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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

04.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고난

by BOOKCAST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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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부고를 받다 보면 100세까지 장수하신 분들의 부고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5세이다. 기대수명이란 출생한 신생아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나이를 말한다. 일본인의 기대수명이 84.4세로 세계에서 가장 최장수 국가이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준의 시대에 조선 사람 평균수명이 30대였다. 조선의 왕들의 평균수명은 46세였다. 21대 영조가 가장 장수하여 82세까지 생존하였다.

과거 조선시대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전염병이라고 추측된다. 1895년 당시 조선의 수도 한성의 인구가 22만 명이었는데 호열자라고 부르는 콜레라가 유행하여 한성에서만 5천 명이 사망하였다. 당시에는 세균에 대한 존재도 모르던 시기였기에, 콜레라는 쥐 귀신에 의하여 전염된다고 믿고 있었다. 옆집의 친구나 가족들이 콜레라로 죽어 나가자 모든 이들이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이게 된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쥐 귀신으로부터 콜레라 감염을 피하기 위하여 집집이 문 앞에 고양이 그림 부적을 붙여 놓기도 하였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거의 3분의 1이 페스트 흑사병으로 사망하였다. 하나의 마을 전체가 흑사병으로 없어지기도 하였다. 당시 7천만 명이던 유럽 인구가 5천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최근에는 의학 발달과 사회 위생의 개선 그리고 충분한 영양공급으로 평균수명은 계속 증가한다. 평균수명이 낮아지는 예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이후 영국의 평균수명이 80세로 그 전년보다 한 살 감소하였다 한다. 암이나 성인병보다도 전염병은 인간 평균수명 연장의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다.

인류 역사상 인간의 평균수명을 30세에서 80세까지 연장시키도록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의학의 발전이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두 주범이 세균이라 부르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이다.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이 발견된 이래 많은 항생제가 개발되어 박테리아와의 전쟁에서 인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항생제는 박테리아를 싸고 있는 세포막을 와해시켜 세균이 살 수 없도록 만들어 죽여 버린다. 항생제의 발견으로 현대사회에서는 세균에 의하여 과거처럼 많은 인명이 사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박테리아와 달리,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바이러스를 죽이는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독감 바이러스, 에이즈 바이러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등 모든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세포막이 없기 때문에 항생제를 투여하여도 죽지 않는다. 바이러스 치료제라고 불리는 약들은 바이러스를 죽이지 못하고 증식만을 억제한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원인인 감기도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약을 먹지 않으면 7일 동안 아프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다. 감기 바이러스를 죽일 약은 없기 때문이다.

항생제와 함께 인류의 평균수명을 연장시키는 또 다른 공헌은 마취제의 사용이다. 마취제 개발은 통증 없는 수술 시대를 열었다. 항생제의 발견, 마취의 발달, 그리고 예방접종이 100세 시대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중에서도 인류의 수명 연장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예방접종의 발견이다.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인생의 첫출발에서 경험하는 아픔이 예방접종 주삿바늘이다. 생애 첫 예방접종의 시작은 B형 간염 예방접종이다. 첫 예방접종에서부터 백세 장수의 소망은 시작된다.

지인의 딸이 미국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얼마 후 미국 대학 기숙사에서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예방접종 기록을 요구한다며 소아과 의사인 나를 찾아왔다. 대학 기숙사는 공동생활 장소이다. 기숙사를 이용하는 학생 모두를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예방접종 기록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기본접종은 물론 부스터 샷까지 모든 예방접종 기록을 요구하였다.

특히 강조하는 것이 풍진 예방접종 기록이었다. 가임연령 여성은 풍진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항체가 없이 임신이 되고 풍진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태아가 기형으로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기숙사에는 모든 여학생이 가임연령에 있기 때문에, 풍진 예방접종을 포함한 모든 예방접종 기록을 요구하는 이유가 충분하게 이해되었다.

인류는 수십 년의 소아 예방접종에 관한 추적연구 자료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가 가진 항체가 태어난 아기에게 얼마나 많이 넘어가는지, 그리고 넘어간 항체가 아기 몸에서 어느 기간 지속되는지까지도 잘 밝혀져 있다. 심지어는 어머니가 실제 병을 앓고 얻은 항체가 어머니가 예방접종으로 얻은 항체보다 더 강력하여, 아기를 전염병에서 보다 더 잘 지켜 준다는 결과까지도 가지고 있다.

신생아는 출생 시에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시작으로 한 달 내에 BCG 접종까지 하여야 한다. 돌 전까지 B형 간염과 BCG 접종을 포함하여 모두 여섯 종류의 국가가 정한 기본 예방접종을 맞게 된다. 돌이 지나면 홍역 예방접종을 포함한 다른 여러 종류의 접종이 시작된다. 돌 전의 여섯 가지 기본 예방접종 중에서 결핵 예방접종인 BCG만 1회 기본접종으로 끝난다. 나머지 다섯 가지 접종 모두 기본접종을 완결하려면 세 번씩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합산하여 보면 돌 전에 무려 열여섯 번의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번 소아과를 방문하여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접종을 하다 보니 보호자가 접종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평생 건강을 위해서 예방주사는 필수래요
 

이사를 하다 보면 여러 소아과에서 예방접종을 하게 된다. 예방접종 수첩도 유치원 전까지는 잘 보관하다가 중고등학생쯤 되면 분실하기도 한다. 미국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 기숙사도 아기일 때부터 예방접종 기록을 요구한다. 그래서 예방접종 수첩을 잘 간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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