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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MZ세대와 라떼 사장님이 함께 만드는 조직문화>

08. 구조를 구조하라!

by BOOKCAST 202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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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문화란 유니콘이다. 상상 속 개념일 뿐이다.

회사 미션에 캐치프레이즈에 연말 연초 송년사 신년사에 빠짐없이 수평적 조직문화가 들어가건만 정작 수직적 문화는 더 굳건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수평적 문화 정착을 위해 기업들이 시도하는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직급 체계를 폐지하고 호칭을 바꾸는 일이다. 직급 체계나 호칭을 바꾼다고 수평적 문화가 될까? 싶지만 의외로 많은 기업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어떤 그룹은 프로님이라고 부르고 또 어떤 기업은 영어 이름을 쓰기도 한다. 물론 지독한 관료주의가 어느 정도 호칭이 주는 관계의 개선은 일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움직임은 실리콘밸리를 모방한 공유 오피스 열풍과 닮았다. 외연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바꿔 변화를 이끌어보겠다는 취지인데. 글쎄. 모르겠다. 어떤 그룹은 CEO를 포함한 고위 임원들이 TED 방식이라며 청바지 차림에 티를 입고 나와 강의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옷차림을 바꾸고 무선마이크를 차고 강연하는 퍼포먼스 촌극은 정말로 변화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통신사업과 에너지로 유명한 S모 그룹은 기업 총수가 이 방식으로 전 관계사를 돌며 수백 번의 강연을 했고 기업의 핵심가치라는 행복을 강조했지만, 글쎄. 그들의 행복 수준이 높아졌는 지는 오리무중이다.

현역 시절 회사 인사팀은 한바탕 삽질을 시작했다. 기존의 사원 → 대리 → 과장 → 차장 → 부장 직급 체계를 개편해 팀장, 팀원의 두 직급만 있는 매니저제도로 바꾸는 일이었다.

인사담당상무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호기롭게 밀어 부쳐 노조도 설득하고 결국 관철시켰지만 회사의 문화에는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중간 리더들의 책임과 권한을 빼앗아 의욕을 잃는 바람에 팀장들의 역할이 가중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구조와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상태로 호칭과 직급체계를 바꾸고 TED 강의를 한다고 해서 수평적 문화가 정착되지는 않는다. 왜 수평적 조직문화가 되어야 하는지 그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과 모두의 합의도 없이 그저 일방적인 보여주기식 쇼잉으로 일관한 일련의 이벤트들은 자충수로 전락하기 일쑤다.

사실 조직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수직적 구조를 띌 수밖에 없다. 의사결정과 책임의 최종스팟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100억짜리 딜에 관련된 결정을 사원급 매니저들에게 내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권한의 이양이 아니라 책임전가다.

수평적 문화에 대한 자신들만의 명확한 정의와 공감도 없이 그저 남들하는 것을 좇아 겉모습 바꾸기에 전념한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인격적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수많은 기능과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기업 조직에서 단순히 수평적이면 좋은 거라는 수준의 인식만 가지고 수평적 문화를 접근하려다 보니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판을 치고 도로 원상복귀 되는 촌극이 끊이질 않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평소 수평적이고 열린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도 조직의 리더라는 위치에 올라서면 관료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되는데 구조와 환경의 문제가 사람보다 먼저라는 진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직 내 사일로가 생기고 공고해지는 이유는 조직 구조가 폐쇄적이고 팀장을 위주로 권한과 책임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팀장에서 밀려나면 대기발령 상태가 되어 퇴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그 증거다.

오늘날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이런 조직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누군가 책임을 맡아야 하지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쏠리는 구조가 조직을 더 폐쇄적이고 경직되게 만든다. 여러 기능을 묶어 하나의 팀으로 퉁쳐서 그에 관련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주고 비대하게 만드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팀을 세분화하고 제왕적, 권위적 리더가 아닌 기능과 효율에 적합한 프로젝트 리더 단위로 바꿔야 한다. 팀 리더의 권한과 책임을 축소하고 팀 멤버 전원에 일정 부분 이양해야 한다.

Image by rawpix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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