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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람과 삶을 담는 공간, 건축>

04. 서울에서 도시 산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by BOOKCAST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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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들보다 근대화를 뒤늦게 시작한 서울에서 도시 산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도심의 거리보다는 자연환경에 더 가까운 도심 내의 강변과 천변이나 공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최근에는 폐철길을 공원화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밀도 높은 대도시에서 건축물이 만드는 인공 환경으로서의 도시 산책 공간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면, 몇몇 유행하는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명확한 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동안 대규모 단지의 경계 때문에 나타나는 변두리성 문제를 언급하며 도심지에 대단지 아파트를 조성하는 것을 비판하는 의견이 있었고, 결국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강경한 표현까지 나온 적도 있다.

다른 면에서 보면 서울은 파리의 6배에 이를 만큼 넓고 수도권까지 포함하면 거대한 생활권인 광역도시가 되었다. 이런 서울에서 이미 직장과 주거 간 거리가 멀어 통근만 해도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도시 산책의 여유가 가능할까 생각해 보면, 도시 산책이 과연 중요한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미 파사주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파사주는 강북에서 찾을 수 있는 저층 주거지의 골목이다.

이 골목들은 이면도로와는 다르다. 이면도로는 주거 블록의 외곽 도로로, 인도가 특별히 구분되어 있지 않으며 자동차와 보행자가 섞이고 주차까지 하는 복잡하고 위험한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주거 블록의 내부 골목은 그 폭이 좁아 거의 보행자 전용으로 사용되며, 자동차를 피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물론 배달 오토바이가 침범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 골목을 걷는 경험은 유쾌하다.

특히 몇몇 지역에서는 과거 담장 허물기 사업으로 벽을 허물어 주차공간을 확보했다. 오전에 차량이 빠져나간 후 골목을 향해 열려 있는 마당은 골목과 주택 사이에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급격한 접촉을 유보하게 하는 매개 공간이 되며, 골목의 공간감을 확대시키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자연친화적이 되는데, 이는 집의 틈새 공간마다 꽃과 식물들을 키워 골목마저 화분으로 가득 찬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유럽의 파사주와 거리에서 저층의 상점과 카페들이 가로를 공공생활 공간으로 만든다면, 우리나라의 파사주에서는 꽃과 나무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보행자들이 골목을 사용하는 데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특히 반가운 것은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만날 때이며, 대부분은 골목길 주택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부지불식간에 노출되는 것을 조심스럽게 구경하며 지난다. 그리고 요즘은 저층 주거지의 주택을 상점이나 식당으로 개조해 사용하곤 한다. 이 경우 골목이 주거지 사람들만의 사적 통로가 아닌 공공 가로로 느껴져 더 편안하게 골목길을 오간다.

 


이런 골목들을 헤매다가 큰길로 빠져나오면, 갑작스럽게 넓어진 도로와 자동차 소음을 접하면서, 골목에서의 경험이 꿈이었던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는다. 순간적으로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온 앨리스가 된 기분이 든다. 이런 골목길의 보존과 활용 여부는 결국 자본의 논리로 판단하겠지만, 이런 골목들을 발굴하고 그 가치를 살릴 수 있다면 서울 특유의 도시 산책이 정의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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