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7일, 앤서니 워드는 24만 톤의 카카오를 샀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전 세계 연간 초콜릿 생산량은 340만 톤에서 380만 톤 정도였다. 즉 그가 산 카카오는 전 세계 연간 생산량의 약 7퍼센트에 달하는 양이었다. 카카오 매입에 든 돈은 1조 원 이상이었다.
워드는 이전부터 카카오 시장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유럽카카오협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초콜릿 손가락’ 혹은 이를 짧게 줄인 ‘촉핑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가 카카오를 산 까닭이 로알드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윌리 웡카와 같지는 않았다. 워드는 초콜릿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워드의 매입이 이례적인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비밀리에 실물 카카오를 사들였다. 보통은 카카오 기초자산의 파생거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카카오 거래의 98퍼센트가 현물거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워드는 사들인 카카오를 여러 도시의 창고에 쌓아 놓았다. 카카오는 너무 오래 두면 썩기는 하지만 수년간은 보관이 가능했다.
워드의 움직임에 압박을 받는 데가 있었다. 네슬레나 캐드배리 같은 초콜릿을 만드는 회사들이었다. 원료인 카카오 없이 초콜릿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한다 하더라도 가격이 너무 높으면 그 또한 문제였다. 1톤당 380만 원이던 현물 카카오 가격은 워드의 매입 때문에 440만 원으로 올라갔다. 그의 매입 소식이 알려지자 시장은 더욱 들뜨기 시작했다. 결국 2011년 초, 카카오 가격은 500만 원을 넘겼다. 워드는 그즈음 카카오를 되팔아 쏠쏠한 이익을 챙겼다.
스퀴즈는 몇 가지 일이 차례로 일어나면서 서로 간에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첫째, 팔 물건이 줄어들면서 시장에 공급이 부족해진다. 둘째, 공급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가격이 급격히 오른다. 셋째, 가격이 오르면서 공매도를 했던 곰의 손실이 커진다. 공매도 포지션의 손실이 커지면서 추가로 증거금을 내야 하는 마진 콜이 대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넷째, 손실을 견디지 못한 곰이 공매도를 푼다. 공매도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현물의 매입이다. 이는 다시 팔려고 나와 있는 물건의 수량을 더 줄인다. 첫째의 과정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이러한 양의 되먹임이 발생하면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올라간다.
스퀴즈가 일어나면 현물을 사서 갖고 있던 사람은 돈을 엄청나게 불릴 수 있다. 가격이 조금 오르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많이 오르기 때문이다. 워드의 사례에서도 그가 기대했던 대로 카카오에 스퀴즈가 일어나면서 카카오 가격은 단기간에 급격히 뛰어올랐다.
스퀴즈를 당하는 사람이 언제나 곰은 아니다. 반대의 스퀴즈도 있다. 즉 곰이 아닌 황소에게 일어나는 스퀴즈다. 황소가 어떻게 스퀴즈를 당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 첫째, 어떠한 이유에서건 가격이 떨어진다.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많아지는 것은 언제나 가격 하락을 불러온다. 둘째, 가격이 떨어지면서 거래물을 샀던 황소의 손실이 커진다. 주로 자기 돈이 아닌 빌린 돈으로 샀다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 커지는 손실을 견디지 못한 황소가 거래물을 되판다. 갖고 있던 거래물을 팔아야만 손실을 멈출 수 있다. 넷째, 황소의 매각 때문에 가격은 더 떨어진다. 이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다른 황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여기서도 양의 되먹임이 발생해 가격은 바닥을 향해 내동댕이 쳐진다.
이처럼 스퀴즈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가 있기에 누가 당하는 스퀴지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곰이 당하는 스퀴즈를 ‘공매도 스퀴즈’, 황소가 당하는 스퀴즈를 ‘차입 매입 스퀴즈’라고 한다.
스퀴즈는 카카오 같은 원자재 시장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주식시장에서도 일어난다. 주식 스퀴즈의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1848년에 태어난 주식 중개업자 에드워드 해리먼은 1879년에 결혼하면서 철도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철도회사 사장인 장인이 자기 회사 이사회에 앉힌 덕분이었다. 1881년 해리먼은 파산한 온타리오호철도를 사서 정상화시킨 후 상당한 이익을 남기며 되팔았다. 재미가 들린 그는 1897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유니언태평양철도를 샀다. 밴더빌트 일가, 록펠러 일가, 투자은행 쿤롭 등으로 구성된 해리먼의 신디게이트가 900억 원의 인수 대금을 댔다. 3년 만에 해리먼은 이미 투자금을 다 뽑았다. 그의 다음 목표는 벌링턴철도였다.
