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에세이/<그림에 끌리다>

06. 고갱-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by BOOKCAST 2020. 6. 17.
반응형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은 고갱의 그림 속에서만 존재했다. 현실은 냉혹했으며 처절한 외로움 그 자체였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그린이 작품 등으로 개인전을 열었지만 예상과 달리 결과는 참담했다. 그림이 싼값에 팔리거나 팔리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고 자살을 생각하다 죽기 전에 마지막 유작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때 그린 작품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이다.
 
그는 친구 몽프레에게 쓴 편지에서 이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오른쪽 아래에는 잠든 아기와 쪼그려 앉은 세 여인이 있다. 주홍색 옷을 입은 두 인물은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크게 그린 쪼그려 앉은 여자는 한 손을 들어 감히 자신들의 운명을 숙고하는 두 인물을 놀라운 듯이 바라보고 있다. 가운데 인물은 과일을 따고 있다. 아이 옆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암염소도 보인다. 운동감 있는 신비스러운 포즈로 양팔을 들어 올린 신상은 다가올 세상을 암시하는 듯하다. 앉은 인물은 신상 쪽으로 귀를 곤두세웠다. 마지막으로 노파가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골몰해 있는 듯하다. 노파와 함께 줄거리는 완성된다. 노파의 발치에 있는 도마뱀을 타고 앉은 야릇한 흰 새는 알맹이 없는 말의 공허함을 상징한다. 이 모든 것의 배경은 시내를 끼고 있는 숲 지대이다. 색조의 변화는 있지만 풍경은 균일하게 청색과 녹색 기운을 품고 있다. 대담한 오렌지 빛깔의 벌거벗은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 몽프레에게 1898년 2월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897년, 141×376㎝, 캔버스에 유채, 보스턴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고갱의 작품 가운데 가장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마지막 작품을 작업하는 마음으로 이 그림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작품을 통해 철학과 문학, 미학을 통틀어 삶을 성찰하고자 했다. 이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유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눌 수 있다. 인물은 비례가 맞지 않고 성별의 구별 없이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있다. 가장 원초적인 순수한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해부학과 원근법을 무시해야 한다고 했다. 계산하지 않고 계획되지 않은 즉흥적인 드로잉과 사물이 가진 고유의 색이 아닌 주관적인 색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속 깊이 내재된 감정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 대작을 남기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이 작품은 길이만 4.2m가 넘는다. 고전 작품처럼 프레스코 벽화 느낌을 주기 위해 왼쪽 상단 양 귀퉁이를 노란색으로 칠한 다음 왼쪽에는 제목을 적고 오른쪽에는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그는 이 작품 이 미술계에 큰 바람을 일으킬 거라고 기대했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다른 그림과 합해서 1,000프랑에 팔렸고, 어떠한 이슈도 일으키지 못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갱에게 생각지도 못 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죽고 싶었지만, 아주 간절하게 살고도 싶었던 고갱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전에 입은 다리 부상으로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매독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었다. 그는 술과 진통제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유로운 성정과 방랑벽으로 삶을 즐긴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외로움이라는 고통에 시달렸다.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 했지만 완벽히 자신을 위한 선택처럼 보였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번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그는 죽는 순간에도 가족과 함께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예술가로서 고갱이 이뤄놓은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