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마친 부부는 일생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기 위하여 신혼여행을 떠난다. 신부는 사랑하는 새신랑과 함께 술잔을 들고 사랑의 언약을 속삭인다. 때로는 신랑 신부 친구들과 함께 술파티를 즐기며 과음을 하기도 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신혼의 무드를 즐기려고 저녁식탁에서 자주 포도주를 마신다.
음주가 식사처럼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점심시간에 시내 식당에 들르면 테이블마다 소주나 맥주로 반주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여성들만 모인 식탁에서도 소주병이 보인다. 평등을 중시하는 세상이지만 음주에서만은 평등을 외치고 싶지 않다. 특히 신혼이나 임신을 원하는 가임연령 여성에게는 남성과 달리 금주가 요구된다.
태아 알코올 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은 임신 중에 어머니가 마신 술이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질환이다. 어머니가 만취하도록 술을 마셨다면 태아도 만취 상태가 된다. 태아를 만취시킨 알코올은 어머니보다 배설이 느려 더 오래 태아에게 남아 있다. 태아 알코올 증후군으로 출생한 아기 얼굴을 보면, 턱이 작고 눈도 작은 이상한 얼굴 모양을 가지고 태어난다. 심장과 콩팥 그리고 관절의 이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 뇌와 신경이 형성되는 시기인 임신 초기의 음주는 임신 말기보다 더 위험하다. 태아의 뇌 발달을 지연시켜 뇌의 크기를 감소시키고, 후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 학습 지진아를 만들기도 한다.
임신 초기나 말기 어느 시기에 마신 술이라도 태아 알코올 증후군을 일으킨다. 어느 누구도 몇 잔부터는 태아 알코올 증후군을 일으킨다고 말하지 못한다. 술을 적게 마시거나 많이 마시거나 마신 양과 관련 없이 어머니가 마신 술은 바로 태아에게 넘어간다. 가임 여성이라면, 특히 아기를 원하는 여성이라면 절주가 아닌 금주를 하여야 한다.
미국 브라운대학 우먼앤드인펀츠병원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포스터들이 있다. 가장 많은 포스터가 의료진에게 손 씻기를 강조하는 포스터이다. 모자병원이기 때문에 산모 교육용 포스터도 많은데,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산모가 술병을 들고 담배를 태우고 있고, 자궁 내의 태아도 어머니와 같은 자세로 술병을 들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그린 포스터이다. 나는 이 포스터가 ‘산모와 태아가 두 몸이라도 하나’라는 의미를 너무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했다. 산모가 마신 술이 태아에게 바로 넘어가 태아가 ‘알딸딸’하게 되는 듯한 모습을 너무도 실감 나게 표현하였다. 귀국 시에 그 포스터를 얻어다가 우리 병원에서도 학생과 전공의 그리고 산모들 교육용으로 사용하였다.
임산부가 담배를 피워도 담배의 독성 성분이 바로 태아에게로 건너간다. 미국에는 약물이나 마약 그리고 알코올 중독 산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마약 중독 산모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중독과 금단증상이 있으므로 출산 후 해독치료를 하여야 한다. 임신 초기는 태아에게 모든 장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라서, 임신 말기보다 임신 초기에 알코올, 담배, 마약 등에 노출되면 모든 장기가 더욱 크게 손상을 입을 수가 있다.
임신 초기에는 임신한 사실을 알기가 정말 어렵다. 가임연령에 있는 여성들은 태아에게 해로운 물질들과 멀리하여야 한다. 흡연하는 여성이라면 결혼과 동시에 금연을 하고 금주도 하여야 한다. 점심시간에 길거리를 가다 보면 무리를 지어 흡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무리 중에 간혹 여성 흡연자도 보인다. 담배도 일종의 중독물질이다. 한번 시작한 담배를 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흡연 중인 여성에게 달려가 금연을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어머니의 아기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 비교할 수없이 강하다. 자신의 자궁 안에서 열 달을 길렀고, 생살을 찢는 배앓이를 하고 아기를 낳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산이라는 과정은 남성이 절대 할 수 없는 오롯이 여성만의 특권이다. 그래서 엄마 사랑인 ‘모성애’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따스하고 정겹고 살가운 단어이다.
우리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가사처럼 지리적 고향은 추억에 젖어 잘 기억한다. 그러나 육신의 고향인 태반과 탯줄의 모습은 전혀 기억하지 않고, 기억할 수도 없다. 산모는 한 몸에 또 다른 생명인 태아와 공존하고 있다. 태아와 엄마는 태반과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태반은 실처럼 가느다란 수많은 모세혈관으로 가득 찬 혈관 덩어리이다. 태아에게 탯줄은 생명줄이다. 태반의 작은 혈관들이 탯줄에 모여들어 3개의 커다란 혈관을 형성한다. 탯줄의 3개 혈관에는 2개의 동맥과 1개의 정맥이 있다.
탯줄의 동맥을 제대동맥이라 하고, 정맥을 제대정맥이라 부른다. 제대동맥과 제대정맥을 통하여 엄마는 태아에게 발육에 필요한 영양소와 산소를 보내고, 태아는 자신의 노폐물을 엄마에게 되돌려 보낸다. 엄마의 폐에서 얻어진 산소는 탯줄 혈관을 통하여 태아에게 공급된다. 태아로부터 건너온 노폐물은 엄마의 콩팥으로 배출되고, 엄마의 간에서 해독이 된다. 엄마의 폐, 콩팥, 그리고 간이 태아의 폐, 콩팥, 간이 할 일을 대신하여 준다. 태아는 캄캄한 자궁 안에서 양수에 둥둥 떠서, 엄마의 심장 박동 소리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심심하면 가끔 발길질하여 엄마와 아빠를 놀래키면서.
태반 혈관에 이상이 있으면 태아가 크지 못한다. 탯줄의 혈관 이상이 있어도 태아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탯줄이 꼬이면 제대 혈관도 따라 꼬여서 태아에게 산소공급이 잘되지 못하고, 곧 태아의 심장 박동수가 느려진다. 산과 의사는 임신 말기 산전 진찰 시에 태아 심박수와 태아의 운동성 그리고 양수의 양 등을 관찰하여 태아가 편안하게 자궁 내에 있는지 보살핀다. 산과 의사는 태아의 산전 정보를 분만 후 신생아를 진료하는 신생아 의사들과 공유한다.
의사들이 모이는 많은 학회 중에 주산의학회(周産醫學會, Society of Perinatology)라는 학회가 있다. 태아의 건강을 담당하는 산과 의사와 신생아 치료를 담당하는 신생아 의사들 두 분야가 모여 태아와 신생아의 생명에 관한 연구를 하기 위하여 학회를 만든 것이다. 주산의학회라고 부르니 어떤 분들은 ‘의사들이 주판을 가지고 무슨 연구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주산의학(perinatology)은 산모와 태아가 하나인 것처럼, 산모를 돌보는 산과 의사와 신생아를 돌보는 신생아과 의사가 하나가 된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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