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번트리 마을의 영주였던 레오프릭 백작의 부인이 레이디 고다이바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과중한 세금 정책에 대해 언급하며 소작농들에게 받는 세금을 낮춰줄 것을 요청했다. 레오프릭 백작은 고다이바의 간청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숭고한 마음을 비웃으며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을 했다. 그녀가 하지 않을, 아니할 수 없을 거라 확신하는 제안이었다.
“당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당신이 그토록 호소하는 세금 감면에 대해 고려해보겠소.”
“뭐라고요?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라고요?
그래요. 그렇게 하겠어요.”
레오프릭 백작이 자신의 아내 고다이바가 절대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다. 당시 11세기의 지극히 보수적인 영국에서는 고귀한 신분을 지닌 지배 세력한테는 품위가 목숨보다 중요했다. 그런 귀족이 나체로 집 밖을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레이디 고다이바는 농민을 구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얼마 나지 않아 코번트리의 농민들 사이에 이 일이 알려졌고, 조만간 레이디 고다이바가 나체로 마을을 돌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의 숭고한 마음에 감동한 농민들은 그녀의 뜻을 존중해 그녀가 나체로 마을을 도는 동안, 어느 누구도 그녀를 보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창문을 걸어 잠그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내다보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가게 문을 닫고 창문을 닫았다. 아무도 없는 코번트리 마을은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그때 레이디 고다이바가 나체로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말을 덮은 붉은 천은 그녀의 희생정신과 귀족 신분을 상징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훔쳐보는 이가 있었다. 시대를 불문하고 어디에나 이런 사람이 한 명쯤 있기 마련인데, 코번트리의 양복 재단사 톰이었다.
이 사건 이후 엿보기를 좋아하거나 관음증 환자를 ‘피핑 톰(Peeping Tom)’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고다이바의 벌거벗은 몸을 훔쳐본 톰은 저주를 받아 눈이 멀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고다이바의 숭고한 정신을 성적 호기심으로 더럽히려 한 것에 대한 신의 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행동에 남편 레오프릭 백작 또한 놀라고 감동했다. 그녀가 결코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일을 행동으로 옮기자 간청을 받아들여 세금을 낮추었다. 이후 레오프릭 백작은 코번트리를 훌륭하게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많은 화가들이 레이디 고다이바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그중에서도 존 콜리어(1850~1934)가 그린 〈레이디 고다이바〉는 간결하면서 고전적인 구도가 뛰어난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고다이바 초콜릿을 먹을 때마다 대담하면서도 인간애가 느껴지는 그녀의 행동이 생각날 테다. 당대 고다이바를 가장 아름답게 그렸다고 평가받는 존 콜리어의 그림 또한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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