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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 건축>

03.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와 같은 도시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by BOOKCAST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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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관점에서 파리와 로마 같은 유럽의 도시를 보면, 속된 말로 조상 덕분에 관광만으로도 먹고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만큼 과거 이 도시를 정비할 때부터 미적인 요소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도시화 과정 자체가 경제개발 논리 속에 매우 급격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적인 요소까지 강요할 수 없었다. 사실 유럽의 건축법은 로마시대로 올라가고, 당시부터 건축법은 ‘황제가 보기에 좋았다’라는 식의 심미적인 가치가 내포된다.

파리 대개조 사업은 나폴레옹 3세의 실각 후에도 계속되어,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사업이 시작된 지 약 60년 만에 완결된다. 대규모 도시계획이 연속성을 갖고 장기간에 걸쳐 실행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은 근대화 사업이 완료된 후 1세기 정도가 지난 시기이며, 항공업의 발달과 함께 관광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얻고 국가적인 수익을 창출한 것은 대략 1970년대 이후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를 식민지화해서 얻은 경제적 이윤이 단기간에 집중되어 이룬 근대화를 생각한다면, 투자에 대비해 앞으로도 최소 50년에서 1세기 정도는 관광 대국의 위상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현재 프랑스 젊은이들은 파리라는 도시의 박물관화를 비판한다. 그들은 관광을 중시해 공간이나 생활 습성을 보존하는 도시의 박물관화는 도시와 삶을 박제화한다고 본다. 즉 시대적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옛 모습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서울과 같은 도시가 가진 역동성이 파리처럼 철저하게 기획되고 규제된 건축적인 환경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젊은 세대는 이런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며, 빠르게 변화하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뒤처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앞으로도 지속될 문제인지는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최근 SNS를 중심으로 ‘망가진 파리(SaccageParis)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거리에 쓰레기가 가득 찬 지저분한 모습이나 공공시설물이 훼손된 사진들이 게시되어, 도시의 관리 부실 실태를 고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것이 과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그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파리라는 도시가 문화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징조인지는 시간이 더 흘러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사회적인 이슈로 중요하게 다루는 이면에는 도시 노후화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 있다. 오스만의 도시 대개조 사업과 함께 확립된 주거 유형은 1세기를 넘어가고, 간간이 현대적인 주거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또한 공공건축물 역시 미테랑 대통령이 재임했던 시기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완료된‘ 그랑 프로제’ 이후 도심 내에 그에 필적할 만한 현대적인 건축 프로젝트는 없었다. 프랑스 역시 이제 새로운 대안을 본격적으로 고민할 시기에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K무비와 K팝 등의 대중문화를 필두로 문화적 부흥기에 들어섰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적인 방식,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건축계에서도 지금의 도시와 건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모습이 한국의 도시이며 한국의 건축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현실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으며, 지금에 이른 과정을 객관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합의에 이른 것 같다. 그래서 건축에 다시 한국성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등장했다. 요즘 논의되는 한국성은 과거처럼 한옥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현실 건축에서 보이는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한국적인 모습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중 많이 언급하는 것이 덧댐이다. 건물의 입면에 너저분하게 붙은 실외기·우수선 홈통 같은 설비나 발코니 새시 등을 한국적인 모습으로 제시한다. 이런 모습이 익숙하기 때문에 정겨울 때도 있을 텐데, 이런 B급 감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세련되게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 문화적 부흥기에 과연 우리나라의 건축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와 같은 도시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현재의 도시 환경이 지금의 경제·문화적 부흥을 담기에 충분한가? 그만큼 어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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