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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투머치머니>

01. 값이 오를 것을 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by BOOKCAST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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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쿠스 베커는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1984년에 컬럼비아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남아프리카의 한 방송미디어 회사에 들어갔고 1997년에는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아프리카 남단의 듣도 보도 못한 회사를 이끌게 된 베커는 2001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선전에 있는 한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중국요리와 루쉰의 단편소설을 좋아했다”. 1998년 11월에 설립된 그 회사는 지난 3년간 계속 돈을 까먹고 있었다. 2001년 베커는 회삿돈으로 이 회사의 주식 46.5퍼센트를 사들였다. 이때 든 돈이 384억 원이었다.

시계를 돌려 2022년 2월로 가보자. 베커가 산 중국 회사의 시가총액은 그사이 702조 원으로 뛰어올랐다. 중간에 일부 내다 팔기는 했지만 여전히 30.86퍼센트의 주식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즉 남아프리카 방송미디어 회사는 베커 덕분에 약 217조 원에 달하는 주식을 갖게 되었다. 중간에 판 주식과 배당은 차치하더라도 남아 있는 주식의 가치만 따졌을 때 5,642배로 돈을 불린 셈이었다. 그렇다면 베커가 이끈 남아프리카 회사의 이름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낯설 내스퍼스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내스퍼스가 산 중국 회사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바로 텐센트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베커와 같은 수익을 올리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몇백억 원어치 주식을 자기 돈으로 매입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자.

1962년 한 미국인이 오래된 회사 주식에 관심을 가졌다. 사양 산업인 면직물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1930년에 태어난 그는 고등학생 때 신문을 돌리고 골프공을 팔았다. 집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네브래스카의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이었을 만큼 집안은 부유했다. 단지 그는 돈을 벌고 불리는 일이 좋았을 뿐이었다. 학부 졸업 후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 지원했지만 입학을 거절당했다. 결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그가 면직물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회사의 전망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외려 “형편없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이유는 회사가 가진 자산에 비해 주가가 너무 낮아서였다. 그는 지도를 만드는 회사의 주식을 비슷한 이유 때문에 사서 2년 만에 50퍼센트의 이익을 보고 되팔기도 했다.

그는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이른바 ‘안전마진’을 배웠다. 안전마진이란 회사를 청산할 때 받을 수 있는 돈이 주가보다 큰 경우 그 차이를 가리켰다. 그에게 이를 가르친 사람은 가치투자의 시조인 벤저민 그레이엄이었다. 그레이엄은 주가는 완전히 제멋대로 움직이니 주식을 거래할 때 유일한 마음의 위안은 충분히 큰 안전마진을 갖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금융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챘을 터다. 전 세계에서 돈 많은 것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오마하의 오라클’ 워런 버핏이다. 오마하는 버핏이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살고 있는 네브래스카의 동네 이름이다. 오라클은 그리스신화에서 신들이 사용하는 영매 혹은 무당이다.

1962년 12월 12일, 버핏은 면직물 회사의 주식을 처음으로 샀다. 매입 가격은 1주당 9,120원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버핏은 장기간 보유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지도 회사 때처럼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되팔아 이익을 챙길 요량이었다. 그래서 그는 면직물 회사의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인 시버리 스탠턴에게 자기가 사 모은 주식을 경영권 안정을 위해 사가라고 제안했다.

1964년 스탠턴은 1주당 13,800원에 사겠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이익이 충분하다고 만족한 버핏은 구두로 합의했다. 몇 주 후 버핏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스탠턴이 구두 합의한 금액에 150원 낮은 1주당 13,650원에 사겠다는 서면을 보내온 것이었다.

원래 받기로 한 돈보다 1퍼센트 적을 뿐이었지만 속았다는 감정이 앞선 버핏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고, 결국에는 주식을 팔지 않기로 하고 거꾸로 면직물 회사의 주식을 더 사 모았다. 그리고 면직물 회사의 최대주주로 올라서 1965년 5월 스탠턴을 잘라버렸다. 이 면직물 회사가 바로 버크셔 해서웨이였다.


나중에 버핏은 버크셔를 산 것은 자신이 범한 최악의 실수라고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망해가는 산업에 속한 회사를 떠안은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금융 관점에서도 버핏의 후속 주식 매집은 손실이 많았다. 스탠턴에게 팔았더라면 1주당 13,650원을 받았을 텐데, 주식을 추가로 사면서 평균 17,830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처음에 주식을 매입했을 때와 비교한다면 2배 가까이 비싼 금액이었다. 버핏은 결국 1985년 버크셔의 면직물 생산을 중단했다.

여기서 이야기를 마치면 버핏에게 미안할 일이다. 이후 버핏은 버크셔를 통해 여러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아예 보험회사로 업종을 바꾼 버크셔를 지주회사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2022년 2월 28일, 버크셔 A 주식의 종가는 5억 7,145만 원이었다. A 주식은 정상적인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를 가리킨다.

버크셔는 버핏이 최대주주가 된 이래로 A 주식을 쪼개거나 합친 적이 없다. 쉽게 말해 1960년대에 버핏이 산 버크셔 1주와 2022년의 버크셔 1주는 같다. 버크셔는 1967년에 120원을 지급한 것이 배당의 전부라서 배당은 무시해도 무방하다. 즉 버핏은 해당 기간 동안 자신의 돈을 32,046배로 불렸다. 버핏이 보유한 248,734주의 버크셔 A 주식은 돈으로 환산하면 142조 원을 넘어선다.

듣기만 해도 후덜덜한 금액이지만 달나라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버핏처럼 주식을 고를 안목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버크셔의 주가가 30,000배 이상 오른 것은 버핏이 버크셔를 통해 사들인 주식들이 그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버핏만큼의 혜안을 가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 같다.

그렇다고 해서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버핏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버핏이 버크셔 주식을 처음 사들이던 시점에 누군가가 버크셔 주식을 샀다고 가정해 보자. 당시 버크셔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주식을 살 수 있는 상장회사였다. 그러니 중간에 팔아버리고 싶은 유혹만 이겨냈다면 버핏과 마찬가지로 30,000배 넘게 돈을 불리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그 유혹은 그리스신화에서 수많은 선원을 홀려 난파시킨 바다의 요정 세이렌의 노래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이 탄 배의 선원들 귀를 밀랍으로 막아 물귀신이 되는 것을 막아냈듯이, 주식을 팔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야 마지막에 진정으로 웃을 수 있다.

실제로 1926년에 태어난 데이비드 고츠만은 1962년에 버크셔 주식을 19,000주 매입했다. 당시 돈으로 약 1억 7,000만 원이 들었다. 2021년 3월 기준, 그는 버크셔 A 주식 17,202주를 여전히 갖고 있다. 이를 환산하면 약 9.8조 원이다.

아, 한 가지 사실을 빠뜨릴 뻔했다. 사실 고츠만은 버핏의 친구였다. 버핏의 귀띔이 없었더라도 고츠만이 버크셔 주식을 샀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우연히 버크셔 주식을 버핏과 동시에 샀으리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는 늘 이러한 우연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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