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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투머치머니>

03. 양방향 호가 시장을 만들면 땅 짚고 헤엄치기다.

by BOOKCAST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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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금융거래는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전에도 컴퓨터를 쓰기는 했지만 거래 과정에서 사람이 직접 개입하는 부분이 많았다. 요즈음에는 주문 자체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역할은 프로그램을 짜고 주기적으로 거래 결과를 검토하는 데 그친다.

이는 곧 마켓 메이커에게 새로운 기회를 뜻한다. 예전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방식으로 돈을 불릴 시발점이 되는 셈이다. 요즈음 마켓 메이커의 거래 방식은 이른바 고빈도 거래다. 고빈도 거래는 1초에 수천 번 이상 거래할 정도로 빠른 거래가 특징이다. 데이터를 분석해 거래 주문을 하나 내는 데 100만 분의 64초 정도 걸리니 1초에 10,000번 이상의 거래도 가능하다. 이러한 속도에 사람이 직접 대응할 방법은 없다.

고빈도 거래는 신생 금융사가 시장을 주도하는 마켓 메이커가 되게 만든 원인이다. 고빈도 거래 마켓 메이커는 이미 시장 전체 거래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가령 미국 주식시장의 주요 고빈도 거래 마켓 메이커로 버투파이낸셜, 타워리서치캐피털, 겟코 등이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잘 들어보지 못했을 이름이다.

그렇다면 고빈도 거래 마켓 메이커는 돈을 어떻게 불릴까? 이들은 통상의 마켓 메이커가 누리지 못하는 수익원을 갖고 있다. 바로 ‘메이커·테이커 수수료’ 체계다. 여기서 메이커란 고빈도 거래 마켓 메이커를 가리킨다. 구매가와 판매가를 걸어놓고 누구를 상대로 하든 그 가격에 거래를 하는 쪽이다. 테이커는 마켓 메이커가 만든 시장에서 거래를 하는 쪽이다. 메이커의 시장가격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는 의미다. 테이커는 자산운용사나 연기금 혹은 자기자본 거래를 하는 헤지펀드 등을 가리킨다.

Image by rawpixel.com
 

메이커는 양방향 호가를 제시하는 반대급부로 거래소로부터 뒷돈을 받는다. 이 뒷돈이 메이커의 주요 수입원이다. 메이커는 뒷돈을 받는 대신 명목상 비드-오퍼 스프레드가 전통적인 마켓 메이커보다 더 작다. 메이커는 이를 자신들이 제공하는 낮은 거래비용과 높은 유동성의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메이커가 내건 호가는 유령과도 같다. 메이커의 지정가 주문에 테이커는 볼 수 없는 조건이 붙어 있어서 막상 거래를 하려고 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메이커의 주문은 대개 적은 수량이다. 시장의 유동성 공급에 목적이 있지 않고 테이커의 주문을 감지하는 것이 목표다.

고빈도 거래 마켓 메이커가 돈을 불리는 방법은 거래소의 뒷돈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시세 조종이다. 마켓 메이킹을 빙자해 은밀하게 가격을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돈을 불리는 방법이다. 보통 ‘작전’이라는 단어도 많이 쓴다. 작전의 개별 기법은 다양하기만 하다.

그중 하나인 ‘스푸핑’을 알아보자. 스푸프는 원래 풍자하거나 웃기려고 베껴 만든 창작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을 패러디한 찰리 쉰의 영화 <못 말리는 비행사>가 대표적인 스푸프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스푸핑은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속이려는 기법을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금융의 스푸핑은 정말로 거래할 생각도 없으면서 다수의 주문을 내는 경우다. 그럼으로써 가격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스푸핑에 사용된 허수주문은 막상 거래를 하려고 하면 다 취소되어 없어진다.

실제로 타워리서치는 2012년 3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스푸핑을 했다. 스푸핑의 거래 대상은 소액으로 거래할 수 있는 주가지수 퓨처스였다. 타워리서치를 세운 마크 고튼은 원래 크레디트스위스의 채권 트레이더였다. 예일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친 그는 마틴 마리에타에서 무기를 개발하다 하버드대 MBA를 거쳐 금융계에 입문했다. 타워리서치는 미국 법무부와 174억원, 미국 원자재파생거래위원회와 810억 원, 도합 984억 원에 합의했다.

고빈도 거래 마켓 메이커의 돈 불리기가 스푸핑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2004년 7월, 나이트캐피털은 미국증권거래소위원회와 948억 원에 합의했다. 프런트 런을 한다는 혐의의 결과였다. 나이트캐피털의 프런트 런은 자기가 내건 호가를 지키지 않는다는 불평이 쌓인 탓에 밝혀졌다. 호가를 준수하지 않는 것은 마켓 메이커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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