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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투머치머니>

06. 돈이 될 길목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by BOOKCAST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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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서 길목 지키기를 할 만한 또 다른 경우는 경영권을 두고 분쟁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회사다. 이런 회사는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한 회사의 주식을 갖게 된다면 향후 상당한 프리미엄을 받고 되팔 개연성이 크다. 설령 양측 간의 위임장 대결 같은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경영권 안정을 목표하는 최대주주 측에게 짭짤한 돈을 받고 넘길 수도 있다. 이때의 리스크는 물론 아무런 분쟁이 생기지 않는 경우다.

사실 버핏이 1962년에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처음 사들였을 때 가졌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버크셔가 경영권 분쟁 상황에 놓여 있던 것은 아니었다. 버핏 자신이 바로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였다. 초창기 버핏과 같은 기법으로 돈을 불리는 사람을 가리켜 ‘그린메일러’라고 부른다.

원래 영어에 블랙메일이라는 단어가 있다. 중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 국경에 살던 씨족은 근처에 사는 농민을 무력으로 괴롭혔다. 농민은 화를 면하기 위해 씨족에게 물건이나 노동 혹은 은을 바쳤다. 전자를 블랙메일, 후자를 화이트메일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메일은 지대나 공물을 뜻하는, 편지와는 철자가 다른 별개의 단어였다.

그린메일은 값진 걸 내놓기를 강요한다는 면에서 블랙메일과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빼앗는 대상이었다. 미국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를 만들기 전에 발행했던 지폐는 뒷면 색깔이 녹색이라 그린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즉 그린메일의 그린은 돈을 뜻했다.

말하자면 그린메일은 순수한 의미의 길목 지키기와는 조금 달랐다. 그린메일의 길목 지키기는 사냥감이 나타나기를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냥감이 내가 있는 곳으로 어쩔 수 없이 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린메일의 마에스트로는 누구였을까? 가장 유명한 사람은 티 분 피켄스다.
1928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피켄스는 키가 173센티미터였지만 텍사스에이엔드엠대학 농구 선수로 뛰었다. 대학 졸업 후 필립스석유에서 3년, 프리랜서 유전 탐사인으로 2년간 일한 뒤 1956년에 메사석유를 세웠다. 메사석유는 1980년대 초반 주요한 독립 정유사로 이름을 올릴 만큼 성장했다.

피켄스는 경쟁 정유사의 인수 시도를 자주 했다. 파이오니어석유 같은 곳은 인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많은 시도가 중도에 그쳤다. 그는 자신의 첫 직장 필립스석유와 76이라는 상호로 잘 알려진 캘리포니아연합석유, 즉 유노칼도 인수하려 한 바 있었다.

피켄스의 가장 유명한 거래는 걸프오일이었다. 걸프는 서구의 정유업계를 나눠 먹는 이른바 ‘일곱 자매’ 중 하나였다. 일곱 자매는 모두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이 셔먼 반독점법에 의해 갈라진 회사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걸프의 최대주주는 앤드루 멜론 일가였다. 걸프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정유사였고 메사는 아흔두 번째에 불과했다. 피켄스는 자신을 골리앗인 일곱 자매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다비드에 비유했다.

1983년 봄, 피켄스는 상장시장에서 걸프의 주식 4.9퍼센트를 샀다. 5퍼센트가 넘어가면 주식 보유 사실을 10일 이내에 공시해야 했다. 그는 5퍼센트를 넘기자마자 더 빠른 속도로 주식을 샀다. 1983년 10월 공시 시점까지 그의 지분율은 11퍼센트가 되었다. 이는 최대주주인 멜론 일가보다도 더 높은 지분율이었다.

걸프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피켄스의 시도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저항했다. 가령 델라웨어는 미국에서 경영진에게 가장 유리한 법률과 제도를 가진 주였다. 그들은 본사를 델라웨어로 옮기고 피켄스에게 유리할 수 있는 정관의 조항도 고쳤다.

걸프의 주가는 피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과거 10년간 40,000원 선에서 유지되었다. 피켄스는 주당 66,000원에 걸프 주식을 사겠다고 공개매수에 들어갔다. 공개매수는 현재의 주가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주식을 사겠다고 공개적으로 입찰하는 방법이었다. 그러자 또 다른 독립 정유사 아르코도 84,000원에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피켄스는 굴하지 않고 공개매수 가격을 올렸다.

1984년 마침내 걸프의 언니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스탠더드오일, 즉 쉐브론이 나섰다. 쉐브론은 주당 96,000원에 걸프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피켄스는 사 모았던 걸프 주식 전체를 쉐브론에 순순히 넘겼다. 이로써 그는 9,000억 원이 넘는 돈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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