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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

01. 환자와 대화할 수 없는 의사

by BOOKCAST 2022.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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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원래 아픈 거예요.”

환자들이 의사들에게서 듣는 섭섭한 말 중의 하나다. 환자는 아프지 않으려고 입원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최근 병원에서는 환자의 통증 해결을 가장 중요한 진료 목표로 삼고 있다. 아프지 않으려고 입원했는데 아픔의 호소를 방치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통증도 심한 정도에 따라 10단계로 나누어 세심하게 환자의 통증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입원환자들이 아픔을 호소할 때 ‘콕콕 쿡쿡 쑤시며 아프다’, ‘무지륵하게 아프다’ 등등 아픔의 표현도 다양하다. 입원환자를 회진하다 보면 주치의사와 입원환자 간에 많은 대화가 이루어진다. 회복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감사 인사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옆 환자의 신음소리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들도 나누게 된다. 장기간 입원하는 환자들과는 자녀 문제나 부부 문제 등 인생 상담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입원환자들과 가장 많은 대화 중의 하나는 통증에 관한 것이다.

퇴원하는 날 아침 회진 시간에는 통증에 대한 대화는 거의 사라진다. 그간 치료에 감사하다는 좋은 인사를 듣게 되고, 퇴원 후 복용할 약, 음식이나 운동 등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에 대한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병원에는 여러 종류의 입원실이 있다. 입원실을 나누는 기준은 일단 수술을 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외과계와 내과계 입원실로 크게 나뉜다. 성별로 나누는 산부인과는 여성만 입원한다. 소아과와 내과는 나이로 나눈다. 이렇게 입원실은 장기별, 성별, 그리고 나이별로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입원실 중에서도 일반병실과 달리 중환자가 입원하는 병동이 따로 있다.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위한 입원실을 중환자실(ICU, Intensive Care Unit)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고 정해진 면회시간만 보호자 출입이 허용되며 모든 처치를 간호사들이 전담하는 곳이다.

 

앙증스러운 미숙아용 청진기
 

중환자실도 내과 중환자실, 신경외과 중환자실, 심장내과 중환자실 등 전문 진료 분야별로 나뉜다. 다양한 중환자실 중에서 미숙아와 아픈 신생아를 치료하는 중환자실을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Neonatal Intensive Care Unit)이라고 부른다.

신생아 진료 전문의는 평생을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인큐베이터에 있는 미숙아와 아픈 신생아를 치료하며 보낸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회진 모습은 다른 병실의 회진 모습과 사뭇 다르다. 환자와 의사와의 대화가 없다. 아니, 대화가 불가능하다. 입원환자인 아기들이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신생아집중치료실 회진을 하다 보면 이룰 수 없는 바람이 하나 생긴다. 환자들과 속 시원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어진다. ‘머리가 아파요’, ‘배가 아파요’ 또는 ‘콕콕 쑤셔요’, ‘무지륵하게 아파요’ 등의 말을 듣고 싶다. ‘조금 전 먹었던 모유가 소화가 잘 안 돼요’, ‘밤새 기계 소리 때문에 잠을 잘 못 잤어요’ 등등의 말을 듣고 소통을 하고 싶다.

과거 어느 과학자가 인큐베이터 내의 소음을 측정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비행기 엔진이 돌아가는 정도의 큰 소음이 인큐베이터 내에서 측정되었다. 가습기와 가열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런 소음에 시달려도 아기는 불편함을 호소할 수가 없다. 참으로 아기에게 미안한 일이다. 의사들에게는 아기에게 부착된 심전도 등 감시 모니터의 ‘삑삑’거리는 기계음과 ‘쉭쉭’ 하는 미숙아 호흡을 도와주는 인공호흡기 작동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인큐베이터 내 소음에 대한 연구 발표 후 인큐베이터 소음은 완전하게 차단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신생아 진료 의사들은 “환자와 말을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마치 수의사 같아”라고들 한다. 환자들과 대화 대신에 신생아집중치료실 밖에서는 면회 오신 부모, 조부모와 대화가 이루어지고, 신생아집중치료실 내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간의 대화만이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와 대화 없이는 밥 벌어 먹고 살 수 없다지만, 신생아 의사는 이렇게 아기들과 대화 없이도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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