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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 건축>

05. 사는(buying) 집이 아니라 사는(living) 집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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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사는(buying) 집이 아니라 사는(living) 집’이어야 한다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집이 부동산시장에 지배받는 경제적인 생존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파트 시세라는 객관적인 지표는 우리 사회에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경제·사회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입지 좋은 곳에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고 우상이 된 지금, 사람들은 기꺼이 부담스러운 은행 대출을 받아서라도 아파트를 구매한다. 매달 감당해야 하는 대출금은 삶을 지속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지만, 결국 삶에서 가장 무거운 경제적인 짐이 된다.

집의 경제적 가치가 우선시되면서 투자 대상이 될 때 집의 본질적인 가치인 셸터, 즉 피난처의 의미는 점점 약해진다. 따라서 워라밸과 욜로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삶의 질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불필요한 경쟁과 무의미한 노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경제적인 규모에 맞는 ‘나만의 집’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집소개 방송 프로그램과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알 수 있고, 건축가들이 기획하는 ‘건축주 학교’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사의 도움을 받거나 받지 않더라도, 계획부터 시공까지 건축주 스스로 해내는 성공적인 사례들이 있다고 해도, 집을 짓는 일은 사실상 쉬운 일은 아니어서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집을 짓는다고 해도 “집을 지으면 10년 늙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접근하기 힘든 일로 여겨진다.

도시에 아파트를 가지고 교외에 세컨하우스로 집을 짓는 것이 아닌 이상 집을 짓는 일은 사실 피가 마르는 과정일 수 있다. 전 재산이 움직이며, 시공의 품질에 따라 가족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생각에 현장의 변수 하나하나에 촉각을 세우고, 약속한 날짜에 입주가 가능한지 여부를 직접 챙기고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좋은 집을 선물하는 것, 그것이 가장의 기본적인 의무이기에 집 짓는 과정에서 건축주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손해를 입는 건축주도 많다. 건축주 입장에서 어쩌면 그의 인생에 다시없을 매우 비싼 상품을 계약한 것이지만, 이 상품을 파는 시장은 그에게 별로 친절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성품으로 완성되어 있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아파트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을 짓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본인이 원하는 삶을 관철시키려 하는 신념에서 비롯하거나 때로는 불가피한 선택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가인 건축사들도 모두 자기 집을 짓고 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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