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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

05. 핵무기만큼 무서운 핵황달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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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새신부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첫 아기를 얻은 기쁨도 잠깐, 아기 몸 전체가 노랗게 변한다. 처음에는 많은 아기에게 나타나는 생리적 황달이겠거니 생각하였는데, 아기 눈의 흰자위까지 노랗게 변했다. 소아과 진료를 하니 핵황달일 가능성이 높아 입원을 한다. 핵황달은 황달이 뇌까지 침입하여 뇌성마비까지 일으키는 무서운 병이다. 입원 후 핵황달을 치료하기 위하여 아기 피를 모두 빼내고 새로운 피로 바꾸는 교환수혈까지 하게 되었다.

여기서 예기치 못한 새신부의 결혼 전 사건이 알려지게 된다. 아기의 핵황달 치유 과정에서 산모의 결혼 전 낙태 경험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신생아 핵황달은 첫 임신에서는 발생하지 않고 두 번째 임신한 태아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기의 황달로 인하여, 결혼 전 첫 임신을 숨겼던 신부의 과거 역사가 밝혀져서 신혼 가정이 깨어지는 일까지 벌어진다. 작가들에게는 드라마 소재로 쓰일 법한 이야기다.

모유를 수유하면 많은 신생아의 얼굴이 노랗게 되어 어머니들은 불안해한다. 심한 경우에 눈동자까지 노랗게 될 수도 있지만, 모유황달이라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성인들은 겨울에 귤을 너무 많이 먹은 경우에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노랗게 변하는 수도 있다. 모유에 의한 황달이나 귤을 많이 먹어 노랗게 되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귤의 카로틴이란 성분 때문에 피부가 노란색을 띠지만 귤 먹는 것을 중단하면 금방 소실된다.

귤에 의한 노란 피부는 귤을 끊으면 없어지지만, 모유황달은 거꾸로 모유수유를 늘리면 소실된다. 대부분의 모유황달은 수분 섭취가 부족하여 생긴다. 모유를 더 먹이든지 모유수유와 함께 물을 많이 먹이면 황달이 없어진다.

황달이 심해지면 황달을 치료하기 위하여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을 시킨다. 황달 수치를 떨어뜨리기 위하여 아기를 형광등 밑에 둔다. 불빛으로 황달을 치료하는 것이다. 북미대륙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아기가 노랗게 되면 아기에게 햇볕을 쪼여 황달을 해결하였다. 미국 소아과 의사들이 햇볕으로 황달을 치료하는 인디언들의 황달 치료법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연구결과 태양광선을 받으면 황달 성분이 몸에서 빨리 배출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 후부터 광선치료가 신생아 황달의 기본 치료가 되었다.

황달이 뇌까지 침입하여 뇌손상을 일으키는 핵황달은 치명적이다. 핵황달은 아기와 어머니의 혈액형이 달라서 발생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ABO 혈액형 이외에 또 다른 혈액형 구분 방법으로 Rh 양성과 음성으로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인구의 20%가 Rh 음성인 서양인과 달리 동양인은 1%만 Rh 음성이다.

광선치료로 어서 나으렴
 

핵황달은 어머니가 Rh 음성이고 태아가 Rh 양성일 때 발생한다. 산모와 태아의 Rh 혈액형이 다른 것이다. 핵황달은 두 번째 임신에서부터 나타난다. 첫 분만 시에 Rh 양성 태아의 피가 엄마에게로 넘어가서, Rh 음성인 어머니 몸에서 Rh 항체를 형성한다. 두 번째 임신이 되면 태반을 통하여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Rh 항체가 아기에게로 넘어와서 아기의 적혈구를 파괴시킨다. 이때 깨어진 적혈구에서부터 많은 양의 빌리루빈이라는 노란색 물질이 쏟아져 나온다. 대량의 빌리루빈이 뇌에 침입하여 뇌손상을 주어 뇌성마비를 일으키는 것이 핵황달이다.

