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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

03. 손 씻기가 살린 아기들

by BOOKCAST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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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희 간호사들 핸드로션 좀 사주세요.”

나에게 신생아집중치료실 간호사들이 회진 중에 간곡하게 부탁한 말이다. 손이 가마니처럼 거칠어져서 핸드로션을 사달라고 요구한다. 신생아집중치료실 간호사와 전공의들이 손바닥에서 손금이 안 보인다고 항의한 적도 있었다. 너무 손을 자주 씻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특히 간호사들에게는 아기 기저귀를 갈 때마다 손을 씻으라고 하였기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게 되었고, 그 결과 손이 거칠어지고 손금까지 보이지 않는다고 과장 섞인 불평을 하게 된 것이다.

미국 우먼앤드인펀츠병원에서 연수할 때 신생아집중치료실 회진에 처음 참여한 날이었다. 집중치료실 회진팀은 주치의 교수, 전임의, 전공의, 간호사, 호흡치료사, 영양사, 그리고 사회사업가 등 6~7명으로 구성된다. 회진을 돌다가 갑자기 주치의 교수가 자리를 뜬다. 나는 주치의 교수를 따라 쫓아 움직였으나 다른 회진팀은 꼼작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주치의 교수가 신생아 환자를 진찰한 후에 손을 씻으러 싱크대에 간 것이다. 회진팀은 교수가 손을 씻은 후 도로 다음 회진 신생아에게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신생아집중치료실의 감염 관리 원칙인 신생아 진찰 후 매번 손을 씻는다는 것을 내가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데 나 홀로 손 씻으러 가는 주치의 교수 뒤를 쫓아 따라간 것이 창피한 일이기도 하였지만, 병원 감염 관리에 대한 기본을 깨닫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신생아집중치료실의 손씻기가 얼마나 중요한 기본적 감염관리 원칙인지를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우먼앤드인펀츠병원의 대집담회 제목이 ‘신생아 감염 관리’였다. 집담회 시작과 동시에 강의 담당교수인 닥터 카쇼어가 머리에는 수술실용 모자, 손에는 수술실 장갑,발에는 수술실 발싸개, 온몸에는 수술실용 가운, 그리고 마스크까지 쓰고 강단에 나타났다. 그리고 전신을 휘감았던 장갑을 비롯한 모든 수술실용 도구들을 벗어 버렸다. 그리고 양손을 번쩍들더니 “감염 관리를 위해서는 이 모든 것 다 필요 없고 손만 잘 씻으면 된다”라고 외쳤다. 몸소 열정적으로 연극을 한바탕 하고 손씻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후 신생아 감염 관리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귀국 후 세브란스병원장 시절에 병원 전체 수간호사 70여 명을 모이게 하고 나 자신이 스스로 미국 우먼앤드인펀츠병원에서 보았던 손씻기 강조 연극을 직접 해 보였다. 미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의료진이 손씻기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실천이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이다. 병원 감염 관리에서 손씻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의사들이 병실 환자 회진을 마치고 다음 환자 병실로 이동할 때 의사들이 잘 보이게끔, 병실 문에 ‘다음 환자 진찰 전에 손을 씻어 주세요’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싱가포르 국립병원인 싱가포르 제너럴 호스피털(Singapore General Hospital)을 방문하였을 때, 병원 외벽 전체에 걸린 배너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Clean Hands Save Your Lives깨끗한 손은 환자는 물론 의료진의 생명도 구한다’라는 손씻기 캠페인 포스터였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는 신생아과뿐만 아니라 소아외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안과 등 신생아 질환 관련 여러 진료과 의사들이 협진을 하기 위하여 입실하지만 모든 의사들이 손씻기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손씻기를 강제적으로 하게 하기 위하여, 집중치료실 출입 시 손씻기를 먼저 하여야 집중치료실 문이 열리게도 하여 보았다. 손을 씻지 않고 입장하는 협진과 전공의를 집중치료실에서 퇴장도 시켜 보았다. 병원장 시절에는 전체 병원 의료진의 손씻기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손씻기 캠페인인 ‘Hi-Five’ 운동을 시작하였다. 요사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손씻기가 일상화되었지만, 과거에는 병원장이 직접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내 손씻기 정착에 3년이 소요되었다.

가장 효과적인 감염 관리 수단은 흐르는 물에 비누 거품을 이용하여 손을 씻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고농도 알코올에서도 잘 죽지 않기 때문에, 알코올이 조금 들어간 손소독제는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바이러스를 죽이려고 하루에 몇번씩 알코올에 손을 담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사나 간호사의 손에 있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죽일 수 없다면, 물과 함께 비누거품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거품으로 바이러스를 흘려보내려면 모든 병실에 손 씻을 싱크대가 준비되어야 한다.

세브란스 새 병원 건축 시에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5~6인용 다인실을 포함한 모든 병실과 외래진찰실에 손씻기 싱크대를 넉넉하게 마련하였다. 쉽게 손 씻을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손씻기가 정착된다. 싱크대를 설치하려면 상하수도 배관이 필요하다. 배관들은 위층과 아래층 병실들과도 연결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병실 하나만 단독으로는 싱크대 설치가 불가능하다. 손씻기 싱크대는 병원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미리 설계에 반영시켜야 한다. 오래된 병원 건물은 배관을 위아래 층으로 연결시키는 어려움 때문에 새롭게 싱크대 설치가 불가능하다. 궁여지책으로 손 씻을 싱크대 대신으로 손세정제를 비치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2009년 4월 8일 자 “손만 잘 씻어도 병원감염 위험 절반 줄어”에 소개된 하이 파이브 캠페인
 

 

오래전 세브란스병원 직원 70여 명이 집단으로 이질에 감염된 적이 있었다. 이질 감염 직원 전원이 외부에서 납품받은 김밥을 먹은 교직원들이었다. 이질균의 감염 경로를 알기 위하여 김밥 납품업체를 방문하여 역학조사하니 김밥을 만드는 조리원 중에 이질 보균자가 있었다. 김밥 만드는 조리원이 화장실 사용 후 손을 씻지 않고 김밥을 말았던 것이다.

이질 증상이 없더라도 납품받은 김밥을 먹은 전 직원에게서 대변 배양검사를 하였다. 신생아실 근무 간호사 두 명에게서도 이질균이 검출되어 당장 근무에서 제외했다. 간호사는 설사 같은 이질 증상이 없는 이질
균 보균자 상태였다. 이질균은 대변을 통하여 전염된다. 신생아실 간호사들이 화장실 사용 후 철저하게 손을 잘 씻은 덕분에, 신생아실의 신생아들에게는 이질균 감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한번 손씻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최근 2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국적으로 손씻기가 정착되었다. 덕분에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 연령에서 감기 환자가 사라졌다. 따라서 전국의 어린이병원에서 폐렴으로 입원하는 환자들도 없어지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아마도 감기로 지출되던 건강보험 급여가 격감하여 건강보험 재정이 크게 개선되었을 것이다.

의료진의 깨끗한 손이 환자의 생명을 구한다. 모든 국민의 깨끗한 손이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본인과 가족의 생명을 구한다. 엄마는 물론 신생아실과 산후조리원 근무자의 깨끗한 손이 갓 태어난 신생아의 생명을 구한다.

 

손씻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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