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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 건축>

01. 걷고 싶은 거리

by BOOKCAST 202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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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문호 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정의했다. 생각해 보면 이 표현 속에서 건축은 곧바로 음악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즉 건축=음악이라는 등식이 직접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얼어붙은’, 즉 동결이다.

사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일정한 장소에서 정지된 사물을 바라보는 회화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야 느낄 수 있는 예술이다. 멜로디도 리듬도 시간의 흐름을 타고 완성된다. 그래서 음악은 현장성이 중요하며,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연주자와 연주를 들으며 현장에서 함께 시간을 공유하거나 녹음된 음악을 통해 임의로 지연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음악을 감상하면 시간의 흐름을 타고 바로 직전의 음률은 사라지지만, 그 여운과 함께 바로 이어지는 현재의 음률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축이 갖는 리듬은 음악과 같지 않다. 건축물이 내는 각각의 음, 즉 하나하나의 건축물은 도시라는 악보 위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음표와 같다. 따라서 한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의 집합은 그 하나하나의 음표들로 이루어진 동결된 음악이 된다. 그래서 건축을 살아 있는 음악으로 느끼려면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음표들의 연속을 따라 거리 위를 끊임없이 지나가야 한다.

유럽의 거리를 걷는 경험이 즐거운 것은 연속적인 보행로 옆으로 비슷한 높이와 입면을 가진, 한편으로는 분명하게 각각의 차이를 지닌 그 입면들이 변주해 내는 리듬을 읽기 때문이다. 건축적인 측면에서 좋은 도시란 사람들이 그 건축물의 리듬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걷고 싶어지는 곳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걷고 싶은 거리 혹은 도시에 대한 고민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고민 속에서는 항상 뉴욕 혹은 유럽 각지의 도시들이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었다. 과거 이 도시들에 대한 선망은 문화적 열패감을 동반했으나, 다행히 우리나라의 변화와 적응 속도는 매우 빨라, 지난 20여 년간 이런 결핍을 메우기 위해 정책적인 대안들이 제안되고 실현되고 있다. 또한 대중의 취향이 고급화됨에 따라 이에 부응하는 노력으로 서울과 같은 도시의 상업지구 안에 다양한 개성으로 무장한 거리가 속속 생겨났다.

대표적인 사례는 폐철길을 중심으로 연속된 보행로를 조성한 ‘연트럴파크’다. 경의선이 지하화됨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폐철길이 있던 부지를 무상 임대받아 ‘경의선 숲길’을 조성했다. 마포구에서 용산구까지 6.3㎞에 달하는 구간 중 특히 가장 긴 연남동 구간은 경의선 숲길에서 가장 사랑받는 산책 코스이며,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빗대어 ‘연트럴파크’라고 불리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운행이 중단된 경춘선 철도 길을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 단장한 ‘경춘선 숲길’의 ‘공트럴파크’가 있다.


길이 1.3㎞의 연트럴파크나 1.9㎞의 공트럴파크는 차도와 분리되어 보행자의 안전이 보장된 보행자로이며, 주행 중인 자동차를 마주칠 걱정 없이 산책과 조깅을 할 수 있고, ‘파크’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책로 주변으로 조경이 이루어진 환경 속에서 잠시 머무를 수 있는 휴식공간도 되어준다. 특히 이 산책로가 재미있는 것은 길 건너편에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인도가 따로 구획되어 있지 않은 이면 도로가 대부분인 저층 주거지에서 이 산책로는 보행자를 위한 통로라는 기능적인 역할은 물론 도시경관과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산책로라는 심미적인 역할 또한 함께한다. 어쩌면 이런 유형이 ‘한국적 거리’로 정착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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