전공의 시절, 응급실을 통하여 핵황달로 입원하는 갓난아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 아기 뇌의 손상을 피하기 위하여 급하게 교환수혈을 하게 된다. 일단 아기 배꼽 혈관을 확보한 후에, 어머니에게서 넘어와서 신생아의 적혈구를 파괴하는 Rh 항체를 제거하는 교환수혈이 시작된다. 교환수혈은 배꼽 혈관을 통하여 아기 피를 모두 빼내고 Rh 항체가 없는 새로운 피를 아기에게 넣어 주는 것이다. 교환수혈을 하려면 거의 밤을 새우게 된다. 아기의 피를 전부 새 피로 바꾸려면 아기 혈액량의 두 배나 되는 혈액을 사용하여 조심스럽게 교체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요사이 소아과 전공의들은 교환수혈로 밤을 새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Rh 음성 산모가 낙태하든, 첫 출산을 하든 간에 태아에서 산모로 넘어간 Rh 양성 혈액을 소멸시키는 치료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산모에게 투여한 치료제가 산모에게 넘어간 태아의 Rh 양성 혈액을 모두 제거해서 어머니에게서 Rh 항체가 생기지 못하도록 한다. 그 결과 두 번째 출산에서도 핵황달같이 심한 신생아 황달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미국에 연수할 당시 이야기이다. 미국 도착 후 몇 주 정도 지났는데 나를 초청한 윌리엄 오 교수와 면담 스케줄이 잡혔다. 첫 말씀이 미국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연구 제목을 내라는 주문이었다. 일찍 미국 연수를 다녀온 선배 교수들은 초청 교수의 연구를 도와주는 일을 하였다고 듣고 미국에 왔기 때문에 매우 당황하였다. 실험실에서 초청 교수의 연구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 주제가 있으면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윌리엄 오 교수의 연구를 도와주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윌리엄 오 교수가 나의 연구를 지원하여 주겠다는 의외의 말씀이었다.

연구 주제에 대하여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터라 매우 난감하였다. 이때 떠오른 것이 전공의 시절 밤을 지새우며 시행한 핵황달 치료를 위한 교환수혈이었다. 핵황달은 생후 2~3일 내의 아기에게 나타난다. 생후 일주일 정도 지나서 늦게 나타나는 황달은 황달이 아무리 심해도 황달이 뇌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늦은 황달은 핵황달이 되지 않고 뇌성마비까지는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궁금하였다.

‘왜 태어난 지 일주일만 지나면, 며칠 사이로 핵황달의 위험이 사라질까?’라는 의문이 항상 머릿속에 있었다. 그래서 세운 연구 가설이 ‘생후 초기에는 뇌와 혈관 사이에 장벽이 형성되지 않아 황달이 뇌로 침범하여 뇌손상을 일으킨다. 그러나 생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혈관과 뇌 사이에 장벽이 형성되어 핵황달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였다. 가설을 세운 다음 구체적 연구 방법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병원 도서실에서 홀로 문헌을 찾았다. 그때가 미국 독립기념일 즈음이라 의사들이 휴가를 떠나 도서실이 텅 비어 있었다.

연구계획서를 윌리엄 오 교수에게 제출하니 당장 실험동물을 준비하여 주었다. 실험동물은 생후 2일 된 새끼 돼지와 생후 2주 된 새끼 돼지였다. 2일과 2주 된 돼지에게 황달 물질을 주입하고, 각각의 뇌에서 황달의 존재 유무를 찾아 나이가 먹음에 따라 혈관과 뇌 사이에 장벽이 형성된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것이다. 당시 황달 실험 지도교수였던 닥터 카쇼어는 황달 물질을 투여하여 샛노랗게 된 실험동물 돼지를 ‘New England Golden Piglet’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새롭다.

1년에 걸친 실험 결과 나의 가설이 입증되었다. 실험의 결과는 내용이 방대하여, 논문을 두 편으로 나누어 작성하게 되었다. 연구논문은 《Pediatric Research》라는 소아과 최고의 학술잡지에도 게재되었고, 영어 신생아학 교과서인 《Avery’s Neonatology》에도 인용되었다. 최근에도 혈관과 뇌 사이의 장벽에 관한 연구가 치매 치료 신약 개발에 중요한 연구과제가 되고 있다. 복용한 약이 혈관과 뇌 사이의 장벽 때문에 뇌에 도달하지 못하여 치료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영광스러운 일은 연구논문 두 편이 모두 미국 소아과학회(SPR, Society for Pediatric Research)에서 발표하도록 채택된 사실이다. 한 편은 구두 발표로, 다른 한 편은 포스터로 발표되도록 초청을 받았다. 미국 연수 귀국 후 1년 후에 두 편의 논문을 미국 소아과학회에서 발표하기 위하여 다시 출국하였다. 하나의 논문은 수천 명이 참석하는 대학회장에서 발표하도록 배치가 되었다. 준비된 원고를 정신없이 발표하고 내려오니 속옷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연단에서 내려오니 처음 보는 한국인 교수가 나를 찾아오셨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신생아과장 이광선 교수셨다. 이광선 교수는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미국에서 소아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미국 소아과 전문의이다. 미국 소아과 전문의가 아닌 한국 소아과 전문의가 미국 소아과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축하해 주셨다. 그날 저녁 학회장 호텔 바에서 이광선 교수님은 늦은 밤까지 축하주를 사주며 나를 격려하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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