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물을 만들어 팔아 크게 돈을 불린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판타락 라자데즈는 1903년 태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국은 20세기 내내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왕이 직접 통치하던 시암왕국은 1932년 무혈혁명이 발생하며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국가명을 오늘날과 같이 바꾼 지 2년 만인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태국은 일본의 침공을 받고는 곧 일본과 비밀 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연합국은 태국의 선전포고를 대체로 무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태국도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지 1년 후인 1946년에 왕이 의문의 총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57년에는 내란을 일으킨 태국군 원수가 왕을 신격화함으로써 자신의 독재정치를 정당화했다. 1970년대 시민이 군부독재에 저항하자 왕이 정치에 개입해 총리를 교체하기도 했다. 1978년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대학생들을 학살했다. 왕은 왕대로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고자 1981년과 1985년 두 차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태국에서 최초로 총리 선거가 이뤄진 해가 1988년이었다.
라자데즈는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무사히 헤쳐 나온 사람이었다. 경찰이었던 그는 태국 남부 말레이 반도에 위치한 나콘시탐마랏의 치안감까지 올랐는데, 어려운 살인사건을 해결하며 일약 유명해졌다.
라자데즈가 살인사건을 해결한 방법은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자투캄과 람마뎁이라는 신이었다. 자투캄과 람마뎁은 7세기에서 12세기까지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을 지배하던 스리비자야왕국의 두 왕자였다. 대승불교에서는 두 사람을 관세음보살의 현현으로 간주하는 전설도 전해져왔다.
라자데즈는 살인사건 해결의 공을 자투캄과 람마뎁의 신묘한 힘에 돌렸다. 사람들은 라자데즈가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흑마술에 통달했다고 믿었다. 1987년 라자데즈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자투캄과 람마뎁을 형상화한 부적을 직접 만들어 팔려고 시도했다. 라자데즈만큼 불심이 깊지 않았던 태국 사람들은 부적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라자데즈가 죽을 때까지는 그랬다.
2006년 라자데즈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104세 때 일이었다. 라자데즈의 시신은 공개 화장하기로 결정되었고, 잘 팔리지 않아 쌓아두었던 자투캄 부적은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2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장례식에 나타났다. 심지어 당시 왕세자였던 마하 와치랄롱꼰도 참석했다. 라자데즈가 살아생전에 존경을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100세 넘도록 장수했다는 사실과 자투캄의 신비한 힘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일종의 화학반응을 일으킨 셈이었다.
자투캄 부적은 마치 목걸이처럼 목에 걸 수 있었다. 금목걸이 여러 개를 목이 휘도록 걸고 있는 래퍼처럼 신심이 큰 사람이라면 여러 개의 자투캄 부적을 목에 걸기도 했다. 각각의 자투캄 부적에는 ‘천국으로의 슈퍼리치’나 ‘영원히 부자’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특수한 자투캄 부적이 총알을 막고 질병으로부터 지켜주는 힘도 가졌다고 믿었다.
하루아침에 자투캄 부적은 태국에서 가장 뜨거운 잇템이 되었다. 왼편의 사람도 원하고 오른편의 사람도 원하니 모두가 원하는 건 당연했다. 특히 라자데즈가 직접 축원한 자투캄 부적을 손에 넣고 싶어 했다. 원래 라자데즈의 자투캄 부적을 팔던 곳은 나콘시탐마랏에 위치한 왓프라마하탓 사원이었다. 부적을 사기 위해 예약을 기다리다가 한 여자가 인파에 깔려 죽기도 하고, 한 사람이 500개에 달하는 부적을 구매하기도 했다. 사원은 이러한 수요를 감당할 재간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국의 다른 사원에서도 자투캄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수요는 곧 가격 상승을 불러왔다. 자투캄의 원래 가격은 1,500원 정도였다. 만드는 비용은 그보다 훨씬 낮았다. 그랬던 자투캄의 가격이 10,000원을 넘기더니 어느새 수백만 원을 호가했다. 자투캄이 너무 많이 팔리자 태국 국세청은 세금 부과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2007년 한 해에만 팔린 자투캄의 총액은 7,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었다. 자투캄은 24시간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에서도 팔았다.
라자데즈가 손을 댔다는 자투캄 부적은 한 개에 9,000만 원에 팔렸다. 라자데즈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가 손댄 자투캄의 수량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였다. 신기하게도 그가 직접 손댔다는 자투캄은 끝도 없이 나왔다.
자투캄 시장이 무너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이 부러져라 여러 개의 자투캄을 걸고다녔는데 왜 부자가 안 되는 걸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이 생겨난 탓이었다. 의심의 전파는 열병의 전파보다 빨랐다. 2008년 자투캄의 가격은 원래 수준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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