벌링턴철도를 노리는 사람은 또 있었다. 북태평양철도를 지배하고 있던 제임스 힐이었다. 벌링턴철도 사장 찰스 퍼킨스는 해리먼과 힐의 제안을 각각 들어본 후 힐의 손을 잡았다. 해리먼이 1주당 180,000원으로 깎으려 든 반면 힐은 퍼킨스가 원한 240,000원을 그대로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힐의 자금줄은 존 피어폰트 모건이었다.
해리먼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벌링턴철도를 막 품에 안은 힐에게는 약점이 하나 있었다. 힐과 모건이 가진 북태평양철도 주식은 2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시총이 1,800억 원인 북태평양철도 주식을 시장에서 사 모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 탓이었다. 힐의 생각은 들어맞지 않았다. 해리먼은 1901년 3월부터 4월까지 444억 원을 들여 북태평양철도 주식을 조용히 사들였다. 앞으로 40,000주만 더 매입하면 힐과 모건의 지분율보다 더 높아질 터였다.
힐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1893년에 두 번째로 파산한 뒤 내내 기껏해야 24,000원에 거래되던 북태평양철도 주가가 어느새 110,000원까지 올라갔다. 힐은 쿤롭의 제이컵 시프를 닦달해 전모를 들었다. 격노한 힐은 행동에 나서야 했지만 먼저 모건의 승인이 필요했다. 하필이면 모건은 프랑스에서 휴가 중이었다. 힐은 전보를 보내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1901년 5월 5일 일요일 저녁, 드디어 모건의 전보가 도착했다. 다음 날인 5월 6일 월요일 아침, 힐은 200,000만 주를 낚아챘다. 해리먼도 질세라 북태평양철도 주식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북태평양철도 주가는 130,000원에서 150,000원으로 뛰어올랐다. 북태평양철도 주가 상승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뉴욕증권거래소의 곰들은 공매도를 했다. 5월 7일 화요일이 되어서도 해리먼과 힐은 계속 북태평양철도를 사들였다. 주가는 180,000원이 되었다. 공매도를 했던 곰들은 마진 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5월 8일 수요일이 되었다. 오전까지 정상적으로 보이던 시장에 오후 1시경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마진 콜에 시달리다 못한 곰들이 증거금을 마련하고자 다른 주식을 팔아 치운 탓이었다. 주가는 속절없이 떨어졌다. 다우존스지수는 75에서 20포인트 빠진 55가 되었다. 신용거래의 대출 이자율은 연 60퍼센트까지 뛰어올랐다.
그러자 모두가 공포에 휩싸여 팔겠다고 소리 질렀다.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북태평양철도 주가만 예외였다. 190,000원의 종가로 장을 마감했다. ‘월가의 외로운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버나드 바루크는 이날 밤 왈도르프 호텔에 모여든 사람들의 담배 연기를 두고 “왈도르프가 궁전에서 겁먹고 궁지에 몰린 짐승들의 소굴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5월 9일 목요일,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주식 수가 곰들이 공매도한 물량보다 한참 모자란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곰들은 이날 오후 2시 15분까지 북태평양철도 주식을 매입자에게 주어야 했다. 전날까지 힐은 경영권을 지키는 데 충분한 주식을 모았지만 힐도 해리먼도 단 1주도 팔거나 빌려줄 생각은 없었다. 이제 곰들의 유일한 희망은 몇 개 안 되는 주식이라도 사는 것이었다.
첫 거래가 전날 종가에서 10,000원 오른 200,000원으로 시작되었다. 다음 거래에서는 360,000원이었다. 이어 600,000원, 960,000원을 거쳐 마침내 120만 원에 거래되었다. 기억을 환기하자면 제시 리버모어의 첫 번째 승리가 바로 이때 북태평양철도 주식을 산 거래였다.
이날의 일은 이후 ‘1901년 주식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사건은 주인공을 제외하고 모두가 죽는 <존 윅>에서 죽지는 않고 많이 다치는 <타워링>으로 바뀌며 끝이 났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던 해리먼과 힐이 휴전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든 곰들이 190,000원에 공매도를 해소하도록 허용해 주었다.
해리먼과 힐은 북태평양철도에 대해서도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북태평양철도와 벌링턴철도를 포함한 여러 철도 회사를 지배하는 새로운 지주회사 주식을 나눠 갖는 방안이었다. 이렇게 되면 경쟁 없이 해당 지역의 철도를 독점할 수 있었다. 해리먼과 힐의 지주회사 이름은 북부증권회사였다.
분하게도 해리먼과 힐의 독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법무부는 1902년 셔먼 반독점법 위반으로 북부증권을 기소했다. 190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북부증권의 해산을 명령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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