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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 건축>

02. 서울에서 체감되는 사람들 사이의 밀도는 파리보다 낮다.

by BOOKCAST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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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서울에서 체감되는 사람들 사이의 밀도가 파리의 그것보다 낮다는 것을 믿지 못할 수도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사람들 간의 부대낌을 경험하다 보면, 서울의 밀도가 파리보다 낮다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파리의 면적은 105.40㎢로 서울 면적의 6분의 1이고 제곱킬로미터당 인구수는 20,641명이다. 서울의 인구밀도가 제곱킬로미터당 15,780명인 것과 비교해 볼 때 제곱킬로미터당 5천 명이 더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밀도만으로 한 사회의 사회적 거리를 전부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마다 이런 밀도를 다루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유럽 도시의 거주자들 대부분은 서울에 사는 거주자들보다 더 밀접한 사회적 거리에 익숙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들의 인사 예절과 대중교통 수단에서의 좌석 배치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인들의 인사 예절을 보면, 비주라고 불리는 서로 볼을 맞대는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대화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시선을 오랫동안 교환한다. 그리고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나 트램, 특히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 노선인 2, 3, 6, 11호선 등을 타면, 서로 마주 보며 앉는 좌석이 대부분이고 그 좌석 간의 폭도 매우 좁아, 눈이 마주치거나 무릎이 닿기라도 하면 즉시 사과와 함께 서로의 어색함을 상쇄하기 위해 미소를 교환하거나 가벼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이렇듯 동아시아 문화권의 우리나라와 사회적 거리를 다루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이 그들의 도시 환경 속에서도 나타난다. 유교문화권 안에서는 낯선 사람과 만날 때 적절한 물리적인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예의 바른 것으로 여겨진다. 대중교통 이용을 제외하면 서로 간의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지 않거나 다른 이들의 행동에 방해받는 상황에 태연하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연트럴파크나 공트럴파크는 저층의 상가와 보행로가 공존하는 한국식 가로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가로는 보차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이면도로가 대부분인 저층 주거지에서 대안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공간은 안전한 보행로가 되고 도심 공원으로서 공공 휴게공간 역할을 해내면서 편안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 줄 만큼의 공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공간을 발굴해서 기존 도시조직에 결속시키는 시도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서울 도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하천은 한국식 가로 개발에 매력적인 공간이 된다. 예를 들어 성북천의 경우 청계천보다 규모가 작아 좀 더 편안하게 인지되고 천변 위의 일방향 도로와 연계도 더 직접적이다.

이 방식은 연트럴파크의 사례와 공간적인 위계가 비슷하다. 길의 중심은 하천으로 소규모 자연이며, 연속해서 보행할 수 있는 보행로가 조성된다. 이 보행로는 도로 높이보다 낮게 위치해 공간적으로 분리되지만, 이런 공간상의 분리는 종종 인도를 침범한 음식점의 테이블이나 그 옆을 지나는 자동차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보행자들을 적절한 수준에서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도시와 자연, 도로와 자연이 과연 어울릴까 싶기도 하겠지만, 국토의 63%가 산지이며 대도시 서울도 도시 면적의 26%를 산림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연을 선호하고 애착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운명이 환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듯 도시 역시 이미 주어진 지리적인 조건과 그 환경을 이용하는 사람의 선택으로 운명이 결정된다. 서울이 지금과 같은 서울이 된 것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따른 결과다. 유럽의 도시와 같은 명칭을 사용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나라의 도시 공간은 다른 색깔과 모습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가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도시와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 알려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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