 2,718억 원)에 이를 정도로 일본 내 야후재팬의 위상은 그 어떤 기업도 넘볼 수 없다.

수익은 새로운 사업 영역에 대한 재투자로 선순환된다. 손정의는 야후재팬에서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하자 이를 토대로 다양한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자금을 대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 성장일로의 일본 경제가 미국마저 집어삼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뜨거웠던 1990년대 말에 손정의는 일주일에 1조 엔을 벌어들였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물론 일본 경제에 드리운 버블이 꺼지며 사업에 어느 정도 부침이 있었지만, 고비 때마다 기상천외한 전략과 지치지 않는 뚝심으로 사업을 이어갔다.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고 여세를 몰아 이동통신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애플의 아이폰을 일본에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판매권을 획득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장사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뽐내듯 그는 아무것도 제조하지 않은 채 다 만들어진 완제품을 들여와 오로지 유통만을 통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해 냈다. 그는 이미 시장이 브랜드 가치를 인정한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들여오는 방식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을 발굴하여 투자하는 방식도 적극 활용했다. 이렇게 해서 디디추싱이나 알리바바, 쿠팡 등 다양한 기업들을 업계 거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손정의는 누군가 자신에게 “무엇을 발명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하겠다고 말했다. “칩도 아니고 소프트웨어도 아니고 하드웨어도 아니다. 나는 300년 동안 존속할 조직 구조를 발명했다.”

앞날이 창창하던 젊은 사업가가 병실에 누워 3일에 한 권씩 읽었다는 책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제 아이디어와 기술은 있는데 자금이 없는 전 세계 유망한 개발자들에게 ‘말랑말랑한 은행’이 되어준 손정의의 서재를 지금부터 몰래 훔쳐보자.


손정의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

시바 료타로, 『료마가 간다(동서문화사)』
레이 크록, 『사업을 한다는 것(센시오)』
후지다 덴, 『유태인의 상술(